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양혜왕(梁惠王)
2. 공손추(公孫丑)
3. 등문공(藤文公)
4. 이루(離婁)
5. 만장(萬章)
6. 고자(告子)
7. 진심(盡心)
2. 공손추(公孫丑)
3. 등문공(藤文公)
4. 이루(離婁)
5. 만장(萬章)
6. 고자(告子)
7. 진심(盡心)
본문내용
마음보존이란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경(敬)에 몰두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여러 생각을 잠재워 조급하고 동요하며 불안정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머무르게 하는 것[住存]이다. 맹자는 이런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진심, p.219)
요컨대, 사욕에 끌리지 않고 한결같이 도심의 지시를 들어 언행을 진실되고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맹자가 말하는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옛날 공자나 맹자의 학문은 일을 행하는데 힘써서, 일을 행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렸다면, 지금의 학문은 마음을 보존하고 기르는 데만 힘써서 실천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실제 일에서 ‘선을 하고 악을 물리치는’ 실천이 중요한 것이지 실제의 일을 떠난 존심양성(存心養性) 공부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수양법도 실천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천리를 보존하려는 정적 수양법이 아니라 도심의 지시에 따라 일을 행하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이다.
▣ 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맹자』의 각 장에 따라 문제를 검토한 『맹자요의』는 한대, 송대, 청대의 주석가들의 다양한 주석을 검토하면서 논평하고 반박해 다산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데, 요점은 맹자의 심성에 관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성리학적 견해를 비판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맹자요의』는 심성론에 대한 성리학적 해석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한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새로운 관점이란 선진의 실천윤리의 관점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다산은 장구(章句) 등의 훈고에 치중한 고주(古注)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형이상학적 해석을 시도한 송대의 신주(新注)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에 서며, 청대의 고증학적 주석까지도 비판하는 것이다.
송대 유학자들의 이기론적 해석을 벗어나 선진 공맹의 실천윤리를 지향하는 점은 사단과 사덕에 대한 주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단에 대해, 주자는 마음속에 이미 갖춰져 있는 인의예지라는 성품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등의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그런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인의예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산은 사단이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며, 그것을 시초로 구체적인 현실의 인륜관계 속에서 노력을 통해 인의예지가 얻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주자가 마음속에 있는 리(理)를 이해하는 것이 덕이라고 본 데 비해, 다산은 나의 직심(直心, 본심)을 실행한 뒤에 얻어지는 것이 덕이라고 주장한다.
맹자의 사단과 성품 재해석
성품의 개념에 대해서는, 맹자가 기호를 위주로 성을 말한 사례들을 들면서, 다산은 성을 기호 위주로 보았다. 입이 맛에 대해 기호가 같고, 귀가 소리에 대해 기호가 같듯이 성품이 선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품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태어나는 것이며, 리(理)라고 정의한 주자의 해석을 거부하고, 성품이란 선을 좋아하는 기호이므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봤다.
또한, 인간이 선을 좋아하는 성품의 기호를 기반으로 자신의 결단에 의해 선을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선을 하고자 하면 선을 할 수 있고, 악을 하고자 하면 악을 할 수 있는 결정권, 즉 자주권, 자유의지야말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다산이 인간의 심성에 대해 위와 같이 해석한 것은, 인의예지를 인간 내면의 본질로 규정해버리면 이런 본질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유학의 본질인 사회 관계 내에서의 인륜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망각하고 상실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敬)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 등의 주자학의 수양법은 내면적 방향으로 흘러 사회적 관계에 바탕을 둔 인륜을 도외시하기 쉽다. 그런데 도덕을 기호로서의 성의 자율적 실현이라 해석하면, 도덕규범이 선험적이고 고정적이라고 본 주자학과는 달리, 노력과 사고와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고 개조할 수 있다는 실천적인 의미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이 『맹자요의』에서 심성에 대해 탈주자학적 관점에서 논하고, 선진유학의 실천윤리적 관점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또 다른 새로운 차원의 도덕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도덕을 근거로 해서 그의 경세론이 확고하게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사욕에 끌리지 않고 한결같이 도심의 지시를 들어 언행을 진실되고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맹자가 말하는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옛날 공자나 맹자의 학문은 일을 행하는데 힘써서, 일을 행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렸다면, 지금의 학문은 마음을 보존하고 기르는 데만 힘써서 실천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실제 일에서 ‘선을 하고 악을 물리치는’ 실천이 중요한 것이지 실제의 일을 떠난 존심양성(存心養性) 공부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수양법도 실천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천리를 보존하려는 정적 수양법이 아니라 도심의 지시에 따라 일을 행하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이다.
▣ 더 깊이있게 알기 위하여
『맹자』의 각 장에 따라 문제를 검토한 『맹자요의』는 한대, 송대, 청대의 주석가들의 다양한 주석을 검토하면서 논평하고 반박해 다산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데, 요점은 맹자의 심성에 관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성리학적 견해를 비판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맹자요의』는 심성론에 대한 성리학적 해석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한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새로운 관점이란 선진의 실천윤리의 관점으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다산은 장구(章句) 등의 훈고에 치중한 고주(古注)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형이상학적 해석을 시도한 송대의 신주(新注)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에 서며, 청대의 고증학적 주석까지도 비판하는 것이다.
송대 유학자들의 이기론적 해석을 벗어나 선진 공맹의 실천윤리를 지향하는 점은 사단과 사덕에 대한 주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단에 대해, 주자는 마음속에 이미 갖춰져 있는 인의예지라는 성품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등의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그런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인의예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산은 사단이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며, 그것을 시초로 구체적인 현실의 인륜관계 속에서 노력을 통해 인의예지가 얻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주자가 마음속에 있는 리(理)를 이해하는 것이 덕이라고 본 데 비해, 다산은 나의 직심(直心, 본심)을 실행한 뒤에 얻어지는 것이 덕이라고 주장한다.
맹자의 사단과 성품 재해석
성품의 개념에 대해서는, 맹자가 기호를 위주로 성을 말한 사례들을 들면서, 다산은 성을 기호 위주로 보았다. 입이 맛에 대해 기호가 같고, 귀가 소리에 대해 기호가 같듯이 성품이 선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품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태어나는 것이며, 리(理)라고 정의한 주자의 해석을 거부하고, 성품이란 선을 좋아하는 기호이므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봤다.
또한, 인간이 선을 좋아하는 성품의 기호를 기반으로 자신의 결단에 의해 선을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선을 하고자 하면 선을 할 수 있고, 악을 하고자 하면 악을 할 수 있는 결정권, 즉 자주권, 자유의지야말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다산이 인간의 심성에 대해 위와 같이 해석한 것은, 인의예지를 인간 내면의 본질로 규정해버리면 이런 본질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유학의 본질인 사회 관계 내에서의 인륜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망각하고 상실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敬)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 등의 주자학의 수양법은 내면적 방향으로 흘러 사회적 관계에 바탕을 둔 인륜을 도외시하기 쉽다. 그런데 도덕을 기호로서의 성의 자율적 실현이라 해석하면, 도덕규범이 선험적이고 고정적이라고 본 주자학과는 달리, 노력과 사고와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고 개조할 수 있다는 실천적인 의미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이 『맹자요의』에서 심성에 대해 탈주자학적 관점에서 논하고, 선진유학의 실천윤리적 관점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또 다른 새로운 차원의 도덕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도덕을 근거로 해서 그의 경세론이 확고하게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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