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국민성 비교 연구(국가경쟁력에 기초하여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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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서론

본론
1. 한국과 일본의 국민성과 사례연구
(1) 한국의 형식주의
(2) 일본의 실용주의
2. 국가 경쟁력과 국민성의 상관관계
(1)한국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2)일본의 외래문화 수용태도 - 자기화
3.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반된 측면
(1) 한국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
(2) 일본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병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뚜렷한 권위체가 없는 경우 일본인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한다. 여기서의 개인주의적이라는 것은 집단주의의 반대 의미로 서구에서처럼 개개인의 인격과 가치, 행동의 선택을 우선하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구성원들끼리의 교감이 부족한 개인적 사고와 행동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예를 들면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왕래가 드물고 쉽게 상부상조하지 않고, 상대에 폐를 끼치는 것을 꺼려하는 것과 좁은 한계 이상의 접촉을 꺼리는 것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일본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 양식은 때때로 보다 공동체 지향적인 한국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주의적인 관계에서도 일단 특정한 권위체가 개입되면 일본 사람들은 역시 집단주의적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아파트 주민들끼리 개인적으로는 접촉을 하지 않더라도 아파트 자치회라는 권위체가 개입될 때는 매우 일사불란하고 정돈된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민들끼리는 개인주의적 관계이지만 주민과 아파트 자치회의 관계는 집단주의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결론
개방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시기에 서양의 압력이라는 외재적 요인에 의한 바는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는 현재 두 국가의 국가 경쟁력의 차이를 초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것을 이 두 국가의 국민성을 살펴봄으로써 알아보았다. 일본 국민성의 경우 실용주의와 받아들인 문화를 자기화 시키는 국민성이 현재의 일본 국가 경쟁력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자가 지닌 요소들을 모방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정에 맞게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로 재창조하였다는 것은, 문화의 근원적 뿌리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그 뿌리에 새로운 힘을 부여하려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고착화된 유교 문화로 인한 형식주의와 철저하게 我方/他方을 구분하려는 이분법주의, 극단주의는 국가의 경직성을 초래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분법으로 인한 사회의 소모적 인 논쟁은 국가 경쟁력의 저하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문제가 대두되어 ‘철거해야 된다/하지 말아야 한다’ 식의 논쟁,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함에 있어서 선/악 대결 구도가 조성되는 것은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분법이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더욱 조장될 수 있다. 두 국가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자기 이익에 약삭빠른 여우( 융통성 있는 태도, 양면적인 태도로 이익 극대화함) 와 우둔한 곰(추구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남, 융통성의 부재)으로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제시된 국민성이 국가 경쟁력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극단성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열의가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과 응원 열기는 그것을 설명 할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인들의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려는 태도-여우가 외면적으로는 애교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이중적 태도는 국제 사회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세계사에서 지난 1 천 년간 인류의 역사를 가장 빛낸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칭기즈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정복자 혹은 침입자로 기록되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나 이는 칭기즈칸의 침략을 받은 반대편 사람들의 기록에만 의존한 결과의 것으로 현대에 이르러서 그의 진면모가 재평가 되고 있다. 몽골은 당시 문자하나 변변치 못하였으나 칭기즈칸 활약에 힘입어 역사상 유래 없는 대몽골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몽골제국의 규모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영토를 아우르는 것으로서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제국의 규모만큼이나 주목하여야 할 사항은 몽골제국의 존속이 칭기즈칸 사후까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에 있다. 역사상 대부분의 제국들이 제왕의 사후, 쇠퇴기를 거쳐 결국에 멸망에 이르렀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몽골제국의 특징적인 것이라 하겠다.
칭기즈칸은 타고난 유목민족의 기질을 발휘하여 적장의 지형적 특성을 읽어내는 것에 능하였다. 그는 기마병과 기동성을 이용한 전략적, 전술적부대기동을 완전히 터득하고 있었으며 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매우 철두철미하여 배반과 강탈은 철저하게 응징하였다. 또한 후일에 대비하여 적의 남자는 단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고 전해진다. 칭기즈칸은 현실에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현실주의적 인물로 몽골인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정복 지역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 지역 고유의 종교를 인정하고, 지식인을 존중하였으며 종족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였다. 부하들이 전리품을 착용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제왕의 권력을 이용하여 함부로 죽이지 않았으며 의심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그 옛날 저마다 다른 기질의 종족들이 공존하며 몽골제국을 존속, 번영시켜 나아갈 수 있었던 사실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변환기를 맞이하는 현 상황에도 상당히 유용한 교훈이 될 것이다. 일찍이 노자가 남을 아는 자는 똑똑하다고 하고(知人者 智) 자기를 아는 자는 현명(自知者 明)하다고 했다. 국가의 경우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국에 대한 성찰과 함께 부족함을 깨달아 유용한 것을 취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글로벌 사회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共存共榮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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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호, <가족주의의 성격과 경제성장과의 관계 -한국과 일본의 비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1987년 12월
이재광, 19세기 세계체계의 변동과 한국 일본의 자본주의 편입과정 비교, 고려대대학원.
이충교, <한국인과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관한 사례연구-‘장(場)’의 단절성과 연 계성을 중심으로->, 세명대학교 대학원,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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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0.01
  • 저작시기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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