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가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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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인의 국가와 정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정치학]
한국인의 국가와 정치
-정치인류학적 접근-

♣ 시작하면서...…………………………1p

♣ 한국인의 국가와 정치…………………2p

본문내용

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권력에 대하여 그 가치를 제고하는 의미에서였던 것이다. 즉, 전통적 가치로서의 덕과 충효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일반 감정인데 반하여 권력은 그들의 정치적 화장술을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권력은 개인화 될수록 권력의 신성화와 폭력을 동시에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의 경우는 반공과 독립운동의 경력과 박사 칭호가,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후원 속에서 신성화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그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은 반공의 올가미 속에서 사회주의화 시키거나 정치적으로 거세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는 반공과 친미경제발전을 권력으로 신성화시키고 정당화시켰던 것이다. 그의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친공세력이 되거나 정치적 압력으로 그 기회를 상실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TV와 방송매체는 정치연극화의 좋은 도구였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부인이었던 육영수에 대한 국민적 찬사는 그의 권력을 어느 정도 신성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그에 비하여 전두환이나 노태우 정권의 경우는 이렇다할 정치적 정당성을 창출하는데 실패한 경우다. 또한 그 반대급부로 정치폭력 역시 지나친 억압성을 띠게 되어 박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함에도 불구하고 과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민적 세력의 성장에도 기인되는 바가 있다.
한국 역사에서 권력이 정당화되고 신성화된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 희생 속에서만 인지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왕의 노력과 지도자의 노력, 엘리트 자신의 희생 속에서 인정되었고, 종교적인 이해 속에서 그리고 외세에 대한 자기 희생적 노력에서 인물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리더십에 관하여 볼 때, 유학에 기초된 왕조체제의 전통과 사회계층 그리고 인맥구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에서 한국에 있어서의 정치리더십은 극히 단순하다. 두 종류를 나누자면 전통적 관료로서 정치리더가 된 경우와 인맥구조를 통해 정치리더가 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현대에 있어서의 한국 정치 리더쉽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의 학벌과 관료적 배경을 통해 형성되었다. 건국후의 정치리더쉽은 선거제라는 측면에서 전통보다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나 인맥구조와 돈과 학력 또는 공무경력이라는 점이 일선정치경력보다 우선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야당정치인으로 성공하기란 극히 힘든 것이 현실이며, 더욱이 인맥구조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인물의 탄생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달리 말하면, 전통적 도덕률에 의해 기초된 한국 민간사회에서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자리 잡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쿠데타 구조나 관료로서 정치에 등용되는 기회를 통해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이 탄생된 것이 보편적 사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치리더쉽은 명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고, 그것은 반공친미 또는 민족주의 노선상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폭력의 수단과 방법에 관하여 보면, 한국에 있어서의 정치폭력은 항상 집권자에 의해 자행되었다. 건국기에는 암살과 집단테러, 건국후의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는 군대와 경찰과 폭력조직이 반공이라는 표어아래 국회의원에서 일반시민까지를 테러의 대상으로 정하였고, 박정권 때에는 정보부와 군부가 주축이 되어 정치인과 권력비판자들, 학생 및 노동운동을 하는 세력에 대해 감시하고 조종하였다. 전두환 정권에 있어서는 박정권에 비해 두드러지게 군대의 동원을 공식화 하였고, 경찰과 정보부는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형태였다. 노태우정권과 김영삼정권에 있어서는 사회적 불안이 줄어들면서 권력의 폭력화 현상이 줄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40년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국민의 저항의식이 비교적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와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한국의 역사상 정치적 카리스마는 항상 민족적 이수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이승만의 카리스마는 극도의 반일감정과 관계가 잇고, 박정희의 경우에 경제발전의 의지가 카리스마가 되었다. 그와 함께 한국에 있어서는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개인적인 극복과 그것의 민족적 실현이 카리스마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집권과 함께 정책으로 구체화 될 때, 카리스마가 다져진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민족이라는 관계성은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 엘리트의 충원은 선거와 대통령의 지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선거에 의해 충원될 때는 경제력과 개인적 학력, 경력과 관계가 깊고,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충원될 때는 학력과 공무 경력, 개인적 친분 정도가 중심이 되었다. 충원의 대부분이 40, 50대이며, 고교나 국내 유명대학(특히 서울대)이 학력과 인맥 구조의 핵심이었다.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정치 충원의 큰 유형이다.그렇게 이루어진 정권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여당의 것이었다.
정치 후계에 관해서는 여당과 야당의 방식이 서로 달랐다. 우선 야당의 경우에는 집권자의 집권의지로 인해 후계자가 지정되지 못한 채로 당이 분열되거나 새로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당은 정치 구조 속에 후계자가 은연중에 지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후계자는 지도자와 운명을 같이 하며, 경제력과 군부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한국은 절대 신관의 부재 속에 조상신이 신인동격이고 현실주의적 경향의 도덕론자들에 의한 조합주의적 방어형 국가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가부장권은 권위주의로 변모되고, 도덕철학은 인륜질서를 강조하고, 인맥은 파벌을 형성하며, 관료주의가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들을 토대로 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결코 그 흐름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즈음에서 한국정치를 예견해 본다면 한국 정치는 다만 그 외견상으로 민주주의로의 길을 가고 있다고 소리칠 뿐, 실상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행태는 비민주적 권위주의와 현실 패권적 기회주의에 기초된 태도들이 만연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한국사에서의 자주성 결여로 인해 증감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주성을 강조하고 또 그것이 실제 사회에 적용되어 나타난다면, 통일과 더불어 새로운 국가의 창출과 정치 가치가 올바르게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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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27
  • 저작시기200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6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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