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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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상품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성의 상품화
<목 차>
Ⅰ. 성 상품화
1. 성 상품화의 범주
2. 포르노
3. 매매춘
4. 대중매체 속에 비춰진 여성
5. 사이버 대중매체
6. 인터넷 성인방송

Ⅱ. 성의 산업화
1. 매매춘의 산업화
2. 매매춘의 산업화 단계
3. 우리나라 매매춘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르러 내무부는 지역사회 정화차원에서 이 특정 윤략지역을 일방적으로 폐지시킨다. 하지만 전국 104개소의 특수지역 가운데 약 70% 정도는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내무부의 폐지조치가 극희 일방적인 것이었고, 주무부서인 보사부가 '윤락여성 집중선도지역'이란 병칭 아래 이 지역들을 존치시키면서 계속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양 부처간의 이견과 행정적 불일치 현상은 그지역 자체를 예기치 않게 '문제 있는 공간'으로 사시화하도록 유도했고'공공권력이 성의 상품화 풍조를 조장방조한다는 비난을 받게 하기도 했던 것이다
1969년에 이르러 현행법 제정 8년 만에 대통령령으로서 동법 시행령과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한 직업보도시설의 시설기준령' 및 '윤락여성선도위원회규정'이 제정되었고' 다시 7년 뒤인 1976년에 보사부 예규(例規)로 '부녀상담원의 임용 및 배치규칙'이 제정된다. 이들 시행령이나 제반 규정들은 대부분 기왕에 제정공포된 '방지법'의 범주 안네서 이 법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제반조치들을 명문화한 것들이었고, 특히 선도와 보호, 더 나아가 사회복귀를 향한 대강의 대비책까지를 염두에 둔 것들이었다.
결국 1960년대는 한국 매춘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기로 기록된다. 해방과 분단, 건국과 전쟁 등 나라의 사활이 걸린 거창한 문제들에 밀려 매춘문제 그 자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될 수 없었던 1950년대 말까지 국가나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해 속수무책 이었다. 419나 519의 정치적 충격 역시 매춘문제를 사회 전면에 부각시킬 수 있는 직접적 계기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쿠데타 주체는 이른바 '구악'(舊惡)을 일소한다는 명분 아래 이 문제를 새삼스럽게 거론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47년 군정치하 이래 손보지 못했던 관련법규를 정비한다. 당시 제정된 법이 왜 30년이 지나도록 개정되지 않고 있는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12공화국 당시 손쓰지 못했던 문제를 뒤늦게나마 다루고자 노력했다는 사실과, 가급적 문제의 해결방향을 구제와 선도라는 인도주의적 측면에 맞추려 했던 흔적이 있음은 그 당시까지의 비극적 상황을 달래고 위로하는 데 다소나마 힘이 되었을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혹은 면이나 읍보다는 도청소재지가 있는 도시가 당시 꽃다운 나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외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의 폐허위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은 반가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농업 이외에 별다른 생계가 보장되지 않았던, 그러나 농업도 제대로 유지할 기본적 조건조차 다시 마련될 수 없었던 50년대 중반의 한국농촌은 문자 그대로 해체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절박한 시대상황은 농촌처녀들로 하여금 도시를 환상의 '수입원'으로 착각하게 만들었고, 자본금 없이도 돈벌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자신의 육체를 도구로 할때 가능할 뿐이란 사실도 터득하게 해주었다.
해체되어 가는 농촌, 좌절하며 분해되어 가는 농민들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기약 없는 생활을 정리한 이 땅의 숱한 처녀들은 그래서 서울로, 도시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무작정 길 떠난 그녀들을 맞이한 것은 '악의 손'들 뿐이었다. 이들의 손을 피했거나 아니면 안전한 통로로 빠져나온 여인들은 이미 시작된 공업화 추세에 편승하여 수많은 공장으로 흩어져 일을 했고,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였던 자신의 월급을 고향에 송금하며 보람을 느꼈다. 1960년대 사회의 한구석을 지탱하게 해주었던 이러한 이미지는 바로 한국 매춘사의 본격적인 서막이 오르기 전, 순진무구했던 시절의 한 낭만적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예상가능한 수입'과 '의도된 타락'의 공생관계, 그리고 그 암울한 '의식의 계약' 속에서 숱한 여인들은 황폐한 시간들이 가해 오는 혹독한 고문을 이겨내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그돈이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가 긴요한 비용으로 지불될 때, 그것은 비로소 '갸륵한 자본'의 가치를 한껏 발휘할 수 있었다.
농민분해와 도시화, 그리고 산업화가 유인해 들어갔던 매춘문화 형성의 사회적 준거들은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논리적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표적인 경로는 바로 이제까지 더듬어 본 한 모델 속의 이야기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도 도시로 가면, 그리고 나도 서울에 올라가 공장에서 일만 하면 언니처럼 될 수 있다는 기대심리는 점차 환상적으로 포장되어 나갔고, 이 같은 허상들이 집단화 될 때, 결국 매춘자원의 지속적 동원과 그 사회적 순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Ⅲ. 결론
결론으로 우리들의 성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조속히 상업주의의 이익에 조작되지 않는 성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대중매체의 성의 상품화 경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광고주나 제작자들이 성을 상품화의 대상으로 쓰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음을 그들이 알 수 있어야 하며 우리들도 단순한 호기심과 자극에 휩쓸려 그러한 것들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에 대해 비판할 줄 알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매매춘이 몇사람의 힘으로, 대책 없는 금지법으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매매춘 행위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이며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당장 없어졌으면 좋겠으나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며 점진적으로 사라질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매춘여성들의 재활을 도와야하며 더 이상 그러한 여성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성의 상품화에 대한 근절이 필요하다. 얼마 안 되는 외화획득을 위한 매춘행위는 더 이상 묵인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오히려 국가적인 망신일 뿐 아니라 국민적 영향도 적지 않게 끼친다.
<참고문헌>
박종성, 2005, 한국의 매춘, 쾌락의 실재와 구원의 부재, 인간사랑
케슬린 배리, 2007,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삼인출판사
윤가현, 2004, 성심리학, 성원사
http://chunma.yu.ac.kr/~m0012036/2-2.html 성상품화에 대한 견해와 원인
동아일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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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9.01.03
  • 저작시기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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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1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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