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임나일본부설의 모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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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사]임나일본부설의 모순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광개토태왕의 비문으로 바라본 임나일본부설
2.가야 그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에 대하여
3.가야와 임나는 동일 국 인가?

Ⅲ. 결 론

본문내용

사람이 거주하고 다른 한쪽은 任那 사람이 거주하거나 아주 인접해 있는 두 부락 중 한 부락은 百濟인 그리고 다른 부락은 任那人이 살고 있으며 任那와 新羅 사이도 매일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며 任那와 高句麗 사이도 걸쳐 넘어서 왕래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인접해 있다.
앞서 『日本書紀』에 기록은 任那가 섬이라고 했는데 高句麗 百濟 新羅 伽倻 4國과 모두 가까운 섬이라면 이를 한반도에서 찾는 것 자체가 지리적 모순이라 할 것이다. 결국 任那는 倭와 한반도의 사이 즉 對馬島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任那의 구성원은 百濟 新羅 伽倻 高句麗의 流民들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는 任那가 610년 7월부터 623년 까지 新羅의 관위를 사용하였고, 623년 7월부터 645년 7월까지 百濟의 관위를 사용하였다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재석 『일본 고대사의 진실』 일지사 1998 -197p
결국 任那라는 지역을 종합적으로 평가 하자면 한반도내부의 난세를 피해 대마도로 이주해온 百濟 新羅 界 유민을 주축으로 형성된 政治勢力으로 규정지을 수 있으며 후방에 이러한 독립된 政治勢力을 두고 있던 新羅는 당장 伽倻와 百濟라는 대항세력 앞에서 이들에 대한 토벌을 미루어 오다가 532년 가야를 복속시키고 30년 후인 562년 大伽倻의 반란을 진압하면서부터 任那의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Ⅲ. 결론
이제껏 나는 日本이 주장하는 任那日本府說의 논리적 허구성을 짚어 왔다. 그들이 任那日本府說에 사료적 근거로 삼았던 廣開土太王碑의 辛卯年 記史의 내용의 허구성과 그들이 말하는 침략의 전초기지로 서의 伽倻가 당시 그들의 야마토 정권과 비교 했을 때 터무니없이 강했다는 점을 짚어보았고, 마지막으로는 任那와 伽倻가 동일 국이 아닌 개별 된 정치세력이라는 세 가지 근거로 任那日本府說의 근거와 유지 자체의 허구성을 짚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任那日本府說의 허구성을 짚어 보는 데에는 첫 번째로 내가 내새웠던 근거인 廣開土太王碑의 丙申年 記史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任那日本府說 이라는 것 자체가 검증된 사료적 근거로는 廣開土太王碑의 辛卯年 記史외에는 찾을 수 가 없기에 이러한 辛卯年 記史에 이어지는 丙申年 記史의 내용만으로도 그들이 말하는 한반도 남부의 200년 통치는 6년으로 단축 될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주장을 허구로 돌리기는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글을 준비하며 나는 이러한 사고가 얼마나 안일했던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6년 이라하지만 사학도로서 단 하루의 역사라도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자 했던 것 은 용납 되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며 직접 김해를 둘러보고 伽倻의 높은 수준의 철기문화를 본 나로서는 6년이 아닌 단 6시간이라도 伽倻가 日本의 지배 하에 놓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확신 할 수밖에 없었다.
古代에 있어 철기와 청동기의 싸움이란 지금으로 치자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무기와 전법을 가지고 현대전에 그대로 대입시켜 전쟁을 수행 하는 것과 같은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철기와 마갑의 보유란 철기의 강인함은 둘째 치고 라도 이를 대량생산하고 말 한 마리에 일일이 맞추어 마갑을 만들어낼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을 말함인데 이러한 것은 결국 강인한 왕권과 확고한 유통체제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문화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伽倻란 너무나 잊혀지고 은폐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앞서 伽倻를 설명하며 언급했듯 건국 초 新羅에게 伽倻란 너무나 높은 벽이었고 그러한 까닭에 의도적으로 은폐된 伽倻의 歷史는 너무나 오래도록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역사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역사를 마주볼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 史學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의 길을 시작한 우리 사학도의 의무이며 다가오는 해양시대 역사가 우리에게 원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끝으로 이글 읽는 이들이 이글을 통해 任那日本府說의 허구성과 더 이상 3國時代가 아닌 4國時代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맺고자 한다.
- 참 고 문 헌 -
이성시, 박경희 『만들어진 고대』 삼인출판산 2002
최재석 『일본 고대사의 진실』 일지사 1998
윤명철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 였다』 사계절 출판사 2000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범우사 2002
윤내현 『한국 열국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임병주 『삼국왕조 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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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7.07.22
  • 저작시기2007.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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