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회혁명(유토피아)과 사회주의의 지식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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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유토피아 사회주의

3. 중국 근대사의 전개 :변혁자로서의 근대지식층의 형성

4. 중국 사회혁명(유토피아)과 역사의 비약

5. 중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수용: 과학과 계급혁명

6. 사회주의의 지식사회학

7.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산당이라는 혁명의 중추기관을 장악하여 농민의 反봉건의 해방의식과 反일본 애국주의를 고취해 나감으로써 전개된 중국특색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성공하게 된 역사의 대혁명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앙코가 계급혁명의 중국적 특성을 들어 지식인과 농민간의 '불평등한 연합'
) Lucian Bianco, "Peasant Movement", 앞의 책, pp. 309-312.
(unequal alliance)을 주목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지식인의 역사비약을 향한 의지와 수억의 중국농민의 反日 애국심이 연동되어 1949년 중국혁명은 승리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적 국가건설의 시작에 불과했을 뿐 결코 사회주의의 완성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7. 맺음말
본고는 사회혼란과 외세압박이 중첩된 중국사의 총체적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형성된 중국의 근대지식인의 변혁구상을 도입기 사회주의의 전개에 맞춰 분석해 보았다. 19세기말 변법자강운동의 전개 이후 1949년 중국혁명의 성공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중국 지식인은 가히 중국사 변동의 첨두에 있었다. 무술변법 이후 1949년 혁명까지의 중국은 구질서의 해체와 신질서 구축이 급전하였던 시기였다. 전통질서에 대한 정치적 변화요구가 신해혁명에로 유도되었고, 청조의 正命이 다한 후 중국은 군벌할거의 분열과 제국주의의 跋扈로 혁명적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안밖의 위기상황으로 국가체제가 마비되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근대적 인텔리겐챠는 '舊秩序 解體'의 주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新秩序 構築'의 전위로 나섰던 것이다.
20세기 초 중국의 인텔리겐챠는 正命이 다한 왕조국가와 전통적 농업질서를 해체하고 근대국가와 산업사회를 형성하는 解體와 立新의 교체속에 그 실존의 의미가 부여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내생적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외연적 충격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즉, 근대중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형성과 산업적 근대화란 중국사회 자체의 내생적 동력이 아니라 민족·제국주의 세력의 외부충격에 자극을 받아 피동적으로 전개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의 변혁적 근대지식인의 실존적이며 사상적인 딜레마가 연원하고 있다. 중국의 근대지식인에 있어서 구미세계는 한편으로 신중국이 지향해야 할 학습의 준거요, 다른 한편으로 국가적 자립을 위해 정면으로 저항해야 할 정치적으로 대상이라는 이중적 단위였던 것이다. 즉 문명체로서의 '西洋'과 정치세력으로서의 '歐美國家'이라는 이중적 위상을 동시에 고려해야하는 딜렘마적 상황이 근대적 인텔리겐챠에게 부과된 것이었다.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도입되어 초기 유토피아적 공상의 단계에서 과학적 계급혁명의 이론적 실천적 준거가 되기 시작한 것은 당시 중국이 처한 문명과 정치의 이중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고 근대적 변혁주도 세력으로서 지식인이 처한 딜렘마적 상황에 돌파구를 제공해 준 것이었다. 즉, 중국 지식인들에게는 사회주의가 근대화의 긴박성을 강조해 준 동시에 구미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체제선택의 문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이념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항은 초기의 낭만주의적 사회혁명론에서 과학적 계급혁명으로 진전하게되는 것은 '신문화 운동'에서 중국 지식인이 각성한 '근대성'(modernity)의 각성과 5.4 사건으로 고양된 反제국주의 정치의식이 전제되었다는 점이다.
신해혁명 이전까지의 중국 근대지식층에게 비친 서양의 양면성, 즉 신문명자로서의 학습의 준거인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로서의 정치적 대항의 대상, 을 명확히 각성하지는 못했다. 예컨대 서양의 사회적 진화론과 자유주의 정치이론을 소개한 嚴復의 경우 '진보적 서양'을 준거하여 정체적 중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양문명의 근저를 학습해야한다는 것을 역설할 수 는 있었으나 제국주의적 서구열강에 대한 대항적 정치이념을 설정하는데는 실패했다. 아울러 왕조체제를 무너뜨린 反滿, 공화혁명을 내세운 孫文 휘하 혁명파의 경우도 滿/漢대립이라는 종족모순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反제국주의를 부차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신해혁명의 현실적 결과가 내적으로 남.북 분열, 대외적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의 强權主義(제국주의)로 나타나면서 신문화 운동으로 근대의식의 지평이 심화됨으로써 청년지식인들의 구조적 문제(권력변동을 결정하는 구조, 즉 사회변동) 해결의 필요성과 反帝.民族主義 의식의 고양되는 상화에서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아 과학적 마르크스주의가 중국화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강자(제국주의)의 자기팽창에 대한 대응의 정치논리(反제국주의) 제공하는 동시에 중국사의 근대적 발전에 대한 대안이념(反봉건주의)이었다. 결국 도입기 중국 사회주의는 초역사적 유토피아적 열망으로부터 계급혁명(대내적 反봉건주의, 대외적으로 無産者 國家의 反제국주의)의 과학으로 의식되면서 구체적인 정치실천의 교리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1927년 중국 공산당이 제1차 혁명 실패에도 불구하고 1935년 遵義회의에서 모택동이 부상함으로써 안으로 파시스트(反국민당)정권, 밖으로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는 중국적인 특색의 해방적 정치이념을 실천적으로 전략화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1927년 이후 중국 사회주의는 투쟁과 해방의 정치적 혁명이론의 차원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도입기 유토피아적 열망으로부터 과학적 이론으로 수용된 중국 사회주의는 1927년 이후 抗將(介石)과 抗日이라는 양면적 정치투쟁의 응용으로 발전하여 1949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본고가 유토피아와 과학의 지식사회학으로 이해한 도입기 중국 사회주의는 1927년에서 1949년간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론과 농민 사회주의 혁명의 지식사회학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의 사상」
에드가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이중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 하다」
이희옥 「중국의 새로운 사회주의 탐색」
남정휴, “덩샤오핑 시대 중국 개혁의 정치 경제(러시아와 동아시아 개혁과의 비교)”
문홍호, “후진타오체제의 대내외 과제와 전망”
송영배, “중국혁며오가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로서의 마오쩌둥 사상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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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12
  • 저작시기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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