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가재건에 미친 영향- 이승만 리더십과 타국 정치 지도자 리더십과의 비교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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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ⅰ. 리더십 유형의 분류
① 정치 형태에 따른 리더십 유형
② 지배 형태에 따른 리더십 유형
ⅱ. 지도자의 등장 배경
① 이승만 - 대한민국
② 페론 - 아르헨티나
③ 호치민 - 베트남
ⅲ. 지도자로서의 세 인물의 자질 비교

Ⅲ. 맺음말

본문내용

리더십의 유형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승만의 정치리더십은 정치 형태에 따른 레윈의 리더십 분류 민주적 리더십, 전체주의적 리더십, 권위주의적 리더십, 관료주의적 리더십
에 따르자면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투표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민주적 요소를 간과할 수는 없지만, 명망있는 독립운동지도자, 행동을 앞세운 반공주의자, 미국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도 해방정국에서 리더십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통찰력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이승만이 유지했던 카리스마적 권위는 해방정국과 건국초기를 거치는 동안 그로 하여금 권력을 획득하게 하고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반민특위활동을 무산시키면서 그의 카리스마적 권위는 도전 받기 시작했으며 직선제 개헌 이후부터는 그의 ‘카리스마’는 자신을 지지하던 정당과 국화의원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이후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의 카리스마적 권위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고 그는 문자 그대로 권위주의적인 독재자로 변했다.
다음으로 이승만의 지배 형태에 따라 슈미트 전통적 리더십, 제도적 리더십, 투기적 리더십, 창조적 리더십
의 분류 속에서 리더십 유형을 파악해 보자면, 그의 리더십은 창조적 리더십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이승만은 농지개혁, 교육 및 사회개혁, 그리고 기독교 교세의 확장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내세운 것으로써 창조적 리더십에 포함될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특히 70만대군의 군사 분야의 업적, 양반제도의 근절이라는 사회분야에서 일어난 변혁 등은 한국전쟁이라는 비상상황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들이었다. 말하자면, 개혁과 관련된 그의 창조적 리더십의 성격에 더해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게 된 반공에 대한 분위기를 선동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투기적 리더십의 요소도 찾아 볼 수 있다.
시기적 특성에서의 공통점 때문인지, 페론의 리더십 역시 정치 형태를 통해 레윈의 입장에서 파악해 보자면 권위주의적 리더십 유형에 속한다. 페론은 그의 지지층인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위하여 여러 획기적인 정책을 펼친 것은 민주적 요소에 어긋난다 할 것은 없으나,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하고 일인 정치라 불릴 정도로 국가 경영의 모든 것을 그가 독점하며 결국 자신의 연임을 위해 헌법까지 개정할 정도의 권력 독점적 행보를 보아 그를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파악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
슈미트의 리더십 분류에 따르면 페론의 리더십은 투기적 성격이 강한 창조적 리더십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가난했던 노동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으로 국민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으나, 그 과정에서 그는 기존 아르헨티나 정치인들과는 다른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제시한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빈곤한 노동자들을 위하여 사회 보장 제도를 정비하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는데, 기존의 정책들이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국민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가치체계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는 창조적 리더십의 소유자라 볼 수 있다.
호치민의 정치 형태는 레윈의 틀에 완벽히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다른 지도자들과의 비교를 위해 그 틀에 맞추어 보자면, 호치민의 본의가 무엇이었건 간에 그는 인민을 선동하여 그가 지닌 이념과 가치를 실현시키려 하였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 리더십의 유형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이 이성적 판단에서의 부정적 가치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처럼 그 과정과 목적을 보면 민주적 요소가 상당 부분 개입되어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전체주의적 리더십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강력한 선동을 통한 인민들로부터의 행위 유도는 다음의 호치민의 글에서 유추 해 볼 수 있다.
“국민에게 호소함 : 마지막으로 미국의 침략자들은 하노이와 하이퐁 주변을 공격했다.
이것으로써 그들은 침략의 아주 심각한 새로운 단계를 넘어버렸다. 이것은 절망에 찬
행위요 치명적으로 상처입은 야수의 발작이다. 존슨과 그의 하수인들은 남베트남에서
침략전을 강화시키기 위해 50만,100만,아니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을 보낼 수 있다느니,
북쪽에 공격을 더 퍼붓기 위해 수천의 비행기를 띄울 수 있다느니 떠들어대지만, 그들
이 아무리 악을 써봐야 그들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 미국의 침략을 무찌르고자 하는
우리의 강철 같은 의지를 결코 꺾을 수는 없다. 그들이 더 공격적이면 공격적일수록,
그들의 죄악은 더 무거워진다. 전쟁은 아직도 5년,10년,20년, 아니면 그 이상 지속될
수도 있고, 적의 폭격에 깔린 다른 수많은 도시와 지역들처럼 하노이, 하이퐁도 파괴
될지 모르지만, 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절대로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독립과 자유
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며 승리한 이후 우리나라를 더 좋고
더 크고 더 아름다운 나라로 재건할 것이다.”
또한 지배 형태에 따른 슈미트의 시각에서 보자면, 호치민의 리더십은 투기적 리더십을 통해 제도적 리더십을 이끌어 낸 성향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치민이 국가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국민들을 선동한 부분에 있어서는 투기적 리더십의 요소가 충분하지만, 이러한 선동이 폭력적으로 수행되지 않았고 소수집단의 이익에만 한정되지 않았으며 항상 대중과의 호흡을 중시하는 것으로 대중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고, 이들의 다양한 이해와 가치를 대변한 점에 있어서는 제도적 리더십을 수반했다고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세 지도자가 가진 리더십의 유형을 비교해 보면 물론 구체적 성향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지만, 여타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들 리더십의 영향력이 강하며 창조적이고 선동적인, 그러면서도 권위적인 형태의 리더십이 보인다는 기본 특징에 있어서는 그 차이를 상회하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시기적 유사성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것이며, 또한 지도자 별 리더십의 성향에 따라 국난 타개의 방향이 모두 달랐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국가재건의 시기에 있어서 리더십의 중요도를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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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4.06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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