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메소포타미아문명]메소포타미아의 종교,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메소포타미아의 왕궁도서관, 아시리아 시대의 왕궁도서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문화재와 관광명소 분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메소포타미아][메소포타미아문명]메소포타미아의 종교,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메소포타미아의 왕궁도서관, 아시리아 시대의 왕궁도서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문화재와 관광명소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1. 수멜 종교
2. 수멜의 만신전 (Pantheon)
3. 수멜의 중요한 신들

Ⅲ.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Ⅳ.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Ⅴ. 메소포타미아의 왕궁도서관

Ⅵ. 아시리아 시대의 왕궁도서관

Ⅶ.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문화재와 관광명소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문헌의 복사를 위해 그는 많은 필사자를 두었고 이들에게는 늘 근면과 정확한 필사를 강조하는 등 용의주도한 지시를 하였다.
살벌한 전쟁 속에 지새우면서도 왕은 기록에 의한 사적(事蹟)의 전승에 끈질긴 흥미와 노력을 나타내었다. 서기들은 그들이 수집한 필사물들을 복사하고 번역하기 위하여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전역을 답사하였으며 이렇게 모은 수만의 문헌들을 고스란히 왕궁도서관에 소장하였다.
이 도서관의 장서들은 소장한 방에 따라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배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 방에는 아시리아와 이웃 속국의 역대 왕들의 기록과 전기를 포함한 역사에 관한 문헌이 있었다. 이 방에는 또 관리와 군인들에게 하달한 왕의 지시사항과 속국에 파견된 총독에게 보낸 서신 등이 있다.
다른 한 방에는 도시와 국가, 강과 산에 대해 기록한 지리에 관한 자료와 각지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에 대한 목록이 있다. 어떤 방에는 법률과 판결문이 있었고, 다른 방에는 상거래에 관한 기록, 계약서, 증서, 청구서 등과 같은 자료들이 모여 있다. 다른 어떤 방에는 전설과 신화, 아시리아의 종교적 기초 등에 관한 중요한 문헌, 즉 홍수설화, 신들의 이름을 적은 목록과 신들의 다양한 업적과 속성을 기술한 리스트, 신들에 보내는 찬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그룹의 주요한 하위주제로 의례, 기도, 주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도서관의 다른 한 곳에서는 과학과 유사과학……천문학과 점성술, 생물학, 수학, 박물학사, 의학에 관한 저술이 포함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도서관의 장서중 상당수가 이 계곡의 그들 선임자들과 사방의 이웃나라로부터 얻은 비아시리아어의 사본이나 번역서를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당시 왕이 대규모 왕궁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아시리아 전역과 이웃나라들에 서기들을 파견하여 광범하게 점토판들을 수집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또한 수집된 자료가 왕의 통치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학문의 전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백과사전적 도서관을 연상케 하며, 점토판의 소장위치를 자료의 내용에 따라 분리 수납함으로써 이용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도서관의 탁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시리아 도서관의 내부에는 점토판들이 토기항아리에 담겨져 있고 이들은 서가상에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각 점토판에는 그것이 보관된 방, 서가 또는 항아리를 표시해 주고 있다. 또한 문 근처 벽에는 각 방에서 찾을 수 있는 점토판의 목록이 적혀 있다. 이는 그 방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의 서가목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밖에 각 방의 문 근처에 보관되었던 점토판에는 주제목록 또는 기술서지가 적혀 있었다. 이 점토판은 그 저작의 타이틀, 그 저작에 사용된 점토판의 수, 행수, 서문, 중요 장, 절의 표시, 소재표시, 분류기호 등이 주어져 있다. 이 목록시스템이 그 당시 어떻게 활용되고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신속한 탐색을위해 쓰여졌고, 상태가 낡은 것으로 보아 충분히 이용되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오늘날 도서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분류, 목록(이용자를 위한) 서지, 색인 등의 원형이 될만한 개념들을 이미 도입하고 있었다는 사실로서 이 도서관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자랑할만한 도서관을 지어놓고 왕 자신도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왕은 그의 직인(職印)에서 그가 경배하는 신 나부(No-bu)의 도움을 기원한 뒤 “나는 이들 점토판들을 모으고 필사했으며, 내 이름을 여기에 새겼다. 그리고 이들을 나의 왕궁에 보관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였다. 하여튼 이 도서관은 정부 및 종교인, 지식인들에게 개방되어 당대의 학문이나 지식의 진보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도서관유적의 발굴은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장 중요한 발굴의 하나가 되었다.
니네베 왕궁은 기원전 7세기말경 그 때까지 거의 이름 없던 신흥 민족인 이란 고원의 메디아인이 바빌로니아의 칼데아인과 협력한 연합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이로서 오랫동안 고대 오리엔트를 압도해 온 아시리아 제국은 사라져 버렸으며, 번영을 누리던 아슈르바니팔 왕궁도서관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 그 유적들이 발굴될 때까지 2500년이란 긴 세월동안 현대인들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수면을 계속하고 있었다.
Ⅶ.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문화재와 관광명소
문화재
함무라비 법전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그의 만년인 BC 1750년경 제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성문법으로 \"복수주의\"이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후세의 쐐기문자법(바빌론법 ·아시리아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관광명소
<바빌론> 고대의 가장 유명한 도시 중의 하나로 BC 2000년대 초기부터 1000년대 초기까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도였고 BC 7세기와 6세기의 전성기 때 신바빌로니아(칼데아)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8㎞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바빌론의 광대한 유적은 재 이라크의 알하라시 근처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넓은 유적지는 몇 개의 흙 둔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바빌, 카스르, 메르키즈, 암란 이븐 알리, 훌라 등이 있다.
이슈타르 문
바빌론의 정면현관에 있으며 벽에 사자·황소, 그리고 과 꼬리가 용과 비슷한 괴수 Mushhush가 그려져 있다. 현재 유적의 입구에 있는 이슈타르 문은 복원된 것이고 원 문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천지창조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한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사랑의 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의 전신이 이슈타르였다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 도날드 휴즈(1998), 고대문명의 환경사
* 미야지키 마시카츠, 이영주 옮김(2000),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서울 : 중앙M&B
* 세뮤얼노아크레이머, 박성식 옮김(2000),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 가람기획
* 정흥숙저(1997), 서양문화사, 서울:교문사
* 허순봉(2000), 세계 4대문명 이야기, 능인
  • 가격5,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8.06.04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780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