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의 발전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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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불교가 중국문화에 끼친 영향

3. 중국의 사회와 사상

4. 중국불교의 준비기

5. 중국불교의 정착기
1) 남부지역
2) 북부지역

6. 중국불교의 독자적 성장기

7. 중국불교의 전용기

8. 중국의 불교유산

9. 중국사회와 불교역사의 상관관계 일고찰

10. 맺음말

본문내용

극복하고자 했던 사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데 실패하였다. 신유학을 창출해낸 사람들은 불교의 영향들로 뒤덮인 풍토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심지어 그들이 표현하는 언어나 대화방식마저도 불교의 영향아래 형성되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고대 중국의 경전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내용도 결국은 불교에 대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들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유학의 두 줄기는 불교지배기 동안 전개된 논쟁속에서 자기수양과 깨달음에 대한 두 가지 방법론과 연결될 수 있다. 주희학파는 점진적인 경향을 나타냈던 반면 왕양명학파는 순간주의를 강조했다. 이것은 불교철학이 고유사상에게 지적 세계의 주도권을 내어주면서 당시에 부흥하고 있는 유교에 의해 전용된 하나의 주된 방식이었던 셈이다. 새로운 사상체계를 이루고, 개인 및 집단 행동양식의 새규범을 제시하며, 제도상의 개혁을 이룩한 송대의 유교는 격변하는 사회에서 효율적인 정부구조가 확대됨에 따라 그를 통해 널리 보급되었다. 여기서 그러한 사회적 변화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가 재래적 요소에 의해 끊임없이 전용되고 그 자체도 점차적으로 약화되면서 송대 이래의 사회는 전대와는 현격히 다른 사회로 변하였다. 몇 세대에 걸쳐 불교를 후원해 왔던 대귀족가문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전시대보다 사회적 유동성이 한층 커졌다. 신유학은 불교사상 중 호소력을 계속 지녔던 요소들을 무의식적으로 전용해 가면서 지배층의 철학과 이념세계를 점유해 갔다. 이는 이미 내적 활력이 감소된 불교의 사상적 전통들로부터 상류계층의 관심과 후원이 서서히 멀어져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계층을 신유학이 지향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하였다. 불교가 중국사회의 두 계층간의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시켰던 이전의 식과 비교할 때, 근대에 들어서는 농민계층의 종교적 기풍과 지배층의 합리적 유리사이에 확실한 분리현상이 나타났다. 궁극적으로 불교, 도교, 기타 토속종교의 요소들은 거의 하나의 통일적인 민중종교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민중종교의 전파에 있어서는 국가권력이 크게 좌우되었다. 전반적인 통치자의 후원정책은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종교의 보급에로 한정되어 있었다. 전부의 정책들은 민중들이 소박하게 섬겨왔던 신앙들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민중신앙은 상당수가 다른 종교와 혼합된 양상을 보였다. 인도불교의 극락사상은 민중도교 계통의 민중신앙에 의해 전용되었고, 결국 대개의 민중신앙에서 인과응보의 사상으로 변모되었다. 민중의 축제에서도 상당수의 경우 불교적 요소가 가미되어 나타났다. 지배층과 농민사회를 통해 살펴본 전용의 과정은 또한 이들의 계층구분을 초월하는 또 다른 사회적 측면들 속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전용의 과정이 어느 정도는 종교로서의 불교의 한계와 약점들로부터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8. 중국의 불교유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사에 있어 불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중국에 불교가 남긴 유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우선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국문화에 의해 전용되어 버린 사상, 언어, 그 밖의 문화요소들과 근대 서양과의 충돌속에서 흔들리는 중국문명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적 전통을 발견하고 재해석하며 이용해 재조명해 보려는 노력이다.
불교를 근대적으로 재조명하게 된 원인은 중국문명 자체의 와해와 침식에 있었다. 중국불교의 유산을 재분석하려는 또 다른 동기는 중국역사의 재검토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다방면에서 다시 일기 시작한 불교에 대한 관심은 폭넓은 지적, 정치적, 사회적 활동들에서 보다 분명히 부각되었다. 근대 중국에서 불교가 지닐 수 있었던 호소력은 단지 소수의 정치적, 사회적 엘리트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근대 중국에서의 부활을 실패로 끝맺게 했던 또 다른 측면의 한계는 불교의 비정치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오늘날 중국불교는 체계화된 하나의 종교로서 마지막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널리 산재해 있는 불교의식과 신앙요소들은 사회 전체에서 체계적으로 소멸되고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중국에서 불교유산은 아마도 문학과 언어, 연극과 미술 속에서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9. 중국사회와 불교역사의 상관관계 일고찰
이 책에서 살핀 2천년간의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중국문명이 지닌 독특한 특성과 지속적이면서도 반복되고 있는 발전양식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 먼저 중국인의 가슴속에는 자신들 문화를 자기모순 없는 통일체로서 파악하는 경향이 이상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둘째로, 정치적으로 분열을 겪으면서 동시에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사상이 무너지는 시기가 바로 외래사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유일한 기간이었다.
셋째로, 중국문화와 와래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 흡수'개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와 함께 들어온 요소들은 단순히 흡수된 것이 아니라 전용의 과정에서 원래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문화적 융합을 이루어내는 데 일정몫을 당당하였다.
넷째로, 중국에서의 불교역사는 최근의 공산주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특정한 사상 혹은 생활양식에 대한 중국인의 광신적인 믿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다섯째로, 행동과 신념의 문제에 대해 중국정부가 독특하게 행사해 왔던 권위의 농도를 살펴왔다. 중국의 불교는 인도로부터 그들에게 전해진 종교와 문화를 처리해 온 장기간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사회는 외래문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수용과 거부를 되풀이하면서 그들 외부적 요소들로부터의 영향을 꾸준히 받아온 것이다. 이런점에서 이 책은 중국사회와 종교, 특히 외래종교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10. 맺음말
행동과 신념의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언제나 독특하게 그의 권위를 행사해왔다. 국가권력의 힘이 중국 불교의 오랜 역사에서 사상과 활동을 제한하고 규정짓는 역할을 해 왔다. 또한 실용적인 관점에서 사회통제를 위해 종교적 신념을 소멸시키지 않은 채 오히려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순수교리를 유지하는 데 불교가 실패한 것은 이와같은 정의 정책과 탄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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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7.09.19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8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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