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파의 경제사상 - 초정 박제가와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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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학파의 경제사상 - 초정 박제가와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도입

Ⅱ. 북학파(北學派)의 경제사상(經濟思想)이란?

Ⅲ.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의 사상
1. 농업 개량을 통한 농업의 진흥
2. 상업진흥론과 유통의 강조
3. 선진기술 · 경영도입론
4. 초정 박제가의 사상사적 의의

Ⅳ.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의 경제사상
1. 이용후생론
① 열하일기
② 수레의 사용
③ 상공업의 활성화
④ 농업과 관련하여
2. 실용주의 사상
3. 직업윤리관과 그의 저서
4. 사상사적 의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서 볼 때 선비도 장사를 할 수 있으며 비록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혁신적인 면을 보였고, 허생전 내용 중에서 변씨에게 10만 냥을 돌려주자 변씨가 만 냥만 받겠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돌려주려 하자 “장사꾼인줄 아느냐”면서 역정을 내는 것에서는 사민(四民)의 직업이 뚜렷하니 다시 선비로 돌아가겠다는 허생의 의지이며 모자기(母自欺)사상이 실천을 허생전을 통해서 실현을 하는 것이고, 이는 허생이 100만 냥을 벌어 절반인 50만 냥을 바다에 던지고 쓰고 남은 돈 10만 냥 역시 돌려주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금욕(金慾)에 견딜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대목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남은 돈 40만 냥을 빈민구제에 사용 것은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도 연결지을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리고 변씨가 쌀과 옷 등을 풍족하게 지원해 주려고하면 이를 거절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양 만큼을 사용하고자 하는 모습은 직업인이 지켜야 할 분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4. 사상사적 의의
박지원은 공리공담으로 흐르는 당시 학계를 비판하면서 오로지 실용적인 학문만을 주장하였다. 양반전 등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사회모순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을 하였으며 또한 연행(燕行)을 통해서 청의 선진문물에 눈을 뜨고 북학론으로 자신의 사상을 귀결시켰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당시 주자학 일변의 학문 풍토를 비판하고 종래에 이단(異端)이라고 지목된 여러 학문조류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와 서양과학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학문의 목표를 실용성에서 찾아 학문이 현실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음향오행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이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새로이 인식한 음행오행론에 대해서도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과학하의 영향으로 자연의 이해에 새로운 틀을 모색하는 과정중의 하나일 것이다. 박지원의 과학적 자연관은 근대 이전의 신비적이고 관념적인 자연이해에서 탈피하여, 자연을 자연 그자체로 이해하려고한 계몽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천소명이시지(自天所命而視之)라고 하는 관점을 통해 인간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는데 이러한 객관화를 통한 사물의 관찰은 사물을 보다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당시 기존에 절대시되었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서도 회의를 품게 되어 인간의 도덕률도 선험적 범주인 천리(天理)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인식하여 ‘생활의 합리화’라는 근대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고, 인간의 우월성만을 강조하여 만물의 위에 군림하고자한 관점에서 탈피를 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연암 박지원의 사상은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Ⅴ. 맺음말
상업을 중시하는 북학파의 대표적인 두 사람인 초정 박제가와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을 살펴보았는데 끝으로 실학의 또 다른 학파인 중농학파(重農學派) 즉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본다. 이들 중농학파는 토지개혁과 농민생활의 안정을 주장했던 유형원(柳馨遠) · 이익(李瀷) · 정약용(丁若鏞) 계열의 학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로 상업발달과 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이들 학파의 특징은 토지제도가 모든 개혁의 기초가 된다고 파악을 하여 전통적인 이상제도인 정전제(井田制)를 기반으로 했지만, 유교의 원전과 고제(古制)를 다시 연구ㆍ재해석하여 개혁론의 이론적 당위성을 확보하면서 당시의 사회변화와 농업생산력 발전까지 수용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탐구했다. 유형원의 균전론, 정약용의 여전론(閭田論) 등은 모두 이런 연구의 산물인 것이다. 토지개혁을 달성하고 그 성과를 국가체제 전반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정치세력의 개편과 정치 참여층의 확대가 있어야 했기에 이를 위해 관료제와 과거 · 교육 · 행정제도, 나아가 향촌사회 조직까지 새로 구상했으며, 이런 체제를 기반으로 조세 · 군사 · 군현제 등을 합리적으로 개혁하고, 양반층의 특권과 신분차별의 원리에 입각한 각종 폐단을 제거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사실을 발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하며,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같은 중세사상의 핵심적인 원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천문학·의학·수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이전에는 천시하던 자연개조와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도 변했는데, 이 역시 신분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작용했다. 중국이 아닌 한국의 현실에서 방법론을 찾는 태도는 한국사 연구와 역사지리 연구에도 적용되어 이 시기 이후로 많은 지리서와 지도가 편찬되었다.
이번 리포트를 쓰면서 북학파의 대표적인 두 사람인 초정 박제가와 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에 대한 리포트를 쓰면서 이들의 사상에 대해 조금 더 아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비전공분야다보니 리포트를 쓰기 위해 자료를 살펴보고 주제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았고 이를 어떻게 써야하는 지도 난감한 문제였었다. 그래도 이들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면서 당시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생각을 해 내었다는 점과 경제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사고를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박지원의 경우 연행(燕行)을 단순하게 휴가개념으로만 받아들여 그 곳에서 접한 문물에 대해서도 단순히 호기심을 보인 것에 그쳤을 텐데 이를 조선에 도입시켜 그 당시 상황을 개선시키자는 생각을 하는 것에서 민족의 발전을 생각하고 당시 낙후된 사회를 개선하고자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어떠할 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실학사상사, 한국철학사연구회, 다운샘, 2000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사회경제사상, 이석린, 충북대학교 사학회, 충북사학, 2002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경제사상과 직업논리, 박용기, 한국전문경영인학회, 전문경영인연구, 1999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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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31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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