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독교문화의 발전과정과 한중 양국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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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I. 머리말

Ⅱ. 중국 문화혁명의 발전과정

Ⅲ. 중국 기독교 전파의 역사적 회고
1. 20세기 중반이전 기독교의 '중국화' 과정
2. 중국 수립 후 기독교의 '중국화' 과정

Ⅳ. 중국 민간 기독교의 의의와 특징
1. 하나님 관
2. 삼위일체(三位一體)
3. 성경
4. 기독교 윤리도덕의 중국화
5. 기독교 의식의 중국화
6. 교회의 수난과 발전

Ⅴ. 근대 중국 민간 기독교의 발전

Ⅵ. 기독교의 한중 토속화 과정에 대한 비교
1. 기독교의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 비교
2. 기독교의 현대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 비교
3. 기독교의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에 대한 사색

참고문헌

본문내용

기독교의 두 나라에서의 '토속화' 과정에 대한 비교와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그 필요성이 있다.
1. 기독교의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 비교
기독교가 중국과 한국에 전파된 것은 각각 그 시기가 다르다. 중국에는 기원 7세기 당나라 초였고 한국에는 기원 8세기 후였으며 중국이라는 매개체를 걸쳐 전해졌었다. 그러나 더 깊이 있고 넓게 전파됨에 따라 기독교는 中韓 두 나라에서 서로 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은 오랜 세월 깊이 뿌리 박힌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통치자들이 유교학설을 신봉하였기에 외래의 이교와 이설은 시작하기 어려웠고 중국에 뿌리 내리려면 중국 전통적 사상과 문화와 잘 융합하고 투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하지 않으면 양 자가 공존할 수 없었다. 불교가 바로 그 전형적 예었다. 만약 불교 자체의 의미가 중국 전통 유교학설에 의하여 융합되지 않았다면 중국이라는 땅 덩어리 위에서 뿌리 내릴 수 없었고 중국의 사대부들도 받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니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가장 많은 지역일 뿐만 아니라 그 사회 계층도 넓었는 바 농촌과 도시를 모두 포함하였다. 그 원인을 보면 이 시기에 국내의 유교 세력이 쇠퇴되고 샤머니즘이 다시 대두하였는데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이 바로 샤머니즘이 부흥할 때 한반도에 들어간 것이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한국인은 그들의 신인 하늘님이 기독교의 천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믿었고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일치하였기에 양 자는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기독교의 한국에서의 신속한 성장을 위하여 좋은 토양을 마련해주었고 서양 기독교가 한국의 샤머니즘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전제 조건을 제공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한국에서 아주 쉽게 빠른 발전을 이룩하였다. 반대로 중국을 보면 원나라 때 기독교가 쇠퇴의 추세를 나타낸 원인은 바로 중국 전통문화와의 융합점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였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강하고 성숙된 중국 봉건문화 앞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였기에 그 승리의 여부는 말할 조차도 없는 것이다. 근대에 기독교가 중국에서 세력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주요한 원인은 당시 중국 사회의 봉건통치가 이미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전체 중국이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환되었으며 서양 열강들이 군사력으로 중국을 침략하는 완전히 빈 틈을 타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은 중국 국정에 적응함에 비교적 주의하였고 기독교의 '중국화'를 적극 추진하였고 이는 기독교가 적당한 토양을 찾아내고 중국에서 자기의 선교 전략을 마련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상황은 여전히 같지 않았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여전히 기독교를 정신적인 아편이라고 생각하고 서양의 진보적 문화의 대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中韓 양 국의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의 바탕이 양 국에서 기독교가 서로 다르게 전파되는 상황과 실제의 처지를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2. 기독교의 현대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 비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잇달아 식민지의 치욕적 지위에서 벗어났고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각각 1948년과 1949년에 건국되었다. 20세기 중반으로부터의 50여년간 中韓 양 국의 기독교는 상승세에 있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더욱 빨리 발전하는 추세를 보였고 이에 비하면 중국 기독교는 한국을 따를 수 없었고 나아가서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아래의 숫자를 보면 '한국의 1945년 천주교 신자는 188.600명, 신교 신자는 30만명, 중국의 1948년 천주교 신자는 320만명, 신교 신자는 70만명'으로 20세기 전에는 양국의 기독교 신자의 숫자가 별로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50년대로부터 양국의 기독교 신자 숫자는 비교적 큰 변화가 있었는데 현대 기독교는 한국이 중국에서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한국의 1980 년대 기독교 신교 신자 1000 여만, 즉 평균 매 4명중 한명은 신교 신자였고, 중국의 1980 년대 기독교 신교 신자는 500 만명이었고 지금까지도 큰 발전은 없어 전체 인구의 1/100 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건국 전의 70 만과 비교하면 발전이 빨랐다고도
할 수 있다.
3. 기독교의 중한 양국에서의 토속화에 대한 사색
우리는 기독교라는 서양 문화의 산물이 동양의 중국과 한국의 비교를 통해 동서양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문화가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바탕의 조건하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협력하고 융합할 지의 가능성은 이미 기독교가 中韓 양 국에서 전파한 과정 중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두 문화간의 교류를 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충돌과 융합이 발생하고 상호이해와 보완이 그것이다. 이것은 21세기에 진입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 명백하다.
한 민족과 국가의 문화가 개방될수록 다른 민족의 우수한 문명의 성과를 더 잘 받아들이고 반대로 폐쇄적이고 자만하는 어리석음을 고수하는 문화는 다른 문화와 철저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독교가 中韓 양국에서 전파된 역사와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비교로부터 얻은 결론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인 21세기 오늘에 와서 이 추세는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화는 인류문화의 새로운 융합과정이다. 서로 다른 문화간의 차이는 상호 보완과 추진에 의거한 평화적 방식으로 작아질 수 있다.
참고문헌
21세기종교환경의 변화 및 사회문화적 역할 제고 방안 (1998, 문화관광부, 김종서 연구)
한 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지영사, 강준영 전병곤 지세화 저)
세계의 종교와 관습 (1995, 도서출판 은성, 제임스F.루이스 윌리엄G.트레비스 저, 엄성옥 박경환 옮김)
오늘의 중국 (1992, 중문출판사, 이공윤 박광득 노장시 저)
중국 기독교사 (1995, 쿰란출판사, 이관숙 저)
중국 문화사 (한길사, 찰즈 허커 저, 박지훈 박은화 이명화 옮김)
현대 중국을 찾아서1 (이산출판사, 조너선 스펜스 저, 김희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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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24
  • 저작시기2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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