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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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 당시에는 명가와 후기 묵가들의 역설적 논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순자는 이들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명(名)과 실(實)의 문제를 따진 것입니다. 순자는 명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바른 방법인가를 탐구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순자의 '명실론'은 현대의 논리학과 여러 가지로 비슷합니다.
순자는 먼저 지(知)와 지(智)를 구별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知)와 지(智)를 별 구별 없이 사용하였습니다. 순자는 이러한 습관적인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두 개념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순자에 따르면 지(知)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앎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지(智)는 사람이 안 것과 실제 대상이 들어맞았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순자는 인간의 인식 기능을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감각 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心)입니다. 감각 기관은 바깥 사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고, 마음은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사물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합니다.
마음의 작용을 더 세분해서 보면, 먼저 감각 기관이 받아들인 사물을 비슷한 것끼리 나누고 그것들을 이전에 가졌던 경험과 맞추어 봅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나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인식이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감각 기관이 받아들이고도 알지 못하거나 또는 마음이 해석해 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식 대상을 구분하면서 생기는 것이 명(名)입니다. 사물의 명칭이 생기는 이유는 편의라는 필요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그 필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윤리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이유입니다. 윤리적 이유란 명칭을 통해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분하기 위함이고, 논리적 이유란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명칭은 약속입니다. 새로운 것이 생겼을 때 과거의 어떤 것과 같으면 같은 이름을 붙이고, 다르면 다른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명칭은 간단하면서도 쉽게 이해가 되고, 사물을 직접적으로 가리켜 혼동이 없는 이름입니다.
그 밖에 알맞는 이름은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써 오는 명칭은 실명(實名)이라고 했습니다. 순자는 명칭도 여러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말이나 돌 같은 단순 명사와 흰 말이나 단단한 흰 돌 같은 복합 명사가 있습니다. 순자는 단순 명사를 단명(單名)이라고 했고, 복합 명사를 겸명(兼名)이라고 했습니다.
또 공명(共名)과 별명(別名)이라는 구분도 있습니다. 공명은 보편적인 명칭이고, 별명은 구분하는 명칭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이 공명이라면, 사람이나 말은 별명입니다. 순자는 한 걸은 더 나아가 더 이상 포괄할 수 없는 통칭을 대공명(大共名)이라 했고, 더 이상 세분할 수 없는 명칭을 대별명(大別名)이라고 했습니다.
순자는 이런 기반 위에서 묵가나 명가의 궤변적인 논리를 비판합니다. 묵가의 주장 가운데 도둑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자는 이러한 논리는 도둑이 사람에 포함되는데도 도둑과 사람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여 명칭을 가지고 명칭을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순자는 혜시가 제시한 산과 연못이 똑같이 평평하다는 논리도 비판합니다. 사물은 구체적이지만 명칭은 추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높은 지대에 있는 연못이 낮은 지대에 있는 산보다 고도가 높을 수는 있지만, 산과 못이라는 일반 명칭은 일반적인 법칙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혜시의 논리는 구체적인 사실로 일반 명칭을 혼란시킨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또 공손룡의 흰 말은 말이 아니라는 논리도 비판합니다. 흰 말은 말 속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이런 논리는 명칭만을 가지고 사실을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순자는 이 같은 잘못된 논리들이 논쟁과 시비거리로 발전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훌륭한 임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 순자 철학의 가치
순자가 살던 시대는 주나라가 완전히 몰락하던 전국 시대 말기였습니다. 공자 때에도 이미 겸병 전쟁의 주체가 점점 아래 계층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나타냈지만, 전국 시대에 이르면 구 귀족만이 아니라 새로운 지주 계층들까지 등장하면서 혼란이 더 심해집니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기존 통치 세력과 신흥 지주 계층의 대립으로 압축됩니다. 구 귀족은 봉건 통치의 부활을 꿈꾸면서 예치(禮治)를 내세웠고, 신흥 지주 계층은 개혁을 표방하고 법치(法治)를 주장했습니다.
순자는 이런 상황에서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법에 의한 통치 이론을 완성시킨 제자들, 한비자와 이사를 통해 열매맺게 됩니다. 역사의 발전이 가져온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순자의 사상은 위에서 본 것 같은 사회적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순자 사상의 특징은 철저하게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했지만, 그 악한 본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간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구체적인 제도로 예제의 부활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현실의 임금들이 당시에 맞는 예의 제도를 만들어서 피치자 모두를 교화시켜 가기를 바랐습니다.
순자는 자신의 철학에 여러 가지 가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카우카수스 절벽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던 프로메테우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을까? 아니면 인류를 위한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을까?
순자는 자기보다 먼저 유가를 높였던 맹자를 혹평하였습니다. 맹자는 글과 말만 뛰어났을 뿐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덕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유가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입니다. 순자는 유가가 몰락한 책임을 맹자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순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인간의 어두운 면을 집어내고 그 현실적인 처방을 제시하였습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 있던 불행들처럼. 그러나 그 제일 밑에 희망을 남겨 놓았습니다. 착한 일을 행하면서 본성을 거스를 수 있는 인위적인 의지가 그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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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8.07.23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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