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학촌 이범선
3. <학마을 사람들>에서의 시대
4. <학마을 사람들>의 인물
4.1 이장
4.2 바우
4.3 박훈장
4.4 덕이
5. <학마을 사람들>에서의 ‘학'
5.1 작품 표면에서 읽을 수 있는 ‘학’의 역할
5.2 작품 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학’의 역할
5.3 희망으로 귀결되는 ‘학’의 역할
6. 작품에서 ‘학나무(노송)’의 역할
2. 학촌 이범선
3. <학마을 사람들>에서의 시대
4. <학마을 사람들>의 인물
4.1 이장
4.2 바우
4.3 박훈장
4.4 덕이
5. <학마을 사람들>에서의 ‘학'
5.1 작품 표면에서 읽을 수 있는 ‘학’의 역할
5.2 작품 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학’의 역할
5.3 희망으로 귀결되는 ‘학’의 역할
6. 작품에서 ‘학나무(노송)’의 역할
본문내용
이장도 없어진 마을에, 조건이 열악해진 마을에 마을 사람들이 남아있을 이유는 사라진다. 학마을의 사람들이 학마을에 남아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것도 결국 ‘학’이라는 희망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라는 어둠의 시간을 거치자마자 한국전쟁이라는 또 다른 참변을 겪어야만 했다. 이 속에서 민족이 생활은 피폐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 운명이 다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기다리며 힘든 세월을 인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칼뱅의 예정설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희망은 다시 오니까 그 희망을 맞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6. 작품에서 ‘학나무(노송)’의 역할
‘학나무’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학’에 가려 그 중요도가 낮은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학나무’가 없다면 ‘학’은 학마을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학나무’는 상당히 중요하다. 학마을에 ‘학’이 날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학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생각해본다면 ‘학나무’는 ‘학’으로 상징화된 ‘희망과 평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곳이며 정착할 수 있는 곳이다. 즉, ‘학’이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학’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매체가 ‘학나무’인 것이다. ‘학나무’가 없는 학마을에 ‘학’은 날아올 수가 없다.
이범선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민족에게 ‘학나무’를 기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학마을 사람들이 만약 ‘애송나무’를 길러 ‘학나무’로 만들지 못한다면 ‘학’이 아무리 희망이라 하여도 그 희망은 학마을로 오지 못하는 것이다. 즉, 민족에게 희망을 실현시킬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범선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학나무’를 기를 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한순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이 대대로 길러나가야 하는 것이며 소중히 보존해야하는 것이다.
7. 나가며
위를 통해 작품 <학마을 사람들>에서 나타는 인물과 ‘학’ 그리고 ‘학나무’의 역할과 상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학마을 사람들>에는 비관적인 현실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희망’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학나무’는 현재 없다. 아직 ‘희망’이 자리 잡으려면 상당시간 세심한 주의를 기울려 길러야 하는 ‘애송나무’만이 존재할 뿐이다. ‘애송나무’가 ‘학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학이 36년 만에 마을에 날아왔듯이 ‘애송나무’도 결국에는 ‘학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작품은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결국 그 ‘애송나무’에 ‘학’은 반드시 날아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는 듯하다.
이렇듯 <학마을 사람들>에는 비관적인 현실인식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희망’도 함께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에 대한 열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애송나무’가 ‘학나무’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라는 어둠의 시간을 거치자마자 한국전쟁이라는 또 다른 참변을 겪어야만 했다. 이 속에서 민족이 생활은 피폐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족의 운명이 다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기다리며 힘든 세월을 인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칼뱅의 예정설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희망은 다시 오니까 그 희망을 맞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6. 작품에서 ‘학나무(노송)’의 역할
‘학나무’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학’에 가려 그 중요도가 낮은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학나무’가 없다면 ‘학’은 학마을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학나무’는 상당히 중요하다. 학마을에 ‘학’이 날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학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생각해본다면 ‘학나무’는 ‘학’으로 상징화된 ‘희망과 평화’가 피어날 수 있는 곳이며 정착할 수 있는 곳이다. 즉, ‘학’이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학’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매체가 ‘학나무’인 것이다. ‘학나무’가 없는 학마을에 ‘학’은 날아올 수가 없다.
이범선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민족에게 ‘학나무’를 기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학마을 사람들이 만약 ‘애송나무’를 길러 ‘학나무’로 만들지 못한다면 ‘학’이 아무리 희망이라 하여도 그 희망은 학마을로 오지 못하는 것이다. 즉, 민족에게 희망을 실현시킬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범선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학나무’를 기를 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한순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이 대대로 길러나가야 하는 것이며 소중히 보존해야하는 것이다.
7. 나가며
위를 통해 작품 <학마을 사람들>에서 나타는 인물과 ‘학’ 그리고 ‘학나무’의 역할과 상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학마을 사람들>에는 비관적인 현실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희망’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학나무’는 현재 없다. 아직 ‘희망’이 자리 잡으려면 상당시간 세심한 주의를 기울려 길러야 하는 ‘애송나무’만이 존재할 뿐이다. ‘애송나무’가 ‘학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학이 36년 만에 마을에 날아왔듯이 ‘애송나무’도 결국에는 ‘학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작품은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결국 그 ‘애송나무’에 ‘학’은 반드시 날아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는 듯하다.
이렇듯 <학마을 사람들>에는 비관적인 현실인식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희망’도 함께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에 대한 열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애송나무’가 ‘학나무’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