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양국의 입헌제 도입과정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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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명치유신에서 입헌의 노력
1. 일본에서 입헌 논의의 등장 배경
2. 명치 정부의 입헌 노력

Ⅲ. 무술변법, 신정에서 입헌의 노력
1. 중국에서 입헌 논의의 등장배경
2. 무술변법에서 입헌의 노력
3. 입헌파와 청조의 입헌 노력

Ⅴ. 맺음말

본문내용

근대적 가치의 추구를 명분으로 20세기 들어와서 근대적 중앙집권책을 각 지방 이익의 ‘양해’도 없이 무리하게 교과서적으로 추진하다가 멸망했다 민두기, 『시간과의 경쟁』연세대학교 출판부, 2001, p.18.
는 설명은 전근대 중국의 집권과 분권의 원리가 근대에까지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Ⅴ. 맺음말
일본이 개항 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부국강병에 있어서 성과를 나타낼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입헌의 중요성은 중국 내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선각자들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입헌에 대한 준비와 정치가들의 의회정치에 대한 경험 획득은 헌법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중국이 일본에 패한 1895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이 부강한 원인을 입헌으로 파악한 강유위나 기타 변법론자들의 생각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전쟁에 패하면서도 왜 중국은 그처럼 개혁이 느렸을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개혁의 속도를 견주는 비교 대상으로 일본을 상정해서 나오는 질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 대륙에 맞먹는 엄청난 지리적, 인적 규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과 대등한 국가 대 국가로 비교할 수없다. 또한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일본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수한 정치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제일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선진 문문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옛날부터 있었으며, 중국이나 조선, 베트남과는 달리 과거시험이 없는 무사사회였고, 지배층은 중국이나 그 외 나라와 마찬가지로 관료였다 해도 그 경제적 기반은 지주에 비해 훨씬 불안한 봉급관료였다. 동아시아를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몽골, 티베트, 위구르까지 지배했던 청나라, 그리고 한국, 베트남, 일본으로 생각한다면,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여타 지역과 조건이 달랐다. 즉 일본이 예외였던 것이다. 예외적이고 규모도 중국 대륙에 비해 작았던 일본이 근대화 속도에 빨랐다고 하여 그와 같이 개혁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을 이상하다고 보거나, 근대화의 노력들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일본의 조급한 서구 따라 잡기 식의 근대화가 2차대전까지 불러 온 이후의 역사전개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근대 시기만 놓고 볼 때, 비교의 시야를 넓혀서 일본과 중국이 이루었던 것을 다른 국가들이 이룬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과 중국이 모두 상대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폴 A. 코헨 著, 이남희 譯 『학문의 제국주의』 산해, 2003, p.111.
고 보는 최근의 연구성과들은 앞서 언급한 중국과 일본의 다른 역사적, 양적 조건이 고려되었기에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혁 속도 논쟁과는 별도로, 이 글을 통해 적어도 입헌정치제도가 한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정치 인프라임은 확실히 밝혀졌다. 입헌을 통해 문명국임을 서구열강에 보여주어 불평등조약을 개정한다는 다소 피상적인 목적에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하는 입헌의 실질적 측면, 나아가 근대사의 핵심인 국민국가 건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 과제적 측면에서 입헌은 매우 비중있게 연구되어야 마땅한 분야이다. 입헌이 일본에 있어서는 외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승리에 기여하고, 중국의 경우 자국을 방위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임에도 말이다. 또한 중국의 경우 초기 변법론자들의 논의, 무술변법, 입헌파와 보황파, 청조신정에서 이루지 못한 입헌의 과업이 20년대 국민혁명, 1949년의 신민주주의 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즉 입헌 논의는 결코 무술변법이나 청조신정에서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며, 당장은 실패했어도 이후 역사전개에 끊임없이 ‘산포’되어 다음 역사 전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에 따라 입헌 논의가 주목 받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대사의 전개를 맥락적으로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도구적 측면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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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04
  • 저작시기2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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