목차
Ⅰ. 들어가며
Ⅱ. 석가모니의 설교 방법
Ⅲ. 삼국 불교의 전개 및 전교활동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Ⅳ. 불교와 시간
1.ꡐ시간 지연ꡑ 현상
2.ꡐ시작도 끝도 없다ꡑ
Ⅴ. 불교의 죽음관과 장례의식
1. 윤회(輪廻)
2. 열반(涅槃)
3. 업(業)
Ⅵ. 한국불교의 특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호국불교
2. 통불교
Ⅱ. 석가모니의 설교 방법
Ⅲ. 삼국 불교의 전개 및 전교활동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Ⅳ. 불교와 시간
1.ꡐ시간 지연ꡑ 현상
2.ꡐ시작도 끝도 없다ꡑ
Ⅴ. 불교의 죽음관과 장례의식
1. 윤회(輪廻)
2. 열반(涅槃)
3. 업(業)
Ⅵ. 한국불교의 특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호국불교
2. 통불교
본문내용
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仁王經 등을 중시하며 불교가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기원했고 불교의 이념을 중심으로 국력을 결집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통의 백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왕실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야말로 불교의 근본 목적이라고 할 스스로의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권력과 합하여 불교의 순수성을 잃고 종교적 본연의 자세를 잃어갈 때 종교의 타락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세속의 이득과 명예를 거부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제 출세의 지름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신라시대에 불교 승려들은 국정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고려시대에는 정식으로 승려의 과거까지 있어서 불교 승려의 길이 바로 출세의 길이 되는 현실에서 근본적인 종교적 이념은 발붙이기 어려웠다. 출세간이라는 것에 대해 종교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비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역시 종교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세속의 가치에 대해 초연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호국 불교라는 것은 불교 내부적으로 볼 때는 정권과 결탁된 불교로서 타락의 길이 되기가 쉬웠다고 말할 수 있고 불교 외적으로 볼 때는 권력자와 부호와 결탁함으로써 그들의 잘못을 방어해주고 힘없고 괴로운 사람들을 더욱 탄압하고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라 할 것이다. 호국불교를 정권에의 봉사가 아닌 국민에의 봉사라 한다고 해서 그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호국불교로 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불교가 통합의 역할을 해 준 것이 일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정권과 결탁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불교는 더 이상 안 된다. 정권과의 연결에서 벗어나고 정권의 간섭에도 자유로운 불교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고 세속의 귀감이 될 수 있어야 그것이 종교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호국 불교라고 하는 것이 민족 전체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연결될 때는 혹시 그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할 지도 모르나 잘못하면 편협한 국수주의로 흐르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불교 본래의 보편적인 이념을 지켜나가고 불교의 본질적인 가치를 우선할 때 민족에의 기여도 가능할 것이다.
2. 통불교
한국 불교의 특성을 조화와 화해의 강조에서 찾는 것도 일반적인 견해이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한국 불교의 특징을 총화불교?통불교, 회통불교, 종합불교 등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불교의 조화를 강조하는 성격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적될 수 있겠다. 전래 초기에는 물론 불교에 뚜렷한 종파가 없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다양한 불교 이론을 크게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불교 연구에서 원효의 시대인 신라 통일 무렵이 되면 갈등의 해소에의 요청이 많이 나타나게 되어 원효의 화쟁의 이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그 이후에도 화해를 강조하는 전통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조금 오래된 연구이기는 하나 \"한국불교의 和思想 연구\"라는 큰 주제 아래에 원효, 승랑, 원측, 의천, 보조, 서산, 한용운 등의 和思想을 연구한 것이 있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사상가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 한국 불교의 중요한 특징을 화해라고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조화와 화해의 강조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그저 좋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식으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원효를 예로 해서 논의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원효가 화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당시 신라 사회에 들어와 있던 다양한 불교 이론들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화해를 강조하는 원효의 정신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고려시대 때 선과 교의 갈등이 심하여 그것을 화해시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을 때에 원효의 화쟁 사상은 주목을 받게 되고 특히 의천은 원효를 인도의 馬鳴이나 龍樹 이상 가는 존재라고 지극한 존경을 하게 된다. 갈등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에 조화와 화해를 강조한 것이고 그 화해라는 것이 그저 누구나 옳다는 식의 화해는 아닌 것이 원효의 화쟁의 이론이라면 그저 조화와 화해를 강조한 것이 우리 나라의 불교다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불교는 탄압을 받게 되고 강제로 종파의 통합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혼합적인 불교로 되어버린다. 승려들 자신도 원융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그저 아무 것이나 좋다는 식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三敎會通의 주장도 나타나지만 이도 이론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17세기 후반 이후가 되면 이론적으로 회통이 되기보다는 이른바 고승이라는 사람들에게서도 잡신, 미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수행이 올바르면 회통이 이루어지고, 수행이 안 되고 있거나 잘못되면 혼란과 혼합 현상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조선 왕조 후반기의 불교는 전반적으로 완전한 회통의 뜻을 잘 실현시키지 못하였다.
