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역사 /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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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동의 역사 /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
1. 개략적인 시대상황
2. 자료를 통해 살펴본 현실들
- 대규모 이농
- 노동시간
- 노동환경
- 건강
- 고용안정
- 나이
- 거주지

Ⅱ. 1980년대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
1. 개략적인 시대상황
2. 자료를 통해 살펴본 현실들
- 노동시간
- 임금
- 노동환경
- 건강

본문내용

사용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생활영역을 세세하게 통제 당했다.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은 정기적인 아침 조회를 위해 집합했고, 거기에서 차장은 “ 야, 니네들 앞으로 전화는 바꿔주지 않는다. 편지는 내 앞에서 뜯어보고 내용을 읽은 다음 가지고 가도록 해라. 그 이유는 니네들이 설명을 안 해도 더 잘 알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수군대자, 차장은 “야! 누가 대표로 말해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 한국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자주 나타난 주제 중 하나는 인간적인 대우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기 발생한 자연 발생적이고 격렬한 많은 저항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했고 노동자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찾아 자주 일자리를 옮겼다. 노동자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인간적인 대우를 찾아 자주 일자리를 옮겼다. ......(중략)...... 공장은 먼지와 기계소음으로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십장과 감독이 육체노동자들에게 내뱉는 고함욕지거리상소리가 난무했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언어적 모욕과 육체적 학대를 받았고,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도 겪어야했다. 한국의 공장노동은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혹은 10시간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만이 아니라 임금을 위해서 자신들의 자존심과 존엄성까지 희생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략)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는 공순이.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공돌이. 공순이, 공돌이는 천한 애들. 그렇고 그런 애들. 노는 애들.
공장 다니는 우리들을 사람들은 싸잡아 이렇게 부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공장 다니기 때문에 싫어도 할 수 없이 공순이다. 누가 어디 다니느냐고 물으면 “네, 조그만 회사에 다녀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래도 공순이들은 공장 다니는 표시가 난다. 아무리 옷을 잘 입고 화장을 해도 표시가 난다. 그 표시를 안 낼려고 일부러 옷에 신경 쓰고 머리를 하고 화장을 더한다. 사람들은 돈도 못 벌면서 사치를 부린다고 하지만 공순이 딱지를 떼려고 그런다.(하략)
안양공단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는 “교육도 못 받은 주제에” 혹은 “무식한 것들”이란 말처럼 노동자들을 화나게 만드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관리자와 노동관련 공무원, 경찰로부터 이런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어난 노동자들의 격렬한 항의의 저변에는 이런 상징적 억압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2.5. 건강
스물 네 시간 하루 중 깨어 있는 거의 대부분은 공장에서 보내야 했고, 나머지 시간의 밥을 먹는 일도, 양말 하나 빠는 것도, 하다못해 잠자는 것조차도 모두가 내일 공장에 가기 위한 준비였다. ......(중략)...... 우리들은 마치 돼지가 주인에게 자기 몸을 주기 위해 살찌우는 것과 같이, 일하기 위해 밥을 먹고 일하기 위해 잠을 잤다.
공장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여가시간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도 충분히 허락하지 않았다. 1987년 이전 한국의 공장노동에서 가장 잔인했던 점은 공장노동이 노동자들의 모을 급속히 망가뜨린다는 것이었다. 한국 공장의 노동환경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보장하지 못했다.
적어도 수출 지향적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장시간 노동 못지않게 심각했던 한국 공장의 문제는 높은 산업재해율이었다. 1978~80년 동안 매년 126,250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127641명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기간 동안 1402명의 노동자들이 매년 작업장에서 사고로 죽었다. 1976년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미국과 영국 산업재해율의 5배였고, 일본 산업재해율의 15배였다.
한 고참 여성노동자가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끌려 공장에 오게 된 어린 여자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적고 있다.
나이를 물어보니 15살, 어쩌면 내가 처음 직장 생활했던 나이와 같다. 지금까지 16년, 그러나 남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더욱 더 안쓰러워진다. 그 엄마는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어린 것을 공장에 넣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근심에 찬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직장에 발을 들여 놓는 어린 것이 이곳 생활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직 골병이 들지 않고 집에서 먹고 자고만 했으니까 영양이 남아서 우리보다 더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도 같다만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노동자의 글은 한국의 공장생활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건강한 몸으로 공장에 들어가지만,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하는 몇 년간의 지독한 일은 노동자들의 몸을 급격히 망가뜨렸다. 몸이 점차 쇠약해질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자주 직업병을 얻거나 산업재해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다.
Ⅲ. 정리·결론
1970~1980년대 한국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이 실행되었고 이는 노동집약적인 산업부터 시작되었다. 권위적인 국가와 국가의 절대적 비호를 받는 기업들은 이를 실행하기위해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을 철저하게 진행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노동 환경, 복지, 인간적인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였고 오랜 기간동안 착취당하는 삶을 살았다.
부족한 부분.
1.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문화나 생활상 등에 대해서 담지 못하였다.
2.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벌였던 주체적인 행동들과 투쟁들을 담지 못하였다.
3. 좀 더 다양한 자료와 매체를 이용하지 못하였다.
토론하고 싶은 것들.
1. 당시의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노동환경이 열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어떤 계기와 노력들로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개선 가능하였을까?·
3. 과연 현재의 노동 환경은 1970~80년대의 노동환경에 비해서 얼마나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참고문헌>
한국 노동 계급의 형성 (구해근, 창작과 비평, 2002)
전태일 평전 (조영래, 돌베개, 2001)
삼포 가는 길 (황석영, 창작과 비평, 1973)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윤흥길, 창작과 비평, 1977)
깃발 (홍희담, 창작과 비평, 2003)
<참고자료>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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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03
  • 저작시기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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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6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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