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문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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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기 전에

Ⅱ. 본 문
1. 허균의 생애에 대하여
2. 허균의 사상 및 문학관에 대하여
1) 정치관
2) 평등사상
3) 유교 및 다른 학문들
4) 문학관
3. 허균의 작품 분석
1) 시(詩)
2) 다섯 편의 전(傳)
3) 다른 산문들
4. 허균과 그의 문학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

Ⅲ. 마치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균은 여러 차례의 외침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꿋꿋하게 이겨낸 고려의 군사제도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재도입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변방 지휘관의 역할을 믿지 못하고 병권을 제대로 맡기지 않으려는 조정의 태도를 비판하였다.
다음은 「김종직론」에 대해서이다.
김종직은 근래에 이름난 유학의 선비이다. 세조(世祖)의 다그침으로 벼슬에 오른 후에는 모친이 늙었기에 그를 모시기 위해 억지로 벼슬한다고 일컬었으나, 그의 모친이 천명을 마친 후에도 벼슬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직분에 마땅히 할 바를 하지 않았고, 다른 누군가가 이에 대해 추궁하면 둘러대기만 할 뿐이었다. 더욱이 그는 세조가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한 데에 대해 옛적 중국의 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죽인 것과 비교하여 비판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이미 세조에게 벼슬을 했으니 임금으로 섬겨야 마땅하거늘 이와 같은 나무라는 글을 지었으니 죄가 크다. 그가 죽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 것은 하늘이 사람의 손을 빌어 징계한 것이다. 이처럼 그 사람의 행적을 따지지 않고 한갓 그 이름만 존중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바이다.
사림의 거두로 이름이 높았던 김종직에 대해 그 행적의 표리부동함을 비판한 글이다. 비판의 초점은 모친 때문에 억지로 벼슬한다고 말하면서도 이후 모친상을 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관직을 내놓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었던 것, 그리고 한 번 신하로서 세조를 섬겼음에도 그를 비판하는 글을 지은 것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당대 사람들에게 추앙받던 인물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공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허균은 이외에도 남효온이나 이장곤, 황희 등 여러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평론을 남겼는데, 그 경우에도 칭찬과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효온의 경우 거리낌없이 조정에 직간하는 태도를 칭찬하면서도 너무 일러 때를 기다릴 줄 모르는 성급함을 보였다고 하며, 조선 전기의 이름난 정승인 황희에 대해서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군자였으나 정치가로서의 능력 자체는 평범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4. 허균과 그의 문학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
허균이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희대의 국난을 맞아 조선 전기의 정치 및 사회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던 과도기였다. 허균 개인의 재능과 성향 탓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당시의 분위기는 허균이라는 한 사람의 사상적 이단아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다. 그는 종래의 가치관 및 규범에 도전하고 과감한 개혁사상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문학사적으로 허균은 스승 이달을 비롯한 삼당시인의 주정 및 경험주의를 보다 발전적으로 계승하였으며, 그러면서도 독창성을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다섯 편의 전 작품을 집필하면서 한문소설의 전통을 이었고, 『국조시산』, 『성수시화』 같은 본격적인 시비평집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다른 학문과 사상들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다양한 연구 업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사대부뿐 아니라 다른 신분 계층의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이룬 문학적 성과에 대한 기록과 비평을 정리하여 후대에 전했다. 이러한 허균 문학의 모습은 조선 전기의 사대부 문학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실학이 나타나는 등의 다른 양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의 과도기적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허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종래의 사대부 문학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적이었을 뿐이며, 그들의 문학을 포용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기존 학문의 관심에서 벗어나서 여러 가지 다른 학문이나 현실에 쓸모있는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것을 체계화된 하나의 학문체계로 굳히지는 못하였고, 민간신앙에 대해 연구하거나 조선 문인들의 독창성과 뛰어난 문재를 인정하면서도 중국풍이나 종래의 한문학 풍조를 넘어서기까지는 후대 문인들의 노력을 기다려야 했다. 이는 일종의 과도기적 한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Ⅲ. 마치며
이상으로 허균과 그의 사상 및 문학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허균은 활달하고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으로 정치 및 사회 방면의 제문제, 여러 학문과 문학의 관점 등에서 다양한 의견 및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당풍의 시를 이어받아 주정주의 및 문학의 독창성을 강조하였으며, 자연스러운 표현 기법을 중시하였다. 허균의 문학 작품들 또한 이러한 기준을 따르면서 내용적으로는 다방면에 걸친 모습을 보여준다. 문학사적 의의 및 한계에서는 조선조 문학의 변모 및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에 따른 미완의 부분들과 성리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등을 한계로 꼽았다.
이제까지의 논의들에는 부족한 점이 많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것들도 있는데, 나머지는 발표 후의 토론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참고문헌
논 문:
곽정식, 「허균의 문학사상」(경성대학교, 1998)
김영, 「허균의 문학관에 대하여」(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1)
박영호, 「허균 (許筠) 시론 (詩論) 연구」(한국한문학회, 2004)
신승훈, 「교산 허균의 文學理論 硏究-學問的·思想的 基盤의 考察을 중심으로」(동양한문학회, 2004)
양연석, 「허균 문학론 생애와 소설을 중심으로」(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04)
윤호진, 「이달의 비평활동과 허균시 비평」(우리한문학회, 2004)
임주탁, 「허균론」(한국한시학회, 2003)
조문주, 「허균의 한문전 연구」(한문학론집, 1992)
최우영, 「시에 대한 허균의 생각」(연민학회, 1997)
채미화, 「허균의 정감미학관 연구」(경북대학교퇴계연구소, 2004)
홍창표, 「許筠의 詩話에 대한 小考」(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1983)
홍학희, 「여성 인식의 측면에서 본 허균(許筠)의 개혁 사상」(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5)
황위주, 「시인으로 본 허균」(국어교육학회, 1981)
단행본:
이이화, 『허균의 생각-그 개혁과 저항의 이론』(여강출판사, 1991)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제4판 3권 (지식산업사, 2005)
차용주, 『허균연구』(경인문화사, 1998)
허경진, 『허균평전』(돌베개, 2002)

키워드

허균,   홍길동,   문학관,   평등,   한문학,   문학사,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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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16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9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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