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보편성(普遍性)과 특수성(特殊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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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 보편성(普遍性)과 특수성(特殊性)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정치적 특성
1) 우리 나라에도 봉건제도(封建制度)가 있었는가
2) 중앙집권국가(中央集權國家)의 보편성과 특수성
3) 율령제도
2. 경제적 특성
1) 근대화(近代化)의 문제(問題)
2) 고려, 조선시대의 특성
3. 군사․외교적 특성
4. 사상적 특성
5. 그 외

결론

본문내용

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농업기술이 발달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달되어 상공업이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근대 산업자본을 축적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상공인의 신분은 천시되었고, 상공업은 농업에 예속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비(消費)보다는 절검(節儉)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재부(財富) 보다는 명분(名分)과 심성(心性)을 더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당시의 선비들은 주리더라도 뚜렷한 이념(理念)과 칼칼한 정신력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것이 경제력이 우세한 일본을 압도할 수 있었던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경제력의 약화는 충분한 국력을 기를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3. 군사외교적 특성
국가를 방위하는 데 있어서 외교와 군사는 동일물의 양면이다. 외교에 의하여 다른 나라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상책이나, 부득이하여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는 군사력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려조선시대에 있어서의 외교정책은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으로 집약된다. 문화적으로 앞선 중국에 대해서는 사대(事大)를 하고 기타의 국가들과는 교린(交隣)을 한다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돌궐고구려백제왜의 남북세력이 당신라의 동서세력에게 무너진 뒤 고려초기에는 중국고려가 북방민족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3각 관계로 바뀌었다가 몽고 침입 이후로 대륙세력과는 1:1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게 생존을 위해서는 사대(事大)외교(外交)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때의 사대는 생존을 위한 사대정책을 수립하고 외교로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려 애썼다. 그리하여 국방군을 기르지 않고 정권안보를 위한 왕실(王室宿衛軍)을 중심으로 한 군사편제를 가지고 있었다. 산물이 적고 국가재정이 취약하기 때문에 대군을 기를 수가 없었고 군의 세력이 강해지면 구테타가 자주 일어나 문치주의 정치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 사상적 특성
한국인들은 예부터 앞선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유교(儒敎)불교(佛敎)도교(道敎)천주교(天主敎)기독교(基督敎)가 들어올 때에 모두 그러하였다. 특히 동양의 종교사상은 대립보다는 조화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여러 종교나 사상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었다. 물론 국가의 지배사상이 어느 것이 되느냐하는 주도권 싸움은 있었으나 서로 공격하고 멸절시키려 들지는 않았다. 고려 이전에는 불교가 지배사상이었지만 유교와 공존하였고 도교도 민간신앙과 밀착되어 공존해 온 것이다. 물론 주자학이 조선의 지배대상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독선적으로 다른 사상에 대하여 배타적이기는 하였지만 이것 때문에 피를 흘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유일신을 신봉하는 전혀 이질적인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한 희생도 따랐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종교의 비타협적인 점이 문제된 것이었다. 그런 천주교까지 한국인들은 선교사 없이 자체적으로 한역(韓譯) 천주교서(天主敎書)를 읽고, 교세를 확장해 갔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부를 초빙해 온 바 있다. 이것은 보기 드문 사례로 로마 교황청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종교와 사상은 또한 인간을 중시하였다. 서양인들이 신(神)을 중시한 데 비하여 한국인들은 인간을 중시하였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이 이기심성론(理機心性論)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나, 동학(東學)의 교리가 인내천(人乃天)으로 대표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들의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5. 그 외
신라의 골품제도(骨品制度)는 인도의 카스트적인 신분제(身分制)계층제(階層制)와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스트 제도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골품제도의 체계적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결론
민족이라는 것은 일정한 특징을 지닌 하나의 사회인 것이며, 어느 민족이고 그것이 민족인 이상 기본적인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선후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할망정, 대개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개인이 피부색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간적 경험이 기본적으로 공통점을 지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민족에 작용하는 역사적 법칙이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앞선 민족의 경험을 뒤선 민족은 받아들이게 되며, 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일이요, 자기 민족을 발전시키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 반드시 독자적인 고유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비록 모든 민족들은 공통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즉 같은 보편적인 역사법칙 밑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법칙들이 구체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은 어디서나 같은 수가 없으며, 따라서 각기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만일 일원적(一元的)인 법칙이 역사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면 논리적인 당연한 귀결로서 그러한 특수성을 상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는 각 민족에 따라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원적인 법칙의 지배를 부정해 주고 있다.
우리 문화는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조상들이 슬기와 노력을 기울여 발전시켜 왔다. 우리 문화는 다른 어느 민족의 그것과도 구별되는 특수성(特殊性)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보편적(普遍的) 가치를 추구해 온 문화이다.
문화의 발전이란 전통 문화의 고수와 그것만의 신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 문화의 발전은, 튼튼한 전통 문화의 기반 위에서 선진적 외래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적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사적 보편성을 추구하여 특수와 보편의 조화 위에서 새로운 민족 문화를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
역사란 무엇인가, 양병우, 문학과 지성사, 1979
民族과 歷史 新版, 이기백, 일조각, 1995
한국사 연구입문 초판, 강진철, 지식산업사, 1981
한국역사의 이해, 이성무, 집문당, 1995
두산세계대백과사전

키워드

한국,   한국사,   보편성,   특수성,   봉건,   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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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04
  • 저작시기2007.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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