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사상 - 현상학과 해석학, 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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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이데거의 사상 - 현상학과 해석학, 실존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현상학 비교
☉현상학의 개요
☉현상학의 특징
☉후설 현상학의 기원과 발달
☉이후의 발달
☉현상학의 보급
☉결론

2. 딜타이와 하이데거의 해석학 자료

3. 하이데거의 사상! [존재와 시간][실존주의]

본문내용

태가 유출돼 나오고 있는데, 이것을 하이데거는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이라고 칭한다.
죽음이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개별인간으로 만들고 있듯이 "죽음에로 미리 앞서 가봄"(Vorlaufen zum Tode)으로써,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그 존재가능이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존재가능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그의 죽음을 죽어줄 수 없듯이,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그의 삶을, 존재를 살아줄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이듯이, 나의 삶 역시 나 자신의 고유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죽음에 미리 앞서 가 보기로 결단함으로써, 나의 존재가능을 뚜렷하게 대신될 수 없는 나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능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존재가 자기자신의 "고유한"(eigenes) 존재를 이행하는 양태를 하이데거는 "본래성"(Eigentlichkeit)이라 칭한다. 죽음에로 결단을 갖고 미리 앞서 가 보는 것이 실존의 본래성을 위한 전제이다.
인간 안에서 그 인간을 특징짓고 있는 것으로 무한한 어떤 것, 절대적인 어떤 것, 필연적인 어떤 것을 찾았던 전통의 형이상학과는 다르게, 하이데거는 유한한 존재, 죽음을 향해 존재하고 있는 존재자, 개별자로서 상황에 얽매여 우연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존재자로서의 인간 현존재를 부각시킨다. 죽음을 향한 존재, 죽음을 미리 앞서 가 보는 존재로서의 인간 현존재는 나면서부터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존재가능으로서 죽음을 안고 존재에 내던져져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미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시간성을 이러한 유한성 에서부터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인간 현존재는 유한하게 존재하고 있다. 인간 현존재는 그렇게 존재하면서 시간을 살고 있고 시간을 시간화 시키고 있다. 시간적인, 유한한 존재자인 인간 현존재가 존재자와의 존재관련 속에서 이해하고 있는 존재가, 시간이라는 지평에서부터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시간적, 초시간적, 무시간적(영원)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그 외에도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재가 시간의 의미로 파악되었다는 것은 인간 현존재의 유한성, 시간성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근원적으로 논의되었던 것은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며 존재일반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의 유한한 실존이란 이 목적에 이르는 통과점으로서만 고찰되어야 했다. 여기에서 시간이 인간 현존재의 이해가 행해지는 지평으로 입증되고 있다. 시간을 존재일반의 이해를 위한 매개물로서 표현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 그 문제와 함께 "유한성으로 과연 존재 자체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라는, 그에 잇다른 질문과 함께 {존재와 시간}의 제일부도 막을 내리고 있다.
피투성 기투 - 왜 나는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가
피투성-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이 선댁하지도 만들지도 않은 세계에 자의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자의와 상관없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이런 상태를 피투성이라 이름 붙였다. 이 피투성은 기분, 그중에서도 불안을 통해 자각 된다.
피투성을 자각하는 예) 일상생활의 어느 순간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 혹은 머지않아 죽을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불안을 내포한 물음.. 여기서 왜 나는 존재하는가! 라는 불안으로 부터 자각을 하게 된다.
기투- 이러한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포착해서 재구성하는 시도가 시작된다. 이런 시도를 기투라고 한다.
소크라 테스가 한 젊은이에게 질문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 진리에 다다를 수가(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을까?
하이데커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불안과 죽음의 자각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것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자신이 죽음을 향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개체로서의 인간, 현존재는 미래를 향해서 자신을 던진다. 이런 기투 혹은 결단성에 이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죽음이라는 미래의 시점에 의해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반복된다. 하이데거는 이런 현존재의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시간'을 산출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미래에 두고 있는 이런 상황으로부터 시간이 흘러나온다. 뒤집어 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동물에게 시간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식물에게도 광물에게도 갓난아이에게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렇게 현존재가 산출되는 시간 속에서 '존재 자체'의 의미가 열린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했다.
개시성
내=존재의 중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개시성
내-존재란 현존재가 세계 안에 몰입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현존재가 세계 안에 몰입해 있을 수 있는 근거는 현존재 자신에게 이미 자기의 존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및 세계 안에서 만나는 타자 및 세계 내부적 존재자의 존재가 개시되어(열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존재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레 개시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개시성을 하이데거는 심정성, 이해, 말함, 이 세 가지로 제시한다.
심정성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분’ 같은 것으로, 예컨대 방해받지 않는 안정된 기분, 억제된 불쾌한 기분, 전자로부터 후자에로의 변화, 기분의 손상 급변 지속 ,기복이 없는 무기분 등이다.
이해- 현존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존재가능에 대해, 자신이 취해야 할 입장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가 지니는, 스스로를 완성하여 내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 측면을 지적하여, 그것을 해석 이라고 부른다.
말함- 승인 거부, 권고 경고 언명 상담 대변 진술 연설 등 이런 여러 가지 방식은 현존재를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은 ‘무언가에 관한 말함’의 성격을 갖는다. ‘화제’ 말함이 밖으로 언표된 것이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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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24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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