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1. 일본 기술사 제도
2. 미국 기술사 제도
Ⅱ. 산업기술사의 개념과 대상에 관한 논의
Ⅲ. 경제발전과 기술
Ⅳ. 기술사의 유용한 개념과 분석틀
Ⅴ. 외국 기술사 연구의 중요한 몇가지 논점
1. 기술진보의 획기로서 산업혁명
2. 산업혁명기 이전 동.서양 기술의 비교
Ⅵ. 한국기술사 연구의 중요한 제논점
Ⅶ. 맺음말
1. 일본 기술사 제도
2. 미국 기술사 제도
Ⅱ. 산업기술사의 개념과 대상에 관한 논의
Ⅲ. 경제발전과 기술
Ⅳ. 기술사의 유용한 개념과 분석틀
Ⅴ. 외국 기술사 연구의 중요한 몇가지 논점
1. 기술진보의 획기로서 산업혁명
2. 산업혁명기 이전 동.서양 기술의 비교
Ⅵ. 한국기술사 연구의 중요한 제논점
Ⅶ. 맺음말
본문내용
건설하여 공공연구소와 기업연구소를 유치하였다. 고도성장기에 '國家技術革新體制'가 잘 작동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80년대 이후 기술은 다음의 점에서 점차 결정적으로 중요한 생산요소로 부상하였다. 첫째, 기술은 후발성의 이점에 의존하지 않는 성장동인을 구축하는 데에 관건이 된다. 둘째, 한국의 고도성장을 낳은 중요한 동인은 투자의 급속한 확대였지만, 90년대의 경제적 침체와 90년대말의 경제위기는 투자주도적인 성장의 애로를 드러낸다. 그 애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단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셋째, 80년대 이후 산업발전을 주도할 산업은 기술집약적인 첨단산업인 것이다. 넷째, 86년 미국의 압력에 의해 외국제품의 역행적 엔지니어링을 막기 위해 지적 재산권을 유지하는 새로운 법률이 도입됨에 따라, 기술개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80년대 이후 정부와 기업은 기술개발이 국제경쟁력의 핵심이라 인식하여, 해외기술의 도입에 한층 적극적이고 기술개발에 힘썼다. 정부는 1986년 공업발전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책의 핵심을 기술력 확대에 두었고 연구개발단계의 조세·금융지원을 확대하였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간 기술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관·민의 기술지원시스템으로 구성된 광범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위한 각종 기술지원기관 기능을 공업진흥청이 조정하였다.
정부는 선진기술을 전파하는 직접투자의 유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대에 직접투자는 증가하여 91년에 11억달러를 초과한 후에 하락하였다가 94년부터 급증하였다. 1978년에는 기술도입을 자유화하고 이후 도입조건을 완화하며 84년에는 기술도입에 대한 인가제도를 신고제도로 바꾸었다. 기술도입의 자유화조치와 기업의 적극적인 기술도입으로 인하여, 1980년 1억달러를 넘은 기술료지급액이 90년에 10억달러, 96년에 20억달러를 넘어섰다. 기술도입이 가장 활발한 업종은 기계, 전기·전자, 정유·화학의 순이었다. 87년부터는 고급기술을 도입함에 따라 건당 지급규모가 커졌다.
1980년대 이후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빠르게 신장하여 83년에는 국민총생산에 대한 비중이 1%를, 92년에는 2%를 넘어섰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총연구개발비 중에 정부의 부담률이 압도적이었지만, 1980년대 전반에 민간주도의 연구개발체제로 전환하였다. 민간기업은 1980년대 이후 기술개발을 중시하여, 자체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첨단기술을 배우고 획득하였으며, 중요 다국적기업과 기술적 연계를 확대하였고, 외국의 첨단기업을 합병, 인수하였다. 이러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경제력을 가진 것은 대기업이었다. 중소기업도 부설연구소를 활발히 설립하였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활동을 수행할 자금력에 애로를 가졌으며, 대기업·중소기업간 기술협력의 연관성이 약하였다. 80년대 이후 정부는 민간기업이 개발위험 때문에 투자하기 어려운 기술 분야의 개발투자를 주도하였다. 박우희·배용호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기술흡수·개량의 단계로부터 기술개발의 단계로 진입하였다. 달리 말하면, 1970년대 모방적 의존형에서 1980년대 전반에 창조적 모방형으로, 1980년대 후반 이후 창조형으로 전환하였다.
