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건국사 (주몽신화 형성 과정에 따른 요약)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낙랑공주의 아버지인 최리를 만나 낙랑공주와 결혼하고 뒤에 고구려에 돌아온 후, 낙락공주에게 적이 쳐들어가는 것을 알려주는 북과 뿔나팔을 부수면 그대를 아내로 맞이 하겠다고 했다. 그로인해 낙랑공주는 그것을 부수고 호동왕자는 낙랑을 습격 하게 되는데 최리는 그것을 알고 딸을 죽이고 항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대해 저자는 이 시기와 시대적 배경이 맞는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렇듯 설화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함께 뒤섞여 전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내용의 허구를 가려보고 그 시대에 그 설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정실왕비의 모함으로 같은해 11월에 자살하고, 정실왕비의 아들인 해우가 모본왕이 된다. 대무신왕 27년에 대무신왕이 죽었을 때 모본왕은 나이가 어려서 그의 숙부가 먼저 왕위에 올라 민중왕이 된다. 그런데 모본왕은 고구려 역사에서 가장 포악한 왕 중 한명이 되어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는 왕이라고 한다. 이 책은 아름답고 착한 호동왕자에 대한 아쉬움이 그에 관한 설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호동왕자의 죽음과 해우왕자의 태자 임명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두 왕자가 함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감으로써 왕실의 번영과 확장의 기회로 삼지 않고 왕위를 놓고 대립하여 결국에는 희생자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루부 왕실이 진취적이고 개척적인 자세를 잃어 가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세력으로 변해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본왕이 신하에게 살해되고 고구려는 혼란기를 거쳐 다시 왕의 자리를 이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대무신왕 이후로는 신성적인 왕에 의한 통치가 사라지고 인간적 색체를 띄는 정치적 경향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은 백성들의 이탈을 가져왔다.
고구려의 신화시대는 끝났지만 주몽신화를 중심으로 주몽을 숭배하는 신앙은 고구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국가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주몽신화는 다시금 주목되었다.
현재도 물론 다를 건 없다. 주몽신화에 타나다 있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본받아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또는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된다면 고구려 시대의 주몽 못지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6.01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717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