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관한 조사와 역사적 연구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I. 서 론

II. 본 론
1. 판소리의 뿌리와 역사
1) 판소리의 뿌리
2) 판소리의 역사
2. 판소리의 고수들
3. 판소리의 구성요소
4. 판소리 열두 마당
5. 판소리 부르는 방법
6. 판소리의 짜임과 문체
1) 짜임(내용)
2) 문체
7. 판소리의 주제
8. 판소리의 형성기
9. 판소리의 전성기

III. 결 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에 의해서 가다듬어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상층의 음악과 하층의 음악이 장단을 통해서 서로 만나는 접합점을 찾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해 방식이다. 게다가 도살풀이의 경우에 모리-발뻐드래 등이 제석거리에서 이어지는데, 규칙적인 장단을 잦게 몰아가다가 보면 4박자로, 더 빠른 4박자로 빨라질 수 있다.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옮아가는 방식은 판소리, 산조, 시나위 등에서 두루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음악사에서 이러한 장단구조나 틀이 상승하는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 매우 보편화되던 방식이었던 같다. 약동하는 생명력과 발랄한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인간 위주의 장단이나 음악이 생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장단틀이 대단히 고집스러운 형식이기 때문에 점층적 가속의 틀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III. 결 론
판소리는 민속음악의 전환기를 장식한 꽃에 해당한다. 판소리는 모든 민속음악의 장단과 선법을 흡수하여 자양분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상층의 음악적 선법까지도 가져와서 가장 수준 높은 음악을 성취한 것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상층의 미의식에 가깝게 가는 집단을 상정할 수 있겠으니 이들 집단이 양반과 경제적·사회적·생업적 고리를 끊지 않았던 이른바 창우집단이다. 창우집단이 무속적 친연성을 가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속적 친연성과는 다르게 상층의 미의식과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정한 집단적 반영된 결과, 독자적인 연행방식을 택하고, 이것이 전성기의 판소리 형태로 질적 비약을 이룩한 것으로 보야야 하겠다. 판소리는 상하층의 공동 합작품이면서 판소리의 이면을 창출하기 위해서 입체적인 소리로 발전하게 된 과정이 전성기의 면모일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는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전성기 시절에 몇 차례 변개를 거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가운데 설득력 있는 가설은 초창기 판소리가 중고제의 면모를 가졌고, 송흥록이 등장한 이래로 동편제가 득세하고, 다시금 서편제가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 견해는 종래에 지역적 개념으로 한정되어 있던 법제나 유파 개념을 시대적으로 확장하려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이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광대들의 행각으로 미루어 보건대, 또는 자신의 근본 모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현지 체험을 미루어 보건대 우리가 민중들에 의해 향유된 판소리의 본디 면모가 무엇이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서편제가 출현하게 된 사정도 민중을 찾아 저자거리를 떠돌게 된 광대의 고민과 지위 격하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성이 요청된다. 전라도 지역의 광대가 많아서 계면길의 선법이 많아졌다고 하는 것은 다시 되새겨야 할 문제점으로 간주된다.
판소리에는 미술사와 관련되는 요소도 많이 함축되어 있다. 첫째는 민화와 소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춘향가>에서 보이는 사벽도 그림이 이에 적절한 사례이다. 사벽도 사설에 보이는 그림의 실제 구성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 전경욱, 『춘향가 사설의 형성원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0.
비슷한 사례로 <심청가> 범피중류 대목에 소상팔경을 묘사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소재는 흔히 조선 전기시대부터 우리 그림의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화제로 등장해서 민간에 널리 전파되었던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이다. 그림의 화제와 판소리의 소재가 공유되고 있는 현상을 이러한 사례로 검증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미술사 가운데서도 판소리와 민화가 서로 상관되는 것은 정서적 기반의 일치성을 찾게 한다.
판소리와 미술사적 관련을 더욱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는 요소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수궁가>에서 토끼화상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나타난다. 또한 <강릉매화타령>에서 강릉의 기생인 매화가 죽었다고 전하자 골생원이 화공으로 하여금 매화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리는 대목이 있다.
) 김헌선, 춘화의 예술사적 전개와 의의, 『민속학연구』 제2집, 국립민속박물관, 1995.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선연하게 등장하는 것은 말로 그리는 그림과 선·형·색으로 그리는 그림이 일치하는 면모를 이처럼 보여준다고 하겠다. 영모의 모습과 성풍속화에서 보이는 인물의 모습이 두 가지 판소리 사설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판소리 광대가 직접 소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도 존재해서 판소리의 연행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자료도 있다. <모흥갑판소리도>가 그에 적절한 사례이다. 모흥갑은 19세기의 대표적 명창인데 평양감사부임과정에서 연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흥갑판소리도>는 판소리 광대의 소재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긴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판소리사와 미술사가 이렇듯이 다면적으로 얽혀 있는 것은 각개의 역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판소리사와 음악사의 전개 또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판소리사와 예술사의 관련 양상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차례가 됐다.
판소리사의 전성기는 예술사의 흐름과 궤적을 같이 한다고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예술사에서는 어떠한 사조가 한번 등장해서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면, 이러한 사조를 수용해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게 된다. 형성기의 판소리가 전성기의 판소리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러한 흐름과도 연결된다. 문학사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이행기적 양상을 보였다. 음악사 역시 이러한 이행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술사도 이러한 이행기적 양상과 관계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소리는 민속적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네 정체성을 특히 뚜렷하게 확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자료>
대구 놀이패 탈, 『민족문화 강좌Ⅰ』, 1988. 11.
박황, 『판소리 소사』, 신구문화사, 1974.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정병욱, 『한국의 판소리』, 집문당, 1981. 4. 10.
조동일, 김흥규 편, 『판소리의 이해』, 창작과비평사, 1978
천이두, 『명창 임방울』, 현대문학사, 1986. 10. 27.
  • 가격3,000
  • 페이지수24페이지
  • 등록일2007.01.31
  • 저작시기2007.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145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