조화와 화해의 강조라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권위에의 순종, 진리에 대한 적극적 탐구열이나 치열함의 부족을 화해를 강조하는 것으로 얼버무려진 것은 아니었던가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원효가 말하고 있듯이 너도나도 다 옳다는 식으로는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진리의 입장에 서고 스스로에 대한 집착이 없을 때에 화해가 가능한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정신이 진정한 화해를 위한 첫번째 출발점임을 한국 불교는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어쨌든 이론적인 면에서 볼 때는 통불교라는 것이 우리 나라 불교의 큰 특징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에 대한 공과를 더욱 철저히 가려 앞으로의 한국 불교가 나아갈 거울로 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다면 다종교 사회인 현대의 상황에서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원리로서 작용할 수 있는 한 근거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 그것을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도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통불교
한국 불교의 특성을 조화와 화해의 강조에서 찾는 것도 일반적인 견해이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한국 불교의 특징을 총화불교?통불교, 회통불교, 종합불교 등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불교의 조화를 강조하는 성격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적될 수 있겠다. 전래 초기에는 물론 불교에 뚜렷한 종파가 없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다양한 불교 이론을 크게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불교 연구에서 원효의 시대인 신라 통일 무렵이 되면 갈등의 해소에의 요청이 많이 나타나게 되어 원효의 화쟁의 이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그 이후에도 화해를 강조하는 전통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조금 오래된 연구이기는 하나 \"한국불교의 和思想 연구\"라는 큰 주제 아래에 원효, 승랑, 원측, 의천, 보조, 서산, 한용운 등의 和思想을 연구한 것이 있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사상가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 한국 불교의 중요한 특징을 화해라고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조화와 화해의 강조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그저 좋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식으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원효를 예로 해서 논의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원효가 화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당시 신라 사회에 들어와 있던 다양한 불교 이론들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키려는 목적에서였다. 화해를 강조하는 원효의 정신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고려시대 때 선과 교의 갈등이 심하여 그것을 화해시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을 때에 원효의 화쟁 사상은 주목을 받게 되고 특히 의천은 원효를 인도의 馬鳴이나 龍樹 이상 가는 존재라고 지극한 존경을 하게 된다. 갈등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에 조화와 화해를 강조한 것이고 그 화해라는 것이 그저 누구나 옳다는 식의 화해는 아닌 것이 원효의 화쟁의 이론이라면 그저 조화와 화해를 강조한 것이 우리 나라의 불교다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불교는 탄압을 받게 되고 강제로 종파의 통합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혼합적인 불교로 되어버린다. 승려들 자신도 원융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그저 아무 것이나 좋다는 식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三敎會通의 주장도 나타나지만 이도 이론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17세기 후반 이후가 되면 이론적으로 회통이 되기보다는 이른바 고승이라는 사람들에게서도 잡신, 미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수행이 올바르면 회통이 이루어지고, 수행이 안 되고 있거나 잘못되면 혼란과 혼합 현상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조선 왕조 후반기의 불교는 전반적으로 완전한 회통의 뜻을 잘 실현시키지 못하였다.
조화와 화해의 강조라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권위에의 순종, 진리에 대한 적극적 탐구열이나 치열함의 부족을 화해를 강조하는 것으로 얼버무려진 것은 아니었던가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원효가 말하고 있듯이 너도나도 다 옳다는 식으로는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진리의 입장에 서고 스스로에 대한 집착이 없을 때에 화해가 가능한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정신이 진정한 화해를 위한 첫번째 출발점임을 한국 불교는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어쨌든 이론적인 면에서 볼 때는 통불교라는 것이 우리 나라 불교의 큰 특징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에 대한 공과를 더욱 철저히 가려 앞으로의 한국 불교가 나아갈 거울로 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다면 다종교 사회인 현대의 상황에서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원리로서 작용할 수 있는 한 근거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 그것을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도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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