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작가소개
(1) 연보와 작품들
(2) 오규원의 시 세계- 언어에 대한 탐구와 물신사회에 대한 비판
2.「이 시대의 순수시」분석
(1) 내용적 측면- ‘자유’와 ‘순수’의 의미
(2) 형식적 측면- 어조의 전환과 반복
Ⅲ. 나오며
※ 참고문헌
Ⅱ. 본론
1. 작가소개
(1) 연보와 작품들
(2) 오규원의 시 세계- 언어에 대한 탐구와 물신사회에 대한 비판
2.「이 시대의 순수시」분석
(1) 내용적 측면- ‘자유’와 ‘순수’의 의미
(2) 형식적 측면- 어조의 전환과 반복
Ⅲ.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밖에 존재하면서 주된 내용 안에 화자의 말을 굴절시키는 또 다른 화자가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화자의 병행을 통해 오규원은 시가 일상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진실의 매체가 아니라, 얼마든지 변형 가능하고 유동적인 허구의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가 사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이 시는 어조 전개상 1-5연과 6연의 어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1-5연까지의 내용이 6연에 와서 반전을 이루고 있으며, 6연의 내용은 1-5연의 내용에 의해 제한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6연에서의 어조 전환은 앞의 내용과 의미 전개상 이질적이고 돌발적이다. 1-5연이 자유와 사랑에 대한 내용이라면 6연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유를 형성하는 구체적 항목들이 서로 화해하고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장난’ 속에서 서로 충돌하여 그 부정적 속성을 노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언술은 다분히 풍자적인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시인의 자의식을 선명하게 엿볼 수 있다. 이연승(2002), pp.73-74.
그리고 이 시의 형식상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유’의 반복이 있다. 여기에 열거된 ‘자유’는 부정되어야 할 이름이다. 자유를 뭐라 이름 지을 수 있을까? ‘자유’라고 부르는 순간 그 이름에 구속되고 마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규원은 ‘자유’에 수다스런 술어들을 연결시켜놓는다. ‘이 세상은 나의 자유투성입니다’는 물론 역설이다. 이름에 당치도 않은 사실들을 잇달아 놓음으로써 ‘자유’는 무의미해져버린다. 함께 ‘자유’에 결부된 상투성도 해체된다. ‘걸어 다니고, 앉아 다니고, 사랑을 팔아서 옷을 벗기고, 꿈을 팔아서 편안히 사는’ 면역된 일상사를 자유라는 거창한 이름에 결부시키고 나서 그 자유의 이름을 허사로 만듦으로써 그 일상적 믿음들의 무의미를 일깨워준다. 이상의 반복이 착란을 일으키는 장치이며, 그것은 어려운 시대를 우회하는 기교였다면, 오규원의 반복은 효과적인 비판의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송상일(2002),「자유를 뭐라 이름 지을까」,『오규원 깊이 읽기』,문학과 지성사. pp.119-120.
또한 그는 교환 가치와 허위의식으로 상투화해가는 문명에 대해 시인의 부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러니를 사용한다. <이 시대의 순수시>에서도 아이러니를 통해 물신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곧 없어질 ‘달콤함’을 영원히 달콤할 것으로 믿고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이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속임수이며,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이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나태감이라는, 오늘날의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그것의 직설적인 노출보다 반어적인 학대를 통해 더욱 냉혹하게 전달된다.
Ⅲ. 나오며
근대 이후 많은 시인들은 그들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밀려온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 왔다. 어떤 이는 강렬한 저항정신으로, 어떤 이는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로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싸워왔던 것이다. 오규원 또한 그의 시를 통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른 시인들과 비슷하지만 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등에 본격적으로 비판을 가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성에 대한 대응적 측면에서 모순과 아이러니, 역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론은 김수영이나 김춘수 같은 전대의 모더니스트들보자도 더 극적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복합적인 면모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 이연승, 『오규원 시의 현대성』, 푸른 사상, 2004, p.333
’이다.
이와 같이 언어에 대한 탐구 뿐 아니라 물신적 사회에 대한 비판까지 그의 탐구의 축은 한 방향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탐구와 한계에의 자각, 후기에 와서는 날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새로운 시 쓰기에 대한 노력은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이 그저 시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사회 현실적 상황과의 밀접한 관련을 통해서 더더욱 깊이를 획득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되는 그의 자의식의 회전은 자기 탐구와 반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원동력 뿐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까지 자명한 일일 것이다.
