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선교설교][일본 조합교회의 선교][남감리교 선교]사도행전의 선교설교와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및 남감리교 선교 심층 분석(사도행전의 선교설교,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남감리교 선교,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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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도행전][선교설교][일본 조합교회의 선교][남감리교 선교]사도행전의 선교설교와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및 남감리교 선교 심층 분석(사도행전의 선교설교,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남감리교 선교, 사도행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사도행전의 선교설교
1. 선교설교의 형태
2. 선교설교의 신학적인 틀

Ⅲ.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1. 일본 조합교회의 선교 정책
1) 조선전도론
2) 海老明의 신학과 선교정책
2. 일본 조합교회의 조선 선교 과정
1) 초기의 선교과정
2) 중기의 선교과정
3) 후기의 선교과정

Ⅳ. 남감리교 선교

Ⅴ. 결론

본문내용

거의 개선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전세계 가정의 3분의 2가 매일 저녁 굶주린 채 잠자리에 든다. 매일 1만5천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간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의 보고에 의하면 제3세계에서는 9천만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가출아동, 학교의 낙제생 또는 기아(棄兒)-길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보내는 교회와 받는 교회라는 예전의 구분에 의해 이 간격을 메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전히 세 계의 부는 대체로 앵글로 색슨 사회에 편중되어 있다. 1976년에 세계 인구의 6.1%에 불과한 북미가 세계 부의 30%에 달하는 GNP를 기록했다. 그 다음이 서유럽으로 세계 인구의 13%가 전세계 부의 31.8%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두개의 중심권으로부터 세계 선교력의 85%이상이 비롯되고 있는데, 바로 풍요에서 비롯되는 선교인 것이다. 에스겔의 선교의 일면은 백성들이 거하는 곳에 함께 거하는 것이었다(에스겔3:15). 이같이 풍요에서 비롯된 선교가 어떻게 하면 가난한 자들과 함께 거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이런 격차가 더 커져가고 있다. 제3세계의 도시들처럼 소수 부유층과 다수의 가난한 자 사이의 경제.정치.사회적 격차가 큰 곳은 없다(Peter Gutkind, Urban Anthropology). 소위 개발도상 지역에서는 도시화의 정도가 산업화된 나라들에서보다 3~4배 빠르다.
1950년에 멕시코 시티의 인구는 220만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말이면 그 인구가 3천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950년에 제3세계 국가들의 도시화는 16% 미만이었다. 만약주님의 재림이 늦어진다면, 20세기 말에는 그들의 도시화는 41%에 달할 것이다. 도시의 생활방식은 좋은 생활, 새로운 생활의 표본처럼 여겨지고 있다. 도시는 이주자들에게 경제적 기회, 변화, 자기 표현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미래의 직면한 주요 문제들이 더욱 악회되어가고 있다. 즉 이곳에서 숨겨져 있던 빈민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리오데 자네이로에서는 1947년에 40만이던 판자촌(favela) 인구가 60년대 초반에 들어 백 만 이상으로 증가했다. 1947년에서 1967년 사이에 카라카스와 보고타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가 1년에 거의 7$나 증가했는데, 그 대부분이 판자촌 지역에서의 증가였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집단이주는 도시빈민을 낳고, 도시인구의 급증을 초래하고 있다. 또 기대의 상승은 좌절의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 자유 상실, 소외, 기아, 무기반(無基盤) 등에 직면한 빈민들은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가 말한 새로운 문화에 젖어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도시들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회를 주도하던 교회의 영광은 1940~1950년대에 사라졌다. 즉 서구 식민주의의 종말, 선교에 있어 바스코 다 가마 시대의 종국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이제 교회는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체제의 정치 권력과 맞서고 있다.
국수주의는 더 이상 문제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보다 크고 심각하다. 즉 지역 및 지역외적인 이데올로기, 그리고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 사회내의 엘리트 그룹이나 특정 사상주의자에 의해 제시되는 미래 청사진이 문제이다. 인간은 이러한 광범위한 전략들에 의해 조종되고 이용당하며, 거기에 따라 좌우되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우익과 좌익 정부를 형성한다. 정치학자들은 오늘날 거의 모든 제3세계국가들이 독재정치 하에 있다고 본다. 그들간의 차이점은 그 체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사회의 소수 엘리트인가, 아니면 대중인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맑스주의자와 모슬렘,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모두가 준법이나 혁명을 요구하며 국회와 감옥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선교는 무엇인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북한과 필리핀에서. 우리는 압제와 독재주의의 상황하에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삶으로 보여주고 증거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제자로서 인권 압제, 복음전파의 방해, 비국교도로서의 고통, 세례 및 교회 건물에 대한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최근,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선교를 예배, 봉사, 전도, 교제에 국한시켰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교의 정의에서 공의가 위치할 자리는 어디인가 세계의 피압제자들은 동정이 아니라 공감에 귀를 기울인다. 동정과 공감의 차이는 사람들을 단순히 죄인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의 피해자로 보려는 우리의 적극성에 기인한다. 인종차별은 그러한 차이점을 망각한 백인 식민주의의 잔존물이다. 이러한 사회. 경제. 정치적 배경에 반하여 세계의 비기독교 인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세계 인구는 2억5천만이었다. 1970년에 세계 인구가 40억이 되었을 때 세계의 비기독교 인구는 28억으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실 때의 11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주후 2000년이 되면 세계 인구는 50% 증가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 의하면, 크리스챤은 그 거대한 인구의 15%밖에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와같은 계산을 선교 지향적인 정보로 연결시키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10년 동안에, 선교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unreached people) 개념이 제기됐다. 그러면 어떤 그룹을 가리켜 복음을 듣지 못한 그룹(unreached people group)이라고 하는가 가장 최근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외부의(통문화적인:corsscultural) 원조없이 자체를 복음화할 수 있는 원주민 크리스챤 공동체가 없는 그룹.
그러한 그룹에게 복음을 전하는(reaching) 것은 그 그룹을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즉 주님의 교회 안에 가입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복음전파의 명령이 특유한 문화를 가진 공동체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또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를 떠나 낯선 환경에 뛰어들 우리 왕의 개척자 같은 종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여행해야만 하는 그러한 지역들은 최소한 1만 6천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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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1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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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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