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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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당시의 시대상황과 김부식의 역사의식
1. 당시의 시대 상황
2. 김부식의 역사관
3. 삼국사기란 무엇인가?

Ⅲ. 결론

본문내용

로운 형식의 사서류(史書類)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삼국사기」도 일정한 목적 밑에 기사(記事)를 선택하고 예대한 편찬자들의 해석을 가미시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사로서의 성격상 왕실 중심, 통치자 중심의 사료가 주된 편집 대상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 민중 관계 사료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그러한 제약을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귀족이나 민중이나 간에 일연은 아무런 제약 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 사료들을 수집하여 수록하였다. 이 점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비하여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씬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다.
2) 서술방법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달리 인용된 사료와 저자의 의견과를 구분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극히 적은 분량인 사론을 뺀다면 어디까지가 사료이고 어디부터가 편찬자의 의견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운 서술방법을 취하였다. 원칙적으로 「삼국사기」가 기존 사료의 편찬인 것임은 분명하지만, 때로 필요에 따라서 본문의 서술 자체를 편찬자의 목적에 맞추어 수정가필(修正加筆)하고 있다. 이것은 「해동고승전」이나 「역옹패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이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그와는 다른 독특한 서술방법을 취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 그는 <상지론지>, <의왈(議曰)> 등으로 분명히 자신의 의견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편찬은 전거(典據)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식을 취한 결과 일연은 자연히 많은 사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의 논거를 굳게 뒷받침해 주려고 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Ⅲ. 결론
「삼국사기」는 인종 23년(1145)에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그런데 일연이 「삼국유사」전편을 통해 강조하는 신이(神異)는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외세의 압제에 대항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자기 전통이라는 강한 확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대의 일화를 그대로 전해 줌으로써, 한국 고대의 고대적 형태를 보다 원형 그대로 전하고 있다. 또 불교의 신앙사라는 점에서 「삼국사기」와 크게 다르다. 그러나 단순한 신앙사가 아니라 「삼국사기」에서 제외된 신라의 각 왕들에 대한 설화를 많이 전하고 있어 「삼국사기」를 보충하는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를 민족지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빼놓고 「삼국유사」만으로는 한국의 역사를 복원할 수 없다. 한국의 고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서를 함께 읽어야 한다. 두 역사서는 우리 민족의 두 축을 이루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두 고전의 이러한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새롭게 해석할 때에야 두 고전이 새로운 문화의 창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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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31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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