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의 불교] 송나라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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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대의 불교] 송나라의 불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송나라 불교계의 주변

2. 불교 예술

3. 도교의 흥성

4.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형성

5. 불교의 발전

6. 대장경의 출판

7. 저종의 장세
1) 선종
2) 천태종
3) 율종
4) 화엄종
5) 정사종

8. 참고자료

본문내용

숙년은 인악의 숙년보다 3년전이다. 제자 택기가 그 뒤를 계승하고 그제자에 원조가 있다.영지 원조는 대지율사로서 처음에는 천시종을 배우고 보살계를 받아 정토신앙에 두터웠는데, 법장에 의하여 남산을 이해하고 도선의 삼대부를 주하였다. 그 중에 <행사초자치기>는 <회정기>에 대한 론급으로 불을 요하는데, 좌냐 우냐, 또 의제의 장단에 대한 의견을 달리하여 드디어 회정. 자지의 2종으로 분립하였다.이 윤감. 원조의 2인에 의하여 율종이 세를 얻었으나, 그 후는 쇠미하여 오직 원조의 계통만이 상전하였다.
4) 화엄종
종밀의 제자 석벽 전오는 종밀의 <기신론주소>를 세석하여 <수소기>를 저작하고, 또 종밀의 .<금강경소론찬요>에 <과의의>를 저작하였는데, 모두 용만번장하므로 장수 자옥은 양서를 간단히 산정하여 필삭기와 간정기로 하였다. 자옥은 사명 지예보다 10년 후에 입적하였으나, 처음에는 천태종의 오은의 제자 홍민으로부터 릉엄을 배우고, 혜각에게서 선을 습득하였다. 혜각으로부터, 「여의 종은 부진하니 노력하라」고 격려함을 듣고, 장수에 주하여 화엄종을 설하고 <능엄경소>를 저작하였다. 그의 문인에 쟁원 등이 있다. 보수 쟁원은 신지 종원보다 3년전에 적하였으나, 장수에게서 능엄. 원각. 기신을 청강하고, 화엄종은 오대승천에 계하였다. 고려의 의천이 와서 화엄을 배웠는데 화엄종의 장소는 산일되었었다. 의천은 그 때에 가지고 온 것도 있고 귀국 후 다시 <화엄종> 3역을 보내왔으므로 정원은 대각을 건조하여 이것을 안치하였다. 이 정원을 중흥의 교주라고 한다. 저서에 <망건환원관초포해>. <원인론발미록>이 있다.
제자에는 의천 외에 충이 있고, 충의 다음에는 관, 관의 다음에는 사회, 사회의 다음에 심과 선의가 있다고 하나 명확치가 않다. 이 가운데에서 사회는 화엄종의 송조 4가의 1인이다. 그런데 이 4가라 함은 <화엄오교장>의 주를 쓴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보정사 도정이 <의원>을, 화엄사 관복이 <절신기>를, 전기의 사회가 <후고기>를 저작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의원>은 <수현기>와 <탐현기>를 보지 않고, 청량. 규봉에만 의거하였으므로 정설을 일하였다하고, <집신기>는 이미 산일되었고, <분신>은 그것을 대파한 것이고, <후고기>는 지상대사의 고에 택하는 것을 주로 하였으나, 지상대사 이하의 연천취의에는 어둡다는 평을 받으며 <집성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 4인의 사승중 사회를 제하고는 전혀 밝힐 수가 없다. 이것으로써 미루어보면, 화엄종은 거의 사인에 주의되지 않은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5) 정사종
송대에 있어서 정토교는 독립된 전문가가 없고, 각 종의 사람들이 정토신앙을 가졌으며, 그 사람들에 의하여 성황을 이룬 상태이었다. 일설로는 혜원. 선도. 송원. 법조. 소강. 정수. 성상을 연사의 8조라고 하나, 그것은 통상 말하는 혜원류. 선도류를 혼동하고 자민류를 혼동한 것이다. 선종 법안종의 영명 정수와 같은 정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그 계통에 넣은 것은 타종의 사람이 투터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당시의 정토종이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영명 정수는 법안종의 천태 덕소에 삼하여 선법을 배워 인가받고, 또는 정토의 업에 노력한 사람으로서 전술한 바와 같이 오월왕 홍숙의 존경을 받고 제자도 많았으며 저서에는 신종의 입장을 쓴 <종경록> 100권, 정토적으로 술한 <만선동귀집> 등이 있는데, 염불과 신과의 일치를 창도하였다. 조경 성상은 려산의 풍을 사모하고 연사를 종사하고자 하여 서호에서 미타상을 각하고 <화엄정행품>을 혈서하고 정행사를 세웠으며, 여기에 삼예하는 자가 123인이었다고 하니, 이 사람은 정토종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종. 천태종. 율종. 화엄종의 많은 사람들이 정토신앙을 가졌다. 특히 천태계의 정토교가 ㅏ장 성하였으니, 준식. 지예. 지원 등은 그 대표자로서 준식에게는 <왕생정토참원의>. <왕생정토결의행원이문>이 있고, 지예에게는 천태의 <관경소>를 주석한 <관경묘종초>가 있고, 지원에게는 <아미타경소>, <아미타경서자초>. 관경간정설> 등이 있다.그리고 이 계통으로부터 나온 천태의 사람들은 모두 정토교를 닦고 정토신앙으로 생활하였으니, 택영은 <정토수정의>를 저작하고, 종효는 <낙랑문류>. <낙배유고>를 내고, 계주는 <정토주생전>을 제작하고, 사반은 <정토립교지>를 저술하였다.
또는 율종의 영지 원조 및 그 제자 계도도 정토원생자로서 원조는 <관경의소>. 아미타경소>를, 계도는 그것을 받아서 <관경정관기>. <부신론>. 아미타경문지기>를 저작하였다. 보현행원품은 사십화엄으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화엄을 통하여 정토신앙이 투터운 사람도 많았다. 반욕신사 려수는 고려의 심왕을 위해 화엄대의를 강하였으나, 후에 정업을 수하여 일과로서 미타의 명호를 송하였다. 선쪽에 있어서는 전술한 연수를 위시하여 종이 종본 법수 의회 등도 염불의 사람들이며 선정습합의 사람들이다. 선이 성한 송대에 있어서 선. 정의 사람이 대단히 많으며, 거사에 있어서도 양걸. 왕일휴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을 내었다. 왕일휴에게는 <용서정토문>의 저서가 있다.
그리고 정토교에 있어서는 당대와 같은 순수한 정토교가 없음은 상술한 바와 같거니와 일반 사회인의 종교로서 깊이 민중 속에 보급되어 있었으며, 송대에 들어와서 특히 현저한 현상은 미타신앙에 의한 염불결사의 족출이다. 항주 소경사의 성상은 정행사를 결사하고, 준식은 사명 보운사에서 정엄회를 개설하고, 지예는 연경원에서 염불정토를 결사하여 도속 999인을 사원으로 하였다. 또 영조는 화양 초과사에서 연사를 결사하니 사우가 2만인에 달하고, 도심은 남호에 정토계념회를 세우니 매월 매회에 집합하는 자가 만여에 달하였다고 하며, 혹은 거사 빙읍의 계념정토회, 거사 장류의 백연사를 위시하여 증나. 거사 등이 주최한 염불결사는 매우 많았으며, 어느 것이나 모두 증속을 집합하여 서방왕생을 기약하고자 했다. 따라서 송대의 미타신앙은 사회의 상하에 홍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참고자료
김성극,조의설,조자호, 세계문화사대계, 대학당
채의순, 칼라판대세계사
정원규, 중국불교사, 고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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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16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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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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