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요약] 예언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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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것이다. 많은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종말론 사상’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어 다른 중동 종교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순니파의 여섯 번째 믿음은 카다르로 ‘나의 운명을 정한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 카바의 검은 돌 주변을 들고 있는 메카의 순례자들 : 무슬림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바 사원은 아담 때 처음 세워졌는데 노아의 대홍수 때 사라져 버리자 아브라함이 다시 이를 세웠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에 대한 진실된 믿음의 증표로 자신의 아들인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려 하지만 하느님은 이를 어린 양으로 대체해 주었다. 감격한 아브라함은 그 장소에 카바의 성소를 세우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검은 돌을 나르며 도왔다고 한다.
- 대체로 순니파는 이 개념을 ‘인간의 능력과 생명은 신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운명은 절대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정명으로 번역한다. 물론 수니파도 인간의 자유 의지를 더러 인정하지만 창조성은 절대신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므로 인간에게 창조의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시아파에선 카다르를 강압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보며 자유 의지를 강조한다. 즉 인간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아파는 카다르 대신 이맘, 즉 최고 종교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고 본다.
- 신앙의 다섯 기둥
① ‘신앙의 증언’
② ‘예배’
③ ‘종교 납부금’ : 근로소득의 2.5%, 불로소득의 10%를 의무적으로 바친다.
④ ‘금욕적 단식’
⑤ ‘순례’
9.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공동체
- 무함마드 다음으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할리파라지만 그들은 이전 아랍 부족 사회의 부족장 선출처럼 움마의 합의에 의해 선출되었고 그들의 지위 역시 공식적으로 다른 무슬림들과 평등했다. 그만큼 할리파들은 암살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 3대 할리파였던 우스만의 살해 세력에 대한 보복 문제를 놓고 4대 할리파였던 알리와 당시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알린는 살해되고 무아위야는 새로운 우마이야 할리파 조를 창건하게 된다.
- 우마이야 조의 집권 세력에 저항하는 정치 집단이었던 알리의 추종자들은 종교운동으로 그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이들 무리가 ‘알리의 당’이란 뜻의 ‘시아 알리’로 알려지면서 시아파가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시아파는 순니파와 달리 4대 할리파 시대를 ‘이슬람의 정통 시대’가 아니라 ‘할리파의 찬탈 시대’로 규정했다.
- 대부분 순니파로 분류되는 무슬림들은 코란이나 예언자의 언행(하디스)과 예언자 시절의 관행(순나)에서 무슬림의 삶의 원칙(이슬람 성법)을 확인하고 여기에서도 해답이 안 나올 경우에는 할리파를 중심으로 한 움마의 의견 일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 시아파의 활동은 결국 할리파를 중심으로 한 움마의 울타리로부터 이탈한 것이었다. 정치와 종교의 통일 속에 확립된 움마의 단일성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시아파의 행위는 무슬림들의 일반적인 신앙 행태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 순니파가 법체계가 확립되는 이슬람력 3세기 이후로는 무즈타히드의 전통이 닫히게 되었다고 보는 반면에 시아파는 어느 시대에나 자격을 갖춘 법학자는 코란과 하디스의 원칙 위에서 스스로 논리를 전개하여 직접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순니파의 할리파와 달리 시아파의 이맘은 울라마를 능가하는 법의 해석권마저 물려받은 셈이다. 시아파는 첫 번째 이맘이 바로 알리였다고 주장했다. 이맘의 권능이 알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졌기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할리파의 계승권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12번째 이맘이 자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데 언젠가는 이 ‘숨은 이맘’이 마흐디(일종의 구세주)가 되어 다시 나타나 진정한 이슬람을 회복하고 온 세상을 다스릴 것으로 시아파(시아파의 주류를 이루는 12이맘파)는 기대하고 있다.
10. 이슬람의 또 다른 얼굴, 이슬람 신비주의
- 절대 다수인 피정복민을 대상으로 이슬람 개종을 실천한 역군들은 바로 수피들이었다. 이들은 엄격한 이슬람의 유일신의 원칙을 적용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복지의 전통적인 관습과 사상을 관용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쉽게 원주민들의 정서와 결합해 나갔다. 그러나 확산의 과정에서 수피즘에는 미신적 경향이 많이 흘러들었고 이슬람의 고유한 공동체 중심의 신학사상이 퇴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11. 철인이 다스리는 세상을 향해
- 18세기 중엽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생하여 무슬림 세계를 풍미한 와하비,(초창기의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개혁운동)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수피의 성인 숭배 사상은 물론 울라마가 맹종하던 종교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전통적 해석’도 비판하였다. 이슬람 신학파와 법학파의 해석 대신 예언자의 교우의 관FP인 순나를 중시하며 오직 코란과 순나가 기록되어 있는 하디스의 권위만을 인정했다. 후에 추종자들은 이를 조금 수정하여 이즈마(이슬람력 300년까지 이루어진 움마의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지켜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그것을 의무 규정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하디스의 구절 하나하나가 이 시기의 움마의 합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슬람의 원리주의 운동은 와하비적인 청교도 정신과 압두의 살라피야 정신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와하비파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하여 보수 이슬람의 보루가 되었던 반면 원시 이슬람으로 돌아가 현대 세계의 인본주의 사상과도 완전한 조화를 도모하자는 살라피야 운동은 혁명적 행동주의로 발전하였다. 명목상으로나마 1,300여 년 간이나 존재하던 할리파제가 폐지된 것이 두 가지 개혁의 조류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신은 예언자에게, 예언자는 이맘에게, 이맘은 파키에게 그 권한을 이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메이니에 따르면 지난 역사에서는 이들 권한을 파키보다 세속의 군주들이 휘둘러 왔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바로잡아 철인이 다스리는 플라톤의 이상공화국처럼 파키라는 종교인이 다스리는 이슬람식 이상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호메이니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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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20
  • 저작시기2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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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1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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