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경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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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경제의 변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2차대전의 일본 패망

2. 전후 미군점령기의 일본경제(1945~1951년 : 6년)

3. 미군점령 해방 & 한국전쟁의 결과(1950~1953년 : 3년)

4. 고도성장기의 일본경제(1955~1973년 : 18년)

5. 구조조정기의 일본경제(1973~현재 : 약 20년간 )

6. 결론

본문내용

위해서는 수년간의 시일이 필요했다. 또 감량을 위해서 노동관계비용을 가능한 절감할 필요를 느꼈는데, 남자로부터 여자로, 저임금의 주부층 파트타이머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② 금융비용의 경감
- 금융비용의 규모는 차입금의 규모와 금리수준의 양자에 의해 결정된다. 금리부담에 허덕이던 기업은 설비투자를 억제하고, 신규차입금의 증가를 자제하며, 회사채의 상환에 힘쓰는 한편 금리저하를 계기로 부채를 일단 상환하고 다시 차입하는 방법으로 이자부담을 경감시켰다.
③ 비용절감을 위한 합리화
- 기업은 우선 재고를 필사적으로 억제했다. 또, 설비투자도 가능한 억제하여 대형콤비나트 조선 등에서는 설비해체가 진행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비용억제와 원료와 에너지의 절감이 강구되었다.
④ 산업구조 변화
- 일본경제는 두 번에 걸친 석유위기를 모두 극복하기는 하였으나 전후 처음으로 물가급등, 마이너스 성장, 경상수지 적자라는 세 가지 악영향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석유위기는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발전해 온 일본경제에 큰 충격이었다. 과거 일본 산업은 철강업과 석유화학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주 에너지원은 원유였다. 당시에는 낮은 원유가격이 일본의 중화학공업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에 의해 철강업, 알루미늄, 제련업, 석유화학공업 등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소재산업이었다. 그러나 석유위기 이후 원유를 비롯한 1차상품의 가격상승에 의해 중화학공업은 큰 불황을 겪게되고 산업구조를 바꾸게 된다.
일본제조업은 국제경쟁력이 매우 강했는데, 이는 제품 품질의 우수성, 세밀한 마케팅기법, 낮은 제품 마진, 엔화가치의 저평가 등을 열거할 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질의 제품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이 주된 원인으로 꼽을 수가 있다. 오일쇼크에 대응하여 일본기업은 제품단위당 투입량을 줄이는 자원, 에너지 절약형 투자를 추진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
⑤ 에너지대책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발생하면서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일본경제에는 엄청난 타격과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일본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경박단소형” 산업구조로 변화를 모색하였다.
⑥ 석유파동을 극복한 "JAPAN IS NO.1"!!
- 일본경제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응해갔다. 석유 다소비형의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에 끈기있게 노력하고 일반가정생활에서도 석유절약형으로 변용되어 갔다. 일본의 원유수입량은 73년 2.9억KL 에서 82년 2.1억KL 이상으로 3/4 까지 감소하였다.
- 일본경제의 변화를 초래한 것은 먼저, 석유 다소비형의 대규모 산업이었던 철광, 석유화학, 요업(시멘트, 판유리) 등에 있어서의 석유절약, 에너지절약을 위한 설비합리화와 열효율향상 등에 걸친 기업의 노력이 현저해졌기 때문이다. 자동차 연비효율의 비약적 증가와 가정 전기제품 개개의 전력소비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둘째, 전자공학의 발전에 의한 새로운 기술혁신의 힘찬 전개가 생산구조와 산업구조 전체를 상당히 변화시켰다. 반도체 고밀도화와 전자응용 기술을 목표로 지향하게 되었고 기계공업과 전자공학의 재래분야를 하나로 융합하면서 유리와 시계, 정밀기계, 공작기계와 로봇 등의 산업기계, VTR과 AV 등의 전기기계, 마이크로 컴퓨터와 OA 등 전산기 부문 등에 잠재해있던 사회적 요구를 새로 발굴하고 혁신적인 민간투자를 재건하였다. 물론 제 3차 산업, 금융과 물적유통 부문이 정보서비스화에 의해 크게 변화했다. 오일쇼크 후의 일본경제가 구조조정을 표어로 민간기업을 재구성한 노력에 대하여 에델 보겔은 ‘JAPAN IS NO.1’ 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의 구조조정기의 일본경제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 1973년 제 1차 석유파동으로 일본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불황이 공존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게 되었고 1974년 실질GNP성장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지출확대에 따른 수출의 급증, 국채의 대폭발행, 에너지·물자절약 등으로 경제회복이 이루어졌다. 특히 ME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혁신투자로 중후장대형(重厚長大型) 제품을 대신하여 경박단소형(輕薄短小型) 제품이 시장을 석권하여 제1차 석유파동을 극복하였다.
- 1979년 6월과 1980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유가인상조치로 서독을 제외한 구미 여러 나라는 겨우 회복 과정에 있던 스태그플레이션이 또다시 심각해졌으나, 일본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경상수지는 1979∼1980년 2년간 적자가 되었으나, 무역수지는 흑자 폭이 축소되었을 뿐, 물가의 상승은 원유가 상승의 범위에 머물러서 심각할 정도의 상승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GNP성장률이나 광공업생산도 별로 저하되지 않았으며 법인기업의 경상이익률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였다.
- 그러나 일본경제가 제2차 석유파동을 극복한 듯이 보였을 때, 국제경제환경은 1980∼1982년까지의 세계불황에 직면하여 일본의 경제성장률도 1980년까지의 5% 전후에서 1981년의 4%, 1982∼1983년의 3%대로 둔화되어 갔다. 제2차 석유파동 후 엔화의 하락으로 수출은 급신장했고, 경상흑자가 즉시 엔 환율의 상승을 몰고 오지 않았다는 점은 특이한 일이다.
-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후 50년 동안 세계경제의 우등생이라고 불리던 주가와 지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이른바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사상 최대의 심각한 장기 경제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1998년도(-0.8%) 및 2001년도(-1.3%)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
- 특히 2001년은 경기후퇴와 물가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디플레이션 스파이어럴현상이 가시화되기도 했다.
- 2002년에 들어 수출증가 및 재고조정 진전 등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으나 대외여건의 악화와 국가경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가시지를 않아서 경제전망은 여전히 어두웠다.
- 2003년 3월 닛케이지수는 20년 만에 최저수준인 8144.12포인트로 추락했다. 따라서 일본경제는 대폭적인 체질개선과 경제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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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07
  • 저작시기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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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9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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