) 박우희·배용호, 『한국의 기술발전』 (經文社, 1996), 20, 27쪽.
金仁秀에 의하면, 한국은 1960·70년대에 단순모방 전략을 추구하다가 1980·90년대에 점차 창의적인 모방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 김인수, 『모방에서 혁신으로』 (SIGMA INSIGHT, 2000).
1980년대에 한국은 기술혁신에 의거하지 않고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제1차 산업혁명의 핵심적 발명의 하나인 力織機가 영국에서 특허를 얻은 지 116년이 지난 1901년 한국에 처음 도입된 데에서 드러나듯이, 제1차 산업혁명은 영국보다 1세기 이상 뒤졌고, 그나마 주로 일본에 의해 이식되었다. 19세기말 구미에서 전기·화학·자동차산업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은 1세기를 지나지 않은 1970년대 전후에 우리의 힘으로 달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정보산업, 지식집약산업, 고도기술산업의 성장이 현저하였으며, 한국도 압축성장을 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임에 따라 이러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 1980년대 이후 극소전자화(Micro-Electronics)기술에 기초를 둔 반도체·컴퓨터·통신기기공업을 중심으로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인터넷 이용과 전자상거래는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경제위기 이후 급성장하였다. 새로운 물결로서 발전한 지식정보화산업에서는 한국은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선진국과 거의 동시대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사에서 지식정보화시대의 개막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1990년대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돌이켜 보건대, 세종대까지 한국은 세계 최고인 중국의 과학기술을 잘 흡수하고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하였으나, 이후 기술의 활력이 약화되고 유럽과 일본에 기술적으로 추월당하게 되었다. 20세기는 한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추적한 시기였다. 특히 고도성장기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현저히 축소하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기술발전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Ⅶ. 맺음말
본고를 통하여 경제적 관점에서 기술사 연구에 기여할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한국은 기술사에서 많은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전근대에는 기술의 변화에 관한 사실이 잘 밝혀져 있지만, 그 원인과 영향에 관한 경제적 설명은 앞으로 더욱 추구될 필요가 있다. 기술사에 관한 경제사적 접근은 근대 공업화시대에 한층 강력한 분석도구를 제공하나, 근대 기술사의 연구 자체가 그다지 축적되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산업기술사학회의 출범은 21세기 한국기술사 연구의 진전을 위한 귀중한 토양을 조성할 것이다. 이 글이 비록 학문적인 독창성이 부족하더라도, 역사학과 자연과학·공학이 경제학과 교류함으로써 한국기술사 연구를 위한 조그만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80년대 이후 기술은 다음의 점에서 점차 결정적으로 중요한 생산요소로 부상하였다. 첫째, 기술은 후발성의 이점에 의존하지 않는 성장동인을 구축하는 데에 관건이 된다. 둘째, 한국의 고도성장을 낳은 중요한 동인은 투자의 급속한 확대였지만, 90년대의 경제적 침체와 90년대말의 경제위기는 투자주도적인 성장의 애로를 드러낸다. 그 애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단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셋째, 80년대 이후 산업발전을 주도할 산업은 기술집약적인 첨단산업인 것이다. 넷째, 86년 미국의 압력에 의해 외국제품의 역행적 엔지니어링을 막기 위해 지적 재산권을 유지하는 새로운 법률이 도입됨에 따라, 기술개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80년대 이후 정부와 기업은 기술개발이 국제경쟁력의 핵심이라 인식하여, 해외기술의 도입에 한층 적극적이고 기술개발에 힘썼다. 정부는 1986년 공업발전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책의 핵심을 기술력 확대에 두었고 연구개발단계의 조세·금융지원을 확대하였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간 기술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관·민의 기술지원시스템으로 구성된 광범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위한 각종 기술지원기관 기능을 공업진흥청이 조정하였다.
