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나타난 '質'의 의미 - 박제상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삼국유사와 비교.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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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質’의 개념
1. 교질(交質)
2. 납질(納質)
3. 출질(出質)
4. 취질(取質)

Ⅲ. 삼국사기에 나타난 ‘質’ 의 사례

Ⅳ. 박제상 이야기속‘質’의 의미
1. 시대적 배경
2.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편
3.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내물왕과 김제상’
4.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드러난 ‘박제상 이야기’ 비교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여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의 동북아 국제정치관계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박제상 이야기를 통해 신라에서 고구려로, 신라에서 왜국으로 인질을 파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質 의 유형에서 5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국제 정세에 비추어 보아 그 종류를 생각해보면 우선, 신라에서 고구려로 보낸 質은 신라에서 고구려를 강국으로 인정한 다음, 고구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에서 질을 보내어 상대국과 우호관계를 맺는 납질의 경우라고 추측이 가능하겠다. 당시 신라는 백제나 왜국 등 여러 외적의 침입을 받고 있었고, 고구려는 5C 장수왕 재위시기에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에 새겨진 ‘을묘년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이라는 글씨에서도 당시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를 뒷받침해준다.
삼국사기에서는 박제상이 의리와 논변으로 質을 구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사기에 나타난 質 구출 이후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침입 기사 삼국사기 신라 본기, 눌지 마립간 38년, 8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와 눌지왕 시기 고구려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백제와 맺었던 나제동맹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 마립간 39년,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백제를 침범하니, 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다.
으로 신라와 고구려간 신뢰관계가 손상되었다는 점, 이후 신라가 고구려에 자발적으로 質을 보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을 통하여 고구려 입장에서 신라의 質 을 보내주는 것에 대하여 좋지 않게 보았다는 것을 추론해본다.
다음으로 신라에서 왜국으로 보낸 質의 유형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먼저 신라에 왜국에 대하여 출질을 보낼 만큼의 월등하게 우월한 강국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가 고구려에 보냈던 質의 의미처럼 납질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왜국이 신라에 대하여 월등히 우월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난 고구려에 보낸 質에 비해 왜국에 파견된 質의 내용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삼국사기 눌지마립간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 마립간 15년. 여름 4월에 왜병이 와서 동쪽 변경을 침범하고 명활성을 에워쌌지만 아무 소득이 없이 물러갔다. 28년 여름 4월에 왜병이 금성을 열흘 동안 에워쌌다가, 양식이 다하자 그냥 돌아갔다.
에서 왜가 침입해 왔으나 신라의 방어로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납질은 아니라고 본다. 취질 역시 강제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정될 수 있다. 따라서 신라에서 왜국으로 質을 보낸 것은 대립하는 두 집단 간이나 국가 간에 있어서 휴전, 또는 우호관계를 상호 보증하는 표시로 질을 서로 교환할 때 발생하는 교질의 형태라 추론이 가능하겠다.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박제상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충’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권영호, 박제상 전승의 양상과 의미, 어문학 제75집, 2002
권영호는 ‘박제상 이야기’속의 충을 이상적 충과 현실적 충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충은 이상적으로는 지극히 공변되고 사사로움이 없고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추구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개별적 상황이나 시대적 환경에서 비롯하는 사회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수행되는 양면성을 지님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박제상 이야기’속의 충의 개념은 공통적으로 이상적인 충을 강조했다고 생각되어진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유교적 이념을 강조하였고, 시대적 배경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과 같은 내부적 변란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였기에 더욱이 이상적 충을 강조 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의 시대 역시 몽고의 침입에 맞서 자주 민족정신이 강조되던 때였고, 이러한 상황에 발맞추어 국가의 번영과 연계되는 호국불교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적 충’을 강조했던 것은 공통적이지만 여기서 세부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삼국사기는 충을 국가적 관점에 통치 질서를 강조하였고, 삼국유사는 개인의 입장에서 개인의 진실한 충의 마음이 국가 중흥의 기반이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는 관찬사서인데 반하여 삼국유사는 사찬사서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의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삼국시대의 동북아 국제정세는 혼란스러웠으며, 특히 박제상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동북아 관계는 매우 복잡하며 미묘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연계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개인’이라는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까지 흐르고 있다. 또한 우리는 박제상 이야기를 통해 속의 당시 동북아 국제관계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각 국가 간 생존을 위한 세계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박제상 이야기’를 통해 미시적인 차원에서 현재의 파편화 되어가는 개인의 인간성과 미약해져가는 공동체 의식을 생각함은 물론, 거시적인 차원에서 현대의 한 중 일간의 신뢰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나행주, 고대한일관계에 있어서의 질의 의미, 건국대학교 사학회, 건대사학, 1993
권영호, 삼국사기 삼국유사 비교소론 , 신라학 연구
권영호, 박제상 전승의 양상과 의미, 어문학 제75집, 2002
임종욱,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의 서사물 기술태도 비교, 국어국문학논문집 제16집
엄기영, 삼국사기 삼국유사 소재‘ 박제상 이야기’의 비교 고찰,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3
홍순영, 김제상 서롸에 대한 일고찰, 한국전통문화연구 제2집, 1985
*목 차
Ⅰ. 머리말
Ⅱ. ‘質’의 개념
1. 교질(交質)
2. 납질(納質)
3. 출질(出質)
4. 취질(取質)
Ⅲ. 삼국사기에 나타난 ‘質’ 의 사례
Ⅳ. 박제상 이야기속‘質’의 의미
1. 시대적 배경
2.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편
3.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내물왕과 김제상’
4.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드러난 ‘박제상 이야기’ 비교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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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8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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