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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령][요한 공동체][성령이해][예수님][교회][세례]성령의 호칭, 성령의 상징(표현), 요한 공동체의 성령이해, 성령이 예수님에게 오신 의미, 성령이 제자들(교회)에게 오신 의미, 성령과 세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성령의 호칭

Ⅲ. 성령의 상징(표현)

Ⅳ. 요한 공동체의 성령이해
1. 요한 공동체의 상황
2. 요한복음의 독립성
1) 요한복음내의 고별설교
2) 보혜사 성령
3) 보혜사 성령에 관한 복음서 본문 주석
4) 14:17 진리의 영과 세상안의 제자들

Ⅴ. 성령이 예수님에게 오신 의미

Ⅵ. 성령이 제자들(교회)에게 오신 의미

Ⅶ. 성령과 세례

Ⅷ. 결론

본문내용

기억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허락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위험은 ‘안수’라는 방법을 통해서 성령세례(부어주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안수하는 자가 준다는 표현이 아니라 이 일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하늘로부터 허락된 것이라는 표현이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설교만 하고 안수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성령의 임함을 보고 물 세례를 베풀었을 따름이다. 성령은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내려오시는 분이지 누구에 의하여서나, 요구에 의하여 오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주신 것이요, 보냈다는 것이며 우리는 받아야 할 것이지 내가 가서 달라고 하고 빼앗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첫째, 우리는 항상 약속과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능력과 체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분에 대하여 인격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성령의 부어주심을 원하는 그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늘 확인해 보아야 한다.
둘째, 이것과 양립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령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죄와 죄들로부터 거룩케 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양립될 수 없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신’ ‘자아’이다.
내가 주인이 되는것,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세째,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큰 상징이다. 기도는 인과율의 방법으로써 동원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우리 자신도 모르게 결과시키고 있다. 우리는 기도로써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소원을 아뢸 뿐이지, 우리의 것을 요구하고 강요할 권리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과 성품과 뜻에 우리 자신을 점점 맞추어 나가기 위해 애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확인되는 것은 내가 구할만한 자격이 없고 또한 그것을 얻을 만한 자격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것이다. 기도하면서 생각할 것 중의 하나는 이 당연한 약속을 내가 받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아직도 내가 양립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될 옛사람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전심전력이라는 말 속에는 정열을 다하라는 것 뿐만 아니라 인내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것을 얻기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
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구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
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
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이는 얻기까지 강청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것이 얼마나 강렬한 묘사인가를 알아야 한다. “구하는 것”은 처음에 자기가 필요한 것을 아는 때이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모습이다. “찾으라”이것은 비슷한 위치를 잡은 것으로 이 근처 어디겠다 하며 대강 위치를 잡은 것이며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그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성령의 부어주심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절실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찾기까지 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복종과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알려는 열망과 그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그의 종이 되고 그의 영광을 따라서 살려는 소원으로 이 일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며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욕구로 자리잡아야 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
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긴장시키며 하나님의 약속과 그 오묘하신 영광 앞에서 자신을 조명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며 진지한 기도로 무릎꿇는 아름다운 기초가 확인되어야 한다.
Ⅷ. 결론
성령론의 새방향
성령사역의 현대적 연속성의 발전
1950년대부터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오순절 운동의 효율서과 중요성을 인정했다. 밴 둔센은 \"오순절 운동은 중요성에 있어서 초대교회를 세우는 것과 그리고 개신교 종교개혁에 비교될 수 있는 .. 혁명이다\"라고 선언했다. 한편 화란의 부수적 개혁신학자 버카워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기적이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우주적 차원의 발전
성령은 단지 그리스도의 영일뿐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고 제 3위격을 지닌 하나님이시다. 영을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창조의 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삼위일체적인 인격성의 재발견
성령은 인격성을 가지고 있어 초대교회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했다. 중세교부는 보에티투스는 인격을 \"합리적 본성이 개별적 실체\"라고 하였고 성령의 인격성은 본체론적 삼위일체론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삼위는 자기 자신 안에서 회전하며 자기자신 안에서 안식하는 준환 활동 속에 있고 인격성은 현재와 마주 있음으로 특징짓는다. 개혁신학의 성령론은 복귀되어야 하며 기적이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에 대하여 평가절하 하거나 의문시하는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 다른 편으로 WCC 운동의 성령사역의 초자연적 측면을 복귀시켜야 한다. 바르트의 성령은 우주와 세상을 보존하시는 창조의 영으로 확장시켜서 이해해야 하며 개혁신학의 성령론을 성령의 인격성을 신학적으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 개혁신학은 성령이 독자적인 위격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동시에 영광을 돌려야 할 하나님으로 복귀시켜야 하며 이 구체적인 처소는 초대교회가 예배시에 실천적으로 고백한 \'삼위일체적인 송영\"이고 이송령은 신약성경과 더불어 초대교회가 경험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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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1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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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4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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