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진주성대첩의 배경과 실상과 원인탐구를 통한 바른 민족사의 교육방안(탐구학습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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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1

2. 본론
1) 1차 진주성대첩의 배경과 실상........................1 ~ 6
2) 원인탐구를 통한 바른 민족사의 교육방안..............6 ~ 7
3) 사회과 교수 ․ 학습의 실제 (탐구학습모형)..............8 ~ 11

3. 결론............................................ 11

4. 붙임자료.................................11 ~ 24

본문내용

주 앉았는데 술이 없어 성중의 백성들에게 두루 구하여 각기 한 잔씩 마시고는 학봉이 시를 짓기를, 촉석루 위 마주앉은 삼장사는/ 한 잔 술로 웃으면서 남강 물을 가리키네./남강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넋도 없어지지 않으리. 라고 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띠로서 몸을 서로 얽어매고 촉석루 밑 바위로 갔는데, 학봉이 생각하기를 ‘헛되이 죽는 것은 이익이 없는 일이다’하고는 마침내 단념하였다. 용사일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이에 대해 1773년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 유생들이 진주지역 유생들에게 “대개 삼장사는 우리 전라도의 의병장 최경회, 창의사 김천일, 복수장 고종후이고 삼장사 시는 곧 최공이 김공 고공과 같은 날 물에 몸을 던져 죽을 때 지은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 시는 남강에 빠져 죽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 시의 ‘一杯笑指長江水’는 결연히 죽음에 임하여 죽기를 각오한 말이고 ‘波不渴兮魂不死’는 확실히 강물에 들어가 죽지 않고 귀신이 되어 적을 죽인다는 뜻이니 병으로 사망한 사람(학봉을 지칭)은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전부산대 이재호 교수는 ‘一杯笑指長江水’의 ‘指’가 강물을 가리키면서 맹세한다는 뜻이고, ‘波不渴兮魂不死’의 ‘魂不死’를 죽기를 맹세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정신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해 남강에 투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을 수 없는 시라고 한 호남선비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최경회 장군이 이 시를 지었다면, 진주성이 함락되지 직전일 것이다. 7만민관군이 순절한 처절한 전쟁터에서 누가 이 시를 세상에 전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김보원이라는 사람이 최경회 장군이 순절할 때 시 짓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그 내용을 자기 애마의 갈기에 잡아매어 자기 집에 전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삼장사 시가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소설 같은 이야기 이다.
일찍이 호남선비들의 반박문에 대해 퇴계 선생의 학맥을 이은 대산 이상정은 “대체로 귀로 전해들은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진실한 것만 못하고 후세의 사람들이 지난 일을 기술한 것은 당시의 사람이 직접 쓴 기록의 믿을 수 없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삼장사 시에 대한 기록은 당시 현장을 목격한 송암 이로의 용사일기 내용이 가장 신빙성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촉석 삼장사는 김성일 조종도 이로를 가리킨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747년(영조 23년) 호남 양전사 원경하라는 사람이 영조에게 “호남지방에는 옛날부터 名公과 巨卿이 많았으니 진주의 삼장사는 모두가 호남사람들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다. 이는 원경하가 호남지방에 가서 그 지방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 것이다.
진주 촉석루 앞 ‘촉석루중삼장사기실비’는 한말 선비 중재 김황이 짓고, 시조 시인 아천 최재호가 새기고 허민이 썼다. 당대 명사들의 흔적이 배여 있는 비석인데도 촉석루를 찾는 이들에게 너무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촉석루에 오르기 전 이 비석을 보면서 삼장사의 충절을 마음속으로 새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출처 : http://kdo.gnnews.co.kr/technote/read.cgi?board=hyangdan&nnew=2&y_number=2
※자료설정 배경 : 진주성 관광이 목적이었던 사람들 중에 촉석루중삼장사비를 눈여겨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그 비석의 유례와 얽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 것이 없는 진주성의 역사와 이야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으며 다른 나머지의 것들도 하나하나 관찰하고 알아보려는 바른 견학태도가 길러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붙임자료 5.>
3D 입체영상- 진주대첩
출처 : http://search.empas.com/search/img.html?q=%C1%F8%C1%D6%BC%BA%B4%EB%C3% B8&e=36&wi=54&wm=3f&fv=V&n=10&cw=53
※자료설정 배경 : 박물관 내에서 시청할 수 있는 진주성대첩에 관련된 애니메이션.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실감나는 3D 입체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함께 보기에 재미도 있고 좋은 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박물관 내에서 시청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위의 출처를 통해서 교실 내에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견학 수업 후에 시청하게 되면 순회하며 보던 것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붙임자료 6.>
국립 진주 박물관 안내
국립 진주 박물관은 1984년 역사와 문화의 도시 진주에서 선사시대와 가야시대의 유물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가, 1998년부터 임진왜란을 전시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거듭났다.
진주성은 임진왜란(1592~1598) 중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룬 우리의 민족정신과 충절의 기상을 드높인 사적지이다. (사적 118호) 유서 깊은 이곳에서 관련 문화재를 모아 전시하고 각종 연구 사업을 펴 임진왜란의 여러 모습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두 암실을 건립하여 고 김용두 선생(1922~2003)이 기증한 명품 문화재들을 통해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외에도 경남 지역과 임진왜란에 대한 각종 연구조사와 학술자료를 발간, 국제 학술교류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직접 고급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상설전시실로 임진왜란실 1, 2층과 두암실, 3D입체영상관, 기획전시실로 나뉘어 운영하고 있으며 관람은 평일 09~18시, 주말 및 공휴일은 09~19시까지 운영된다.
출처 : 국립진주박물관 안내책자
◇ 參考文獻 ◇
박익환, “임란시 1차 진주성대첩의 실상과 바른民族史의 敎育方案”, 『진주문화』: 제14집 , 진주교육대학교 부설 진주문화권 연구소, 1997. pp. 21-45
진주국립박물관 내 소장 자료
晉州大捷을 통해서 본 金時敏의 戰略과 戰術, 강 성 문
※ 붙임자료는 바로 밑에 출처 근거를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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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0.06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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