현대 인간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여,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현대인에게 물질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히며, 본래 교환의 도구였던 돈은 오히려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 나오고, 그것을 인간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소비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현대인은 물신주의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서 오규원과 같은 시인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한 독특한 시 쓰기 방식과 자유로운 부정의 정신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현실의 양상을 보다 본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줄 것이다. 이 수업을 듣는 많은 학생들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언어가 과연 어떠한 허위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우리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고서를 마친다.
※참고문헌※
[연구논문]
김정일, 「오규원 시의 미적 근대성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김용현, 「오규원 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9
김경우, 「오규원 시의 변모양상 연구-현상적 초월의식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이연승, 「오규원 시의 변모과정과 시 쓰기 방식 연구」, 2002
이연승, 「산업 사회에서의 미적 성찰과 아이러니의 시 쓰기」한국시학회 No.12, 2005
[단행본]
이광호 엮음, 『오규원 깊이 읽기』, 문학과 지성사, 2002
이연승, 『오규원 시의 현대성』, 푸른 사상, 2004
그리고 이 시의 형식상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유’의 반복이 있다. 여기에 열거된 ‘자유’는 부정되어야 할 이름이다. 자유를 뭐라 이름 지을 수 있을까? ‘자유’라고 부르는 순간 그 이름에 구속되고 마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규원은 ‘자유’에 수다스런 술어들을 연결시켜놓는다. ‘이 세상은 나의 자유투성입니다’는 물론 역설이다. 이름에 당치도 않은 사실들을 잇달아 놓음으로써 ‘자유’는 무의미해져버린다. 함께 ‘자유’에 결부된 상투성도 해체된다. ‘걸어 다니고, 앉아 다니고, 사랑을 팔아서 옷을 벗기고, 꿈을 팔아서 편안히 사는’ 면역된 일상사를 자유라는 거창한 이름에 결부시키고 나서 그 자유의 이름을 허사로 만듦으로써 그 일상적 믿음들의 무의미를 일깨워준다. 이상의 반복이 착란을 일으키는 장치이며, 그것은 어려운 시대를 우회하는 기교였다면, 오규원의 반복은 효과적인 비판의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송상일(2002),「자유를 뭐라 이름 지을까」,『오규원 깊이 읽기』,문학과 지성사. pp.119-120.
또한 그는 교환 가치와 허위의식으로 상투화해가는 문명에 대해 시인의 부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러니를 사용한다. <이 시대의 순수시>에서도 아이러니를 통해 물신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곧 없어질 ‘달콤함’을 영원히 달콤할 것으로 믿고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이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속임수이며,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이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나태감이라는, 오늘날의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그것의 직설적인 노출보다 반어적인 학대를 통해 더욱 냉혹하게 전달된다.
Ⅲ. 나오며
근대 이후 많은 시인들은 그들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밀려온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 왔다. 어떤 이는 강렬한 저항정신으로, 어떤 이는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로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싸워왔던 것이다. 오규원 또한 그의 시를 통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른 시인들과 비슷하지만 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등에 본격적으로 비판을 가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성에 대한 대응적 측면에서 모순과 아이러니, 역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론은 김수영이나 김춘수 같은 전대의 모더니스트들보자도 더 극적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복합적인 면모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 이연승, 『오규원 시의 현대성』, 푸른 사상, 2004, p.333
’이다.
이와 같이 언어에 대한 탐구 뿐 아니라 물신적 사회에 대한 비판까지 그의 탐구의 축은 한 방향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탐구와 한계에의 자각, 후기에 와서는 날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새로운 시 쓰기에 대한 노력은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이 그저 시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사회 현실적 상황과의 밀접한 관련을 통해서 더더욱 깊이를 획득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되는 그의 자의식의 회전은 자기 탐구와 반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원동력 뿐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까지 자명한 일일 것이다.
현대 인간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여,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현대인에게 물질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히며, 본래 교환의 도구였던 돈은 오히려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 나오고, 그것을 인간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소비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현대인은 물신주의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서 오규원과 같은 시인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한 독특한 시 쓰기 방식과 자유로운 부정의 정신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현실의 양상을 보다 본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줄 것이다. 이 수업을 듣는 많은 학생들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언어가 과연 어떠한 허위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우리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고서를 마친다.
※참고문헌※
[연구논문]
김정일, 「오규원 시의 미적 근대성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김용현, 「오규원 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9
김경우, 「오규원 시의 변모양상 연구-현상적 초월의식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3
이연승, 「오규원 시의 변모과정과 시 쓰기 방식 연구」, 2002
이연승, 「산업 사회에서의 미적 성찰과 아이러니의 시 쓰기」한국시학회 No.12, 2005
[단행본]
이광호 엮음, 『오규원 깊이 읽기』, 문학과 지성사, 2002
이연승, 『오규원 시의 현대성』, 푸른 사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