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의 특수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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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각장애인의 특수교육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청각장애인의 역사적 이해

Ⅱ. 청각장애인의 특수교육 발달사

Ⅲ. 우리나라 청각장애인의 교육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를 읽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홀부인은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에서 쓸모 없다는 세간의 그릇된 관념을 깨뜨리는데 맹인교육이 시급했다.
4. 이창호 목사에 의해 세워진 평양광명 맹학교의 농교육
이창호 목사는 마펫트 선교사 등의 도움으로 1935년 평양에 평양광명 맹학교를 설립하여 맹교육과 함께 농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통학제와 기숙제를 병행하였으며, 처음에는 수화법 위주로 지도하였으나, 후에는 구화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교사들은 모두 한국인으로서 특히 사명감이 투철하였다.
이처럼 초기의 우리나라 농교육은 주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당시 기독교 전파가 가장 활발하였던 평양에서 그 근원지를 이루었다. 그 교육의 동기도 주로 기독교적 자성정신, 그리고 구빈 보호에서 비롯하고 있으며, 교육은 기숙제와 통학제를 병행하면서 주로 수화법에 의존해 왔음을 볼 수 있다.
5. 광복 후 농교육의 발달과정
1945년 광복은 우리 자체의 힘으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민주사회의 건설을 지향해 왔다. 그리하여 교육면에 있어서도 새로운 민주사회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육의 민주화가 여러 측면에서 시도되었다. 1948년에 제정된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잇는 기회를 균등하게 개방하는 국민교육 체제를 확립하였다.
광복 이후 경향 각지의 민간인에 의해 우리나라의 농교육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광복 후 민간인으로서 최초로 사립 농교육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1946년 4월 19일에 대구맹아학교를 설립한 이영식 목사이다. 그는 1950년 5얼에 맹학생 2명과 농학생 2명을 데리고 국회의사당에서 당시 신익회 국회의장의 배려로 의장단상에서 국회의원들에게 특수교육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한 즉석 강연과 학생들이 특기를 시연해 보여줌으로써, 국회의원들이 즉석에서 기금을 모아 제공하는 한편, 이들 장애인들에게도 국가가 보조해 줄 것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1947년 9월에는 중등과를 신설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 특수교육기관이 되었다. 이 무렵 초대 국립맹아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윤백원(尹伯元)은 한글 지문자(指文字)를 제정하여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농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교육 분야를 살펴보면 해방 당시 단 하나 뿐이던 농락교가 현재는 30개 이상정도 학교로 늘어나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전에 누리지 못했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의 확산도 실로 놀랄만하다.
참고문헌
김병하, [특수교육의 역사적 이해], 서울: 형설출판사, 1979.
김영환 외3인, [특수교육학 해설],
김영환 외3인, [특수아 지도론], 서울: 흥인사, 1985.
로젯타 셔우드 홀, [아시아에서 청진기를 가지고], 1978.
백난준, [한국개신교사],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73.
원영조 외3인 [청각자애아교육], 대구대학교출판부, 1992.
청각장애자복지회 편, [청각자애편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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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5.24
  • 저작시기1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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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1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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