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보고서 - 국립 4.19 민주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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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답사 장소

2. 선정 이유

3. 4․19 혁명
1) 4․19 혁명의 배경
-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
- 경제적 배경
- 이승만 정부의 실정
2) 4․19 혁명의 과정
- 2․28 대구 학생 시위
- 3․15 마산 의거
- 4․18고대 시위
- 4․19 혁명 발발
-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
-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

4. 4․19 혁명의 의의
1) 새로운 정부의 출범
2) 진보적 세력들의 사회 논의 활발
3) 국제사에 미친 영향

5. 미완의 혁명, 4․19 혁명

6. 답사 후 느낀 점

7. 참고 문헌

본문내용

정치적 갈등과 다툼에 빠졌다. 이러한 민주당의 분열은 장면 내각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과감한 정책의 실행을 어렵게 했다. 그러므로 419 혁명의 이념이 제대로 실천에 옮겨질 수 없었다. 그 결과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벌어진 각종 부정이나 비리에 대해서조차 단호한 조처가 취해질 수 없었다. 부정 선거 책임자나 부정 축재가의 처벌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분노한 학생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위가 이어지자, 장면 내각은 오히려 각종 법률을 만들어 사회 운동을 억눌렀다.
결국 사회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516 군사 정변으로 꺾이고 말았으며, 419 혁명도 ‘미완의 혁명’으로 남게 되었다.
419 혁명을 기리는 시들이 적혀있다.
상징문
성역공간과 이용공간을 구분함으로써 민주영령에 대한 충정의 감정을 고양
⇒ 묘지와 기념탑으로 가기 전에 보이는 문이다. 바깥의 세상과 안의 세상을 단절시켜놓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묘지 안에 잠든 선열들에게 고요한 평화를 주기 위해서.
4.19 혁명 기념탑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웅장한 탑이다.
중앙에는 애국 선열들이 비장하게 서 있고, 그 아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一九六o년 四월 十九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 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린 一八五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四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 4.19 혁명의 상황을 실감나게
축소해 놓은 모형
→ 1960년 4월 26일, 교수단의 시위를
축소해 놓은 모형
6. 답사 후 느낀 점
교과서에서만 접해오던 4.19 혁명. 기념 묘지가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직접 길을 물어서 찾아간 4.19 기념 국립묘지에 대한 첫인상은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서부터 노인 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따사로운 햇빛 아래 봄을 느끼며 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잔디밭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과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엄숙하고 조용할 것 같던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가깝게만 산다면 주말마다 놀러 나오고 싶을 만큼 평화로운 곳이었다.
조금 걸어서 4.19 기념관에 도착했다. 안내문을 잘못 읽어 휴일인줄 알고 놀란 우리에게 옆에서 전시회를 준비 중이시던 아주머니께서 상냥하게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셨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들어간 전시관 내부는 조금 좁았지만 4.19 혁명의 역동적인 과정을 차례차례 느낄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길을 따라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그림과 설명을 보며 당시 상황과 진행 과정을 쭉 읽어갔다. 곳곳에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축소형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서 혁명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 시절의 흑백사진을 보고 왠지 모를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곧 있을 4.19 기념 사진전시회 때 밖에 전시할 사진들을 미리 볼 수 있었다. 비닐이 싸여있어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흑백사진들을 보며 그것이 불과 50년도 안 된 일이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념관에서 나와 곳곳에 핀 꽃들을 구경하며 기념탑을 향해 걸었다. 기념탑은 매우 높았고 멀리서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기념탑으로 가기 전에, 바깥세상과 열사들이 잠들어 계신 안의 세계를 구분하는 입구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성스러운 곳으로 발을 들이는 느낌이었다. 넓은 공터를 지나 기념탑 앞에 선 나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탑이 훨씬 큰 것도 이유이겠지만 탑 앞에는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동상들이 서 있었다. 동상은 여섯 명의 사람으로 키가 작은 어린 학생부터 큰 어른까지 일렬로 서 있었다. 4.19 혁명 시기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들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굳건히 탑을 지키고 있는 듯한 동상은 마치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다 희생되신 선열들이 잠들어 계신 묘 구역에 들어서자 엄숙함이 밀려왔다. 4월 19일마다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을 떠올리니 뭉클함이 솟아올랐다.
온 국민이 하나되어 민주화를 외쳤던 지난 4월의 자랑스런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물론, 현대인들의 생활적 휴양지도 되는 곳. 어릴 때부터 공원처럼 놀러오는 곳이 국립묘지라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일인 것 같다. 기념관 안에는 아이들 역시 꽤 많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역사의 한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 교육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일이 아닐까? 20년 가까이 살면서, 교과서로는 4.19 혁명의 배경, 과정, 의의까지 달달 외우던 내가 직접 이 곳을 찾은 게 처음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각종 조형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진 찍으면서, 4.19 혁명을 책에서가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참고 문헌
○ (이룸이앤비) 숨마쿰라우데 한국 근현대사 p. 425~429
○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p. 277~283
○ (대한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p. 266~270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19혁명(역사 다시 읽기 하나) -김정남
○ http://419.mpva.go.kr 국가보훈처의 국립 4.19 민주 묘지 홈페이지
○ http://www.419revolution.org/ 4.19 민주 혁명회
*목차
1. 답사 장소
2. 선정 이유
3. 419 혁명
1) 419 혁명의 배경
-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
- 경제적 배경
- 이승만 정부의 실정
2) 419 혁명의 과정
- 228 대구 학생 시위
- 315 마산 의거
- 418고대 시위
- 419 혁명 발발
-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
-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
4. 419 혁명의 의의
1) 새로운 정부의 출범
2) 진보적 세력들의 사회 논의 활발
3) 국제사에 미친 영향
5. 미완의 혁명, 419 혁명
6. 답사 후 느낀 점
7.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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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01
  • 저작시기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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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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