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극의 세계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 전통극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序論)
1. 연구목표
2. 연구방법 및 한계점

Ⅱ. 본론(本論)
1.. 전통극의 역사
1) 삼국시대 이전의 연극-전통극의 시작
2) 삼국시대의 전통극
(1) 고구려
(2) 백 제
(3) 신라
3) 고려시대의 전통극
4) 조선시대의 전통극
(1) 조선 초기
(2) 조선중기
(3) 조선후기

2.. 전통극의 이해
1) ‘민속극’이라 불리우는 전통극

3. 전통극의 표현방법
1) 가면극(탈춤)
(1) 봉산탈춤
(2) 강령탈춤
① 연희시기
② 연희장소
2) 인형극
(1) 꼭두각시 놀음
(2) 박첨지 놀이
① 줄거리
3) 그림자극
(1) 만석중 놀이

4) 판소리
(1) 판소리의 정의
(2) 판소리의 역사
(3) 판소리의 종류
① 춘향가
② 심청가
③ 흥보가
④ 수궁가(토별가)
⑤ 적벽가(일명 화용도 타령)
⑥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횡부가)

4. 전통극의 변모와 쇠퇴

Ⅲ. 결론(結論)

본문내용

을 얻지 못하였다. 최초의 창작 창극이라 할 「은세계」만 하더라도 그의 진보적인 내용으로 인하여 관객의 저항을 받았으나 원각사 倡憂들은 재래의 판소리 여섯마당과 신소설 몇편을 창극으로 만들어 계속 공연했다.
1909년에 접어들면서 국운이 급속히 쇠퇴함에 따라 극장 원각사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즉 1909년 11월에 문을 닫음으로써 원각사는 겨우 1년 반 밖에 존속하지 못했던 것
개의 창극단을 조직하여 각각 활동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분파로써 1912년에 이다. 원각사가 문을 닫자 전속단원들은 金昌煥 협율사와 宋萬甲 협율사 두 광주에서 金采萬 문하생들이 조직한 광주협율사가 있었다. 이들 세 창극단은 서울과 지방에서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의 창극을 공연했다. 이들은 大小道具도 거의 없이 흰 포장만을 두르고 공연하였는데 차차신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泰山峻嶺을 그린 화폭배경과 간단한 집도 설치하고 필요에 따라 대소도구도 나열하였던 것이다. 정통적 판소리의 창법이 변형되기 시작한 것도 1910년대 후반부터 였으며 이는 신파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파와 영화의 번성으로 특별한 발전을 못한 창극은 차츰 관객을 잃어갔고 1920년대 들어서 더욱 퇴조되어 갔다. 따라서 그들은 離合集散을 거듭하면서 유랑극단으로서 지방으로 흘러다녔다. 그러다가 송만갑 등이 1933년 서울에서 조선성악연구회를 발족시켰는데, 이것은 전국 창극인들이 창극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하여 모인 전국적 규모의 단체였다. 산하 창극단으로 唱劇座를 둔 이들은 동양극장이 설립되자 1936년「배비장전(裵裨將傳)」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그런데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모임은 몇년 못가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창극좌만은 해방될때까지 계속 공연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1939년에 창극단 화랑이 생겨났고 그 밖에 同一唱劇團, 半島唱劇團 등이 발족되었으며 1942년에는 창극좌가 화랑과 통합하여 조선창극좌로 출발하였다. 지방에도 몇개의 창극단이 있었다. 이들 창극단의 주요공연 내용은 판소리 여섯마당 중의 「춘향전」「심청전」「흥부전」「토끼타령」「화용도」등과「배비장전」「유충열전」「장화홍련전」등의 고대소설, 각색사극인 「마의태자」「황진이」「백제의 낙화암」그리고「재봉춘」「빈부」등의 소위 신작창극까지 상연하였다. 상업주의연극의 영역에서 창극은 이렇듯이 만족할만한 발전을 갖지 못하고 저속한 복고주의적 취미에 영합하는 기미마저 보였던 것이다.[註8]
이와 같이 해방될 때까지 창극활동은 계속되었다. 창극이 이처럼 흥융(興隆)을 거듭하는 동안 같은 전통극이라 할 탈춤과 인형극, 그림자극은 더욱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그림자극은 완전히 없어졌고 인형극과 탈춤은 지방에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탈춤과 인형극을 가지고 다니는 여러 개의남사당패들이 많이 없어진 것도 이 시기였다.
이처럼 전통극은 개화 이후서양문물에 밀리고 또 일제가민족혼이 서려있는 전통문화를 말살시키려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하여 계속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Ⅲ. 結論
"연극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질문을 하면 우리는 몇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 무대', '무대위의 배우', '희곡', '조용하고 점잖은 관객', '극의 시작과 끝 그리고 마술처럼 전환되는 무대를 위한 암전'..
위의 것들은 일제시대와 친미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들로서 우리의 전통예술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한국의 전통극은 '한바탕 떠들썩한 놀이',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 없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연희', '아무 곳이나 자리만 깔아지면 놀이판이 되는 마당', '시끄럽고 직접 배우가 되어 함께 즐기는 관객', '조명이나 무대, 대기실이 없이 open 되어 잇는 배우'. '밤새 웃고 떠들며 즐기는 연희'의 모습으로 연극이라는 확실한 장르보다는 춤, 노래, 신명이 어우러진 하나의 종합 예술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통극은 현재 연극, 국악, 무용 등 여러 분야의 뿌리가 되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한국 전통극은 세계 여러나라들 연극의 기원이 그러하듯 풍년과 복을 비는 제의적 의식에서 시작하여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찬란히 발전하였다.
각 나라마다 외국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그들의 발달된 문화를 들여와 우리의 것으로 소화시켰기에 다양한 문화가 발달하였고 음주가무를 즐겼던 우리민족은 '전통극의 표현방법'에서 연구한 몇가지 장르의 연구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연희적 성격이 짙은 공연문화를 찬란히 발전시키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극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극장이 생기고 무대가 생겼으며 새로운 공연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어 창극과 같은 신연극이 탄생하게 되었고 서민적인 전통극들은 일제 탄압에 의해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는 소수의 사람들이 힘겹게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며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전통예술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 졸린 것.'에 지나지 않게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극은 예전 우리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한풀이었고, 즐거운 놀이였으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신명의 문화였다.
우리극의 시작과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나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이렇듯 재미나게 즐겼던 색다른 재미를 무관심속에 버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뿌리를 잃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전통극에서 우리 민족의 민족성 및 정서에 대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미흡하게 연구되고 있는 전통극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 전통극의 시작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에 중심을 두었고 전통극의 쇠락과 전통극이 근대극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하여서는 필요에의해 간략하게 다루었다.
일제시대부터의 근대극에 대한 연구는 다음 연구로 미루기로 한다.
[참고문헌]
1. 한국의 극예술 최웅, 유태수, 이대범지음
2.조선시대(고대소설 고대수필 판소리 민속극 비평)
3.문화예술 1983년 3/4월호
4.서울六百年史
5. 해서 가면극 연구소 홈페이지
6.한국의 소리꾼 조상현 홈페이지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7.04.16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481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