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하나님 나라][예수][그리스도]하나님의 개념,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 오류들, 하나님나라와 예수사건, 하나님나라의 표징으로서 교회, 하나님나라의 특이점, 하나님의 도성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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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나님][하나님 나라][예수][그리스도]하나님의 개념,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 오류들, 하나님나라와 예수사건, 하나님나라의 표징으로서 교회, 하나님나라의 특이점, 하나님의 도성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하나님의 개념

Ⅲ.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
1. 아날로기아의 문제
2. 간접적인 하나님 인식
3. 신앙의 인식
4. 인식 대상의 특수성--은혜의 인식으로서의 하나님 인식
5.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자기 인식과 인간의 하나님 인식
6. 하나님의 은폐성(Verborgenheit)
7. 하나님 인식의 진실(Wahrhaftigkeit)

Ⅳ.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 오류
1.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불변하신다
2. 전능
3. 전지
4. 다른 이의 감정을 느끼는 거룩한 공감으로서의 하나님의 사랑
5. 불멸
6. 무오한 계시

Ⅴ. 하나님나라와 예수 사건
1. 하나님나라와 이적
2. 하나님나라와 수난
3. 하나님나라와 부활

Ⅵ. 하나님나라의 표징으로서 교회

Ⅶ. 하나님나라의 특이점
1. 안식일
2. 안식일 지킴

Ⅷ.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의 내용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것은 자력구원을 의미한다. 올바른 질서가 아니다. 죽음을 가져온다. 구약성경에 보면 안식일을 안 지키면 죽는다. 하나님의 풍성함에 참예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과 행복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의 일을 삼가야 된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신 것은 하나님나라 선포와 관련되어 있다. 치유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결핍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안식일에 손 마른자를 치유하셨는데 손이 말랐다는 것은 결핍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풍요에서 떨어져 나감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다. 이러한 고난은 바로 죽음의 증상들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일로부터 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엿새 동안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살겠습니다라는 다짐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6일 동안 돈을 받고 의술을 행하였다고 주일에 아무런 의술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생업으로서의 의술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울러 주일은 우리의 신앙을 말씀으로 북돋우는 날이 되어야겠다. 교인끼리 만나서 교제하고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지켜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미래에 잔치와 상속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하나님나라가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다. 예수님이 치유를 안식일에 하셨는데 하나님나라가 현재 임한 것을 암시한다. 치유를 주로 안식일에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나라가 창조를 다시 한번 심히 아름다운 상태로 만들어 우리 모두가 생명의 풍성한 상태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
Ⅷ.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의 내용
인간은 낙원으로부터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육체의 죽음과 나아가서 보다 치명적인 영혼의 죽음에 예속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버려졌고, 또 그의 욕망들도 더럽혀졌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데 있다’고 봄으로써, 선함이나 악함이란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의지의 방향에 속한 문제이지, 인간의 영과 대립한채로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Amor, Dilectio, Caritas ↔ Cupiditas]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 개념에 근거하여 두 도성을 얘기한다. “이에 따라 두 도성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랑에 근거를 둔다. 지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자기를 사랑하는데 근거하고, 천상의 도성은 자기를 경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근거한다. 전자는 자기 자신 속에서 영광을 구하나, 후자는 양심의 증인이신 하나님에게서 그의 가장 높은 영광을 구한다. 전자는 스스로의 영광 중에 머리를 드나, 후자는 ‘당신은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들어 올리십니다’라고 하나님께 말한다.” [제14권 28장]
Ⅸ. 결론
어거스틴은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에 반대해서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했다. 만약 플로티누스의 말처럼 신적인 존재인 일자로부터 모든 만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면 만물 속에 신적인 요소가 함유되어 있을 것이고 결국 유출설은 범신론에 빠지고 만다. 궁즉적으로 범신론에 빠지는 유출설에 반대해서 어거스틴은 “무로 부터 세계 창조”를 말했다. 그러므로 시간 역시 무로 돌아가려고 하는 무상성에 사로 잡혀있다. 어거스틴이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 「고백록」 제 11장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시간의 본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항상 과거로 옮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의 순간을 포착하여 고정해야만 포착된 순간을 정점으로 미래, 현재, 과거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데 현재란 계속적으로 흘러가 버리므로 결국 시간을 잡아둘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해서 결코 “시간의 동안”은 측정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현존성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즉 그가 보기엔 과거, 현재, 미래 중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 존재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 세 가지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바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의식 내재적인 시간성으로 바꿀 때 과거, 현재, 미래는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란 이미 사라져 버렸으므로 현재 존재하진 않지만 마음 속에서 기억의 작용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 또한 미래에서 과거로 계속적으로 흘러가 버리므로 현재를 포착할 수 없지만 직관의 작용으로 현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미래 역시 영혼 속에서 기대의 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기억, 직관, 기대는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용이므로 현재는 정적인 순간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현재에 대한 직관으로 구성하는 일존의 연장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비록 영혼 속에서 시간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은 게속적으로 흘러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 바로 시간이 가변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무로부터 창조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로 돌아가려는 성향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절대 무에서 무형의 질료를 만들고 여기에 말씀을 가(加)하심으로써 무형의 질료들이 동시적으로 피조물들이 창조되었다. 시간 역시 절대 무에서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가변성을 가지고 무상성으로 끊임없이 파괴되는 시간이 자기에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원에게로 향해야 한다. 영원으로 매개될 때만이 시간이 무로 와해되지 않고 자기의 동일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시간이 영원 속에 매개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라고 말하고 성육신 사건 속에서 영원자의 사랑이 나타난다고 했다.
참고문헌
1. 기독교사상조사실(1969), 1960년대의 교회성장, 기독교사상 12월호
2. 서광선 외(1984),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현상과 구조, 대화출판사
3. 송영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논문
4. 이원규(1991), 한국 종교인의 정치의식, 종교사회학-이론과 실제, 한국신학연구소
5. 픽슬레이(1987), 하느님 나라,정호진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6. Watchman Nee(1976), 강진선 이인한 공역, 산 제물, 생명의말씀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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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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