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된 숭례문(남대문)에 대한 역사적 기억들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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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숭례문(崇禮門)의 가치와 의의

Ⅲ. 숭례문의 역사
1. 동국여지비고에 실린 기록
2. 임진왜란과 숭례문
3. 병자호란과 숭례문
4. 사진으로 보는 숭례문의 역사

Ⅳ. 2008년 2월 10일 숭례문(남대문) 화재상황

Ⅴ. 숭례문 화재에 대한 외신보도

Ⅵ. 숭례문의 원형 복원

Ⅶ. 결 론 - 화재소실에 대한 의견

본문내용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팔은 불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산 하나만 보고 찾아온다. 그래서 그 쪽 세르파들 사이에서 유명한 농담 중 하나가 무슨 종교를 믿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Tourism을 믿는다나 어쨌다나. 이도 저도 아닌 나라가 관광입국이 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원폭돔을 보라. 폭탄 맞아서 너덜해진 건물도 그들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이번 남대문 전소로 인해 우리나라는 중요한 관광자원 하나를 잃게 되었다. 식민지 시절 교통에 방해되어 철거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한 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보존되었고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러한 것을 다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역할을 담당했었다. 아쉽게도 이것이 우리세대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후손들은 우리세대를 숭례문 상실의 세대로 기억 할 것이다.
화재로 인한 남대문의 소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자칭 선진국 운운하던 한국의 시스템이 아직도 개도국 수준 이하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은 도저히 화재로 소실될래야 소실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전쟁과 폭격이 아니고서는 어지간히 소실될 수 없는 구조인데 소실되고 말았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24시간 밤낮으로 차량이 통행하고 늘 많은 유동인구가 지켜보는 살아있는 문화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남대문이 방화범의 방화로 간단히 소실되고 말았다.이건 방화범의 방화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화재 진화 시스템의 거대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초기 화재 진화 과정에서 엉성한 시스템은 여지 없이 드러나 연기가 모락모락 날 뿐이었던 초기 2시간 이상을 우왕좌왕하고 전기 누전 검사하는데 보냈다.
처음부터 방화 가능성은 배제한 채 화재 진화는 따놓은 당상인양 뒷전이고 화재 원인을 찾으러 과학 수사대가 돌아다녔다.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는데 그 전에 우리나라의 방재 시스템이 한 일이라곤 화재 진화와 아무 관련도 없는 과학 수사대가 2층에 들어가 마치 다 진화된 건물의 화재 원인 감식하듯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귀중한 초기 몇 시간 동안 소방당국이 한 일이라곤 기와지붕에 물 뿌리기였다. 물은 당연히 기왓장을 타고 바깥으로 흘러 내렸다.
비가 오면 안으로 물이 새지 말라고 엮어 올린 것이 기왓장이다. 폭우가 와도 내부가 젖지 않게 방수 처리까지 되어있는 기왓장위로 하염없이 물만 뿌리고 자빠졌다. 국보 1호가 안에서 불타는데 자칭 세계 12위 무역대국이라는 나라가 한 짓이라곤 소방차 60대로 5시간동안 기왓장 위에 물 뿌리기였다.
숭례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1층은 석조라 불이 날 수가 없고, 전기 시설은 1층에만 되어 있으며 2층이 목조이고, 2층에서 불이 났다는 건 방화라는 것을 매우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부 당국은 누전으로 보고 화재 진압에 앞서 과학 수사대를 투입해 화재 원인 감식을 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숭례문은 다 타도 좋으니 화재 감식만 하면 그만이란 것인가 ? 화재 현장의 책임은 소방당국이 통제해야지 과학 수사대가 들락거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면 2층에 소화 거품 발포탄 하나 투입하는 게그렇게 어려웠나 ? 소화 거품만 대량으로 2층에 투입했다면 작은 건물에 지나지 않는 남대문 화재는 금방 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목조 한 층짜리 건물의 불하나 못끄는 것이 이 나라 소방시스템이다.
소방당국의 안이하고 아마추어적인 화재 진화, 수사당국과 소방당국의 단일 통제 부재와 현장 지휘 및 진화 방식의 미숙, 경찰의 초동 대응 미숙, 1급 문화재 관리 실태의 허술함 등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후진국적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칭 선진국, 자칭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그야말로 한 복판에서 수 백 대의 차량과 수 천 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이없게도 숭례문은 눈앞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21세기 첨단을 부르짖으며 IT 강국이라 부르짖는 그 어떤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국보 1호는 소실되고 말았고 이제 후손들은 교과서 그림으로만 봐야 하는 그야말로 유적이 되어버렸다.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나라의 국력과 정보력이 엉성하거든 외국의 과학수사 도움을 받아서라도 잡아내야 한다. 그것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선조의 유물에 보답하는 길이다.
불국사와 경복궁을 포함해 전국이 불 탔다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버텨낸 숭례문이었다. 그 유적이 21세기 후손들이 빤히 지켜보며 손놓고 있는 가운데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묻지마'식 방화사고 등 복합적인 재난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국보 1호인 숭례문 붕괴 직후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이다.
국가적 재난에 비유될 만큼 엄청난 사태를 사전에 예방했어야 할 문화재청 관계자의 시각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더욱이 이번 화재사고의 와중에 문화재청의 수장인 유홍준 청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
신속한 사태 파악과 대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홈페이지에는 숭례문 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과 항의성 글이 쇄도했다. 이에 따라 홈페이지 서비스가 한동안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재난위기 대응 매뉴얼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나 실화에 대한 안전 규정은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데다 누전 부분은 빠져있었다.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우리나라 목조 문화재 화재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했는데 지자체나 문화재청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안하고 있는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낙산사와 2006년의 창경궁 문정전, 화성 서장대 등 중요문화재 화재때 마다 재난예방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말 뿐이었다.
특히 한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재인 숭례문에 대한 재난 예방대책은 고작 소화기 8대 뿐이었다.
한해 예산이 4,800억 원에 달하는 문화재청.
과연 이처럼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그동안 어디에 쓰여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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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2.12
  • 저작시기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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