정부는 선진기술을 전파하는 직접투자의 유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대에 직접투자는 증가하여 91년에 11억달러를 초과한 후에 하락하였다가 94년부터 급증하였다. 1978년에는 기술도입을 자유화하고 이후 도입조건을 완화하며 84년에는 기술도입에 대한 인가제도를 신고제도로 바꾸었다. 기술도입의 자유화조치와 기업의 적극적인 기술도입으로 인하여, 1980년 1억달러를 넘은 기술료지급액이 90년에 10억달러, 96년에 20억달러를 넘어섰다. 기술도입이 가장 활발한 업종은 기계, 전기·전자, 정유·화학의 순이었다. 87년부터는 고급기술을 도입함에 따라 건당 지급규모가 커졌다.
1980년대 이후 정부와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빠르게 신장하여 83년에는 국민총생산에 대한 비중이 1%를, 92년에는 2%를 넘어섰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총연구개발비 중에 정부의 부담률이 압도적이었지만, 1980년대 전반에 민간주도의 연구개발체제로 전환하였다. 민간기업은 1980년대 이후 기술개발을 중시하여, 자체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첨단기술을 배우고 획득하였으며, 중요 다국적기업과 기술적 연계를 확대하였고, 외국의 첨단기업을 합병, 인수하였다. 이러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경제력을 가진 것은 대기업이었다. 중소기업도 부설연구소를 활발히 설립하였지만, 실질적인 연구개발활동을 수행할 자금력에 애로를 가졌으며, 대기업·중소기업간 기술협력의 연관성이 약하였다. 80년대 이후 정부는 민간기업이 개발위험 때문에 투자하기 어려운 기술 분야의 개발투자를 주도하였다. 박우희·배용호에 의하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기술흡수·개량의 단계로부터 기술개발의 단계로 진입하였다. 달리 말하면, 1970년대 모방적 의존형에서 1980년대 전반에 창조적 모방형으로, 1980년대 후반 이후 창조형으로 전환하였다.
) 박우희·배용호, 『한국의 기술발전』 (經文社, 1996), 20, 27쪽.
金仁秀에 의하면, 한국은 1960·70년대에 단순모방 전략을 추구하다가 1980·90년대에 점차 창의적인 모방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 김인수, 『모방에서 혁신으로』 (SIGMA INSIGHT, 2000).
1980년대에 한국은 기술혁신에 의거하지 않고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제1차 산업혁명의 핵심적 발명의 하나인 力織機가 영국에서 특허를 얻은 지 116년이 지난 1901년 한국에 처음 도입된 데에서 드러나듯이, 제1차 산업혁명은 영국보다 1세기 이상 뒤졌고, 그나마 주로 일본에 의해 이식되었다. 19세기말 구미에서 전기·화학·자동차산업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은 1세기를 지나지 않은 1970년대 전후에 우리의 힘으로 달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정보산업, 지식집약산업, 고도기술산업의 성장이 현저하였으며, 한국도 압축성장을 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임에 따라 이러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깊숙이 들어갔다. 1980년대 이후 극소전자화(Micro-Electronics)기술에 기초를 둔 반도체·컴퓨터·통신기기공업을 중심으로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인터넷 이용과 전자상거래는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경제위기 이후 급성장하였다. 새로운 물결로서 발전한 지식정보화산업에서는 한국은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선진국과 거의 동시대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사에서 지식정보화시대의 개막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1990년대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돌이켜 보건대, 세종대까지 한국은 세계 최고인 중국의 과학기술을 잘 흡수하고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하였으나, 이후 기술의 활력이 약화되고 유럽과 일본에 기술적으로 추월당하게 되었다. 20세기는 한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추적한 시기였다. 특히 고도성장기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현저히 축소하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기술발전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Ⅶ. 맺음말
본고를 통하여 경제적 관점에서 기술사 연구에 기여할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한국은 기술사에서 많은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전근대에는 기술의 변화에 관한 사실이 잘 밝혀져 있지만, 그 원인과 영향에 관한 경제적 설명은 앞으로 더욱 추구될 필요가 있다. 기술사에 관한 경제사적 접근은 근대 공업화시대에 한층 강력한 분석도구를 제공하나, 근대 기술사의 연구 자체가 그다지 축적되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산업기술사학회의 출범은 21세기 한국기술사 연구의 진전을 위한 귀중한 토양을 조성할 것이다. 이 글이 비록 학문적인 독창성이 부족하더라도, 역사학과 자연과학·공학이 경제학과 교류함으로써 한국기술사 연구를 위한 조그만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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