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시, 한국의 근대시] 한국의 근대시(191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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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대시, 한국의 근대시] 한국의 근대시(1910∼1940)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1910년대의 시문학
1.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시의 특징
2. 1910년대 시의 특징
3. 1910년대 시의 문학사적 의의
4. 주요 발표지

제2장 1920년대의 시문학
1. 시대적 배경
2. 1920년대 시의 특징
3. 주제와 표현의 특징
4. 문학사적 의의
5. 1920년대의 동인지와 잡지

제3장 1930년대의 시문학
1.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
2. 1930년대 시의 특징과 의의
3. 주제와 시적 표현
4. 1930년대의 중요 동인지 및 잡지
5. 1930년대의 중요 경향

제4장 1940년대, 암흑기의 시문학
1. 시대적 배경
2. 사회, 문화적 배경
3. 시인들의 대응 방식
4. 이 시기의 시적 경향
5. 1940년대의 중요 잡지

본문내용

로는 김광균, 장만영 등을 들 수 있고, 이상의 경우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의 시를 선보였다.
⑶ 생명파
순수시를 표방한 <시문학>의 유미주의적 경향과 관념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감각적 기교주의와 반생명성에 반발하여 등장한 일군의 시인들을 가리키는 명칭. <시인 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한 서정주를 중심으로 하여 오장환 등이 생명파의 중심 시인으로 꼽히고, 휴머니즘론을 본격 제기한 소설가 김동리도 생명파의 일원으로 꼽힌다. 그 외에 윤곤강, 신석초, 유치환은 <시인 부락>의 동인은 아니지만 생명파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은 <시문학>의 예술 지상주의적인 경향을 이어받으면서도 생명의 본질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이를 좀더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제4장 1940년대, 암흑기의 시문학
1. 시대적 배경
중일 전쟁(1937)에 뒤이어 태평양 전쟁(1941)을 일으킨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대하여 전시 동원 체제를 강요하였다. 징병령과 징용령을 내려 조선인들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 삼았을 뿐 아니라,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물자를 징발함으로써 조선인들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가했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나 시인들에게는 이른바 총후보국(銃後報國), 문필보국(文筆報國)의 명분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친일 문학을 강요하였다.
2. 사회, 문화적 배경
일제는 내선 일체(內鮮一體)의 미명 아래 창씨 개명과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우리말과 글의 공식적 사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황국 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강요함으로써 민족 말살을 획책하였다. 또한 1941년에는 조선어로된 신문(조선·동아 일보)과 잡지(문장, 인문 평론)를 폐간 조치하였다. 이에 따라 일체의 문화 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고, 단지 친일 어용 문인들만이 시국에 적극 협력하는 잡지들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3. 시인들의 대응 방식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다수의 시인들은 일제의 강요에 못 이겨서, 혹은 자발적으로 친일을 하였으며, 일부는 아예 절필함으로써 소극적이나마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 시기를 우리 문학사에서 흔히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암흑 속에서도 우리 문학의 미래를 비춰 주는 불꽃이 완전히 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적 윤리 의식에 입각한 진솔한 자기 성찰의 자세를 보여 준 윤동주와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지사적 절의와 기개를 시로 형상화한 이육사는 암흑기를 비추는 마지막 들불 같은 존재였다.
4. 이 시기의 시적 경향
⑴ 민족적 전통의 탐색
<문장> 지를 중심으로 고전의 소개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시인들의 작품에도 민족적 전통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김영랑의 '춘향' 같은 작품이나 김상옥, 이호우 등에 의해서 창작된 시조들이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이들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말을 지키고 민족적 정조를 표현하려는 노력이다.
⑵ 기다림의 자세
이육사의 '광야', '청포도', '절정'같은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절망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견디는 견결한 자세이다. 이 미래는 한편으로는 '조국의 광복'이지만, 단순히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광야'에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는 표현은 일제로부터의 조국 광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포함하여 좀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는 위대한 조국의 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햐하는 것이 타당하다.
⑶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의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참회록' 등의 시는 민족의 고통과 시대의 어려움을 직시하는 지식인의 자기 성찰과 윤리적 고뇌를 보여 준 시들이다. 특히 윤동주는 투명한 지성을 바탕으로 시대의 현실 속에서 속죄양처럼 내면의 고통을 당하는 지식인들의 정신적 고뇌를 인간 자체의 생명적 아픔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노래하였다.
⑷ 자연파(自然派)
<문장>을 통해 등단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은 동양적인 자연 세계(해와 달, 산과 나무)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서정과 율격을 지닌 시들을 발표하였다. 이들의 시는 김상용 등의 전원시를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일제말의 엄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지절을 지킴으로써 윤동주와 함께 해방 이전의 시단을 마지막으로 장식하였고, 8·15 이후 <청록집>(1946)을 발간함으로써 암흑기를 조명할 수 있게 하는 등 해방 후 우리 시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⑸ 허무적인 경향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인생에 대한 회의, 절망, 허무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다수 발효되었다. 서정주의 '바다', 신석정의 '슬픈 구도',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 등의 시가 그것이다.
5. 1940년대의 중요 잡지
⑴ 문장(文章)
1939년 2월에 창간된 종합 문예지. 창작 작품의 발표 및 고전의 발굴에 주력했다. 특히 이 잡지는 신인들을 다수 발굴하였다. 신인 추천은 이병기(시조), 정지용(시)이 주로 담당하였으며, 이를 통해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청록파의 세 시인을 포함하여 이한직, 박남수 같은 시인들과 김상옥, 이호우 등의 시조 시인들이 시단에 소개되었다.
⑵ 인문 평론(人文評論)
1939년 10월에 창간된 문예지. 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최재서가 주재하였다. 작품 발표 및 비평 활동에 주력했으며, 우리 문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1941년 폐간되었고, 그 후 <국민 문학>으로 개제(改題)하여 일본어와 우리말을 혼용하면서 간행되었으나, 나중에는 일본어로만 간행되면서 친일 어용지가 되었다.
⑶ 기타 문예지
화가 구본웅이 편집한 <청색지>, 유진오, 이무영, 최정희가 동인으로 참가한 <작품>, 서정주, 유치환, 이육사, 신석초 등이 동인으로 참가한 <시학>, 박남수, 김상옥, 김광섭, 장만영 등이 동인으로 참가한 <맥>, 조지훈, 김용태가 동인으로 참가한 <백지>등이 있었다. 이 동인지들은 1938, 1939년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뚜렷한 문학사적 의의를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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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9.29
  • 저작시기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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