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강독]이태준의 황진이와 홍석중의 황진이 비교분석 및 춘향전과의 영향관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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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황진이

Ⅲ. 이태준의 황진이
1. 이태준 (李泰俊)
2. 이태준의 황진이

Ⅳ. 홍석중의 황진이
1. 홍석중 (洪錫中)
2. 홍석중의 황진이

Ⅴ. 이태준의 황진이와 홍석중의 황진이 비교
1. 이태준이 묘사하는 황진이
2. 홍석중이 묘사하는 황진이
3. 이태준 황진이와 홍석중 황진이 비교분석

Ⅵ. 춘향전과의 영향관계

Ⅶ.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거리 이외에도 이질성과 동질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 황진이은 21세기 초 북한에서 북한소설 작가 홍석중에 의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춘향전이 창작된 이후 350 여 년이 흐른 뒤이다.
황진이는 21세기 초 북한에서 다시 부활했다. 춘향전이 창작된 이후 350 여 년이 흐른 뒤이다.
춘향전의 얼개가 평등과 사랑을 두 축으로 삼으며 짜여 진다면, 황진이의 그것은 평등과 자유를 두 축으로 하여 전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춘향전과 황진이는 350 여년의 역사적 거리 이외에도 이질성과 동질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Ⅶ. 결 론
누가 황진이의 삶을 물색없다 할 것인가? 하지만 황진이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진한 허무에도 불구하고 펼쳐지는 삶의 아름다운 격자무늬에 몸과 마음을 담고 있기에 거의 기행에 가까운 행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리학이 막 발효하려는 조선 전기를 살면서 토해낸 비명에 가까운 시조 몇 수는 오
늘날 우리들과 만나면서 아직도 유효하다.
우리 모두가 외울 수 있는 "청산리 벽계수....." 말고도 "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버혀내겠다"는 시조와 가곡으로도 불리우고 있는 " 기른 님 만날 길은 꿈길밖에 길이 없어"하고 시작되는 시조는 가히 절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심하면 정기적으로 춘향전이나 황진이를 드라마 화하고 그때마다 웬만하면 열광한다. 그리고 여배우들은 춘향이나 황진이의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황진이를 재창조하고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그것은 아마도 춘향이나 황진이가 지켜내고 펼쳐내는 격정의 드라마가 우리네 삶의 원형에육박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춘향이와 황진이는 사랑이라는 공동의 화두를 놓고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점과 둘 다 천하디 천한 신분이 삶에 주던 능멸의 굴욕을 뼈저리게 문신한 채 초월적인 정신세계로 입신하였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말할 수 있지만 정반대의 패턴으로 자신의 시대를 접근하며 풀어냈다는 점에서 비교 될 만하다.
황진이가 자유분방하고 춘향이가 일부종사라는 길을 택한 것은 황진이의 시대가 비교적 여
성에게는 억압이 덜한 중중조이고, 춘향이의 시대는 여성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모든 제
도가 모순의 극치를 드러내면서도 실학이 융성하던 영정조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조선시대의 신분이라는 굴레가 주는 고통은 삶이 미저러블하다는 것의 최고조 였을 것이니,불행과 만나서 고통과 악수하고 화해해 본 사람들이 아니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좁은 문에 그녀들이 있기에 이토록 오래도록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절망의 바닥을 헤매다가 치고 솟구치며 올라오는 찬연한 비상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더라도 오랜 향기를 지닌다. 우리는 그것을 광휘라고도 부른다. 춘향이와 황진이가 맨살로 마주쳐야 했을 당대의 아픔이 승화되어 이토록 오래도록 피어있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문학의 몫이리라.
춘향이는 목숨을 건 절대 절명의 지조로 자기 삶을 증거 하였으며, 황진이는 재색을 두루 갖춘데다 담대함에 있어서 거의 한량이나 진배없는 삶을 살다갔으니 두사람은 다른 것 같아도 용기에 있어서는 성을 초월한 인간성의 지존이라 할만하다.
춘향이야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소설속의 인물이야말로 그 시대가 희구하는 인물 일테니 실제와 그리 멀 것도 없을 것이고 그녀의 지조는 매난국죽을 사모하던 조선 선비의 절개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춘향이 마음이 우리들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황진이의 삶은 시조와 함께 야사로 살아남아 거의 전설이 되고 있는데 우리가 흥미를 가지는 것은 그녀의 러브 어페어가 무속적인 것으로부터 유?불?선 삼교를 넘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황진이를 사모하다가 죽은 동네 청년의 관이 그녀의 집 앞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은 아마도 상여를 지고 가던 가족들이 문 앞에서 나와 보지도 않는 처녀를 불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저혼자 상사병으로 죽었다한들 황진이에게 책임이 없을 것인가?
잎새에 지는 바람에도 괴롭다하는데....
속설에 의하면 황진이 속치마와 적삼을 관에 넣어주고야 상여가 떠났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 서 황진이의 인생은 시작된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끝장을 내지 못하는 집착의 벼랑끝을 보아버린 어린 황진이가 겨루었을 수 많은 대상들 중에는 벽계수 밀고도 명창 이사종, 10년 면벽의 지족선사와 화담 서경덕이있다.
지족선사를 파계하고 서경덕을 추앙하는 것은 일설에 의하면 억불숭유의 조선이 불교를 폄하하고 성리학을 존숭하기 위해 꾸며낸 일화 라도고 한다.
황진이는 중종 때의 인물이며 화담 서경덕은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하기 시작하는 주기론의대가이다. 황진이를 화담과 함께 송도3절로 말하는 것은 발칙한 일일지도 모르나 지금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면 16세기라는 시대의 관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황진이 삶의 파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시대는 조선전기 양반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기 시작하는 시기지만 임진왜란이후의 조선후기보다는 재산 상속면에서나 법적으로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보장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황진이 같은 인물도 나온 것이 아닐런지.....
황진이는 죽어서도 한 사람의 고관을 파직시킨다.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 임제가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 묘 앞에서 지었다는 시 때문에 임지에 가지도 못하고 파직당하는 일화는 황진이 전설의 완결편이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잡아 권할 이 없어 그를 설어 하노라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신분이라는 굴레가 없어진 오늘 이 시점에서도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도 세상은 비루한 자들이 판을 치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물색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다가 내속의 비루함은 어디쯤에서 판을 치고 있었던가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자 세상을탓할 것도 없으려니 하는 마음이 불현듯 들었다.
[참고 자료]
홍석중, 황진이, 대훈닷컴, 2006
이태준, 황진이, 작가문화, 2003
박태상, 북한문학의 사적 탐구, 깊은샘, 2006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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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8.03.27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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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6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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