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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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서 론 -

- 본 론 -
1.역사교과서파동-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새로운 역사교과서
⑴ 개념
⑵ 지원세력:
① 자민당과 개별 정치가
② 우익 기업인들
③ 보수언론
2.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의 실태와 배경
⑴ 실태[자료첨부]
①왜곡된 한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②위 역사교과서 기록의 오류
⑵ 배경
① 백제의 영향을 부정하려는 심리
② 전체주의와 제국주의, 식민주의사관과 황국사관
③ 일본인의 보수성 및 자민당의 교과서 채택압력
3. 우리나라의 수정요구와 일본의 주장[자료첨부]
4.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⑴ 우익세력의 역사인식
⑵ 양심단체의 역사 인식
5. 독일의 역사교과서 및 책임의 자세

- 결 론 -
해결방안
1.교육의 강화
2.친일파 청산
3.국력의 강화

본문내용

구려 군이 왜국 격퇴 (광개토대왕비문)
ㅡ상설적인 주둔을 전제로 한 내용으로, 명백한 오류이다.
⑵ 배경
① 백제의 영향을 부정하려는 심리
일본은 백제의 발달된 문화를 흡수하여 고대국가의 틀을 확립하고 아스카문화와 나라문화의 꽃을 피웠다. 왕인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파하였고 그와 함께 각종 불상과 도자기, 건축기술 등이 전해졌다. 8세기 초 왜왕실에서 편찬한 역사책인 ‘일본서기’에도 백제 불교가 일본 불교 문화의 기틀이라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가 한민족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며 이를 부정하려는 심리로 애써 사실을 무시하며 교과서를 날조하고 있다.
② 전체주의와 제국주의, 식민주의사관과 황국사관
전체주의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념이고, 제국주의란 타국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이념이다. 초기 팽창기의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였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길을 동시에 걷게되면서 식민주의 사관을 갖게 되었다. 식민주의 사관이란 한국가가 다른 국가를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는 정책이 역사적으로 필연적이며 또한 문화적으로 유익하다고 믿는 역사의식이다. 또한 천황중심적, 국가주의적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천황과 국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침략과 수탈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③ 일본인의 보수성 및 자민당의 교과서 채택압력
일본내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경기침체와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국민 사이에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졌으며 극우주의와 보수주의 물결에따라 고이즈미 같은 극우파 총리의 압도적인 당선이 가능해졌다. 또한 일본인들의 보수성은 사회 각 부문에 걸쳐 그 뿌리가 깊다. 변화를 거부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정치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반세기가 넘도록 자민당의 집권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는 외관상으로 자주규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집권당인 자민당과 더불어 일본의 교육부분을 총괄하는 문부성이 실질적으로 교과서 검정에 개입하여 강하게 압력을 넣기 때문에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3. 우리나라의 수정요구와 일본의 주장[자료첨부]
4.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⑴ 우익세력의 역사인식 : 일본의 역사학계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보수적 학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주로 이들에 의해 집필되며 이들 보수적 역사학자들과 견해를 같이하는 관료(심의관)들에 의해 검정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자국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후지오카 교수의 주장이요, 자유주의사관의 출발점이다. 이들은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국익을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⑵ 양심단체의 역사 인식 : 이 교과서에 대한 반대운동을 펴온 일본 내 시민단체들은 검정결과에 일제히 실망감을 표시하며 불채택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4월4일 조간 1면 머리기사와 사설에서 ‘새역모‘의 교과서는 전쟁을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등 학교에서 사용하기에 부적절하고, 마치 패전 이전의 검정교과서를 방불케 한다”며 21세기를 개척할 어린이들을 위해 교육위원회에 일임하지 말고 현장교사, 학부모, 주민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마이니치신문은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타국의 신뢰를 얻기 힘들고, 일본의 진로도 위험해진다”고 우려했다.
5. 독일의 역사교과서 및 책임의 자세
독일과 일본은 모두 군사주의 체제하에서 전쟁을 일으켜 다른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준 국가들이다. 그러나 양국은 전쟁책임문제와 역사교과서 서술에 있어서 너무도 다르다. 1970년 12월 7일 당시 서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y Brandt)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있는 유태인 처형장 앞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를 맞으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 다. 또한 프랑스, 벨지움,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 등 외부국가와 함께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서술하는데 협력을 강화하였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부국가에 대한 엄청난 경제적 원조와 함께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를 하고 있다. 1995년 독일의 전 대총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가 “과거를 부정하는 인간은 과거를 되풀이 할 위험이 있다”라고 말하여 역사관과 역사교육에 대해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독일의 한 교과서는 ‘독일 안에서 나치에 지배’라는 제목의 단원에서 ‘독일에서 나치의 세계관과 독재의 성립과정, 테러적 지배의 위험’등을 학습목표로 내걸고 있다. 또한 ‘히틀러 소년단‘이라고 불리는 단체의 당당한 행진 모습이나 유태인에 대한 억압과 잔인한 테러 자형등을 그대로 기술하고 그와 관계된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 가장 참혹했던 강제수용소에 대하여도 사실 그대로 서술하여 독일인의 만행과 그 잘못을 인식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독일인들은 역사교과서 속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 결 론 -
해결방안 교육의강화 친일파청산 국력기르기
교육을 강화해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이 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논리적인 반박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 이다. 그저 감정으로만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합격본에 대한 정밀 검토를 하고 대응방안을 수립하며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운동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수립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 우호 협력관계의 기본전제라는 관점에서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참고사이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http://www.ilovehistory.or.kr/index.php
※참고문헌
신용철, 『역사를 속이면 역사에 속는다』, 2001, 우석출판사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문답으로 읽는 일본교과서 역사왜곡』, 2001, 역사비평사
홍윤기, 『일본의 역사 왜곡』, 2001, 학민사
타와라 요시후미,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역, 『위험한 교과서』,2001, 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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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22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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