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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루마니아문화][루마니아의 문화][차우세스코 무덤][경제]루마니아의 역사, 루마니아의 자연환경, 루마니아의 경제성장, 루마니아의 구비문학, 루마니아의 원자력산업,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 무덤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루마니아의 역사

Ⅱ. 루마니아의 자연 환경

Ⅲ. 루마니아의 경제 성장
1. 콘스탄티네스쿠 정부 시절의 민영화 실패
2. 일리에스쿠 정부의 교훈
3. 루마니아, 발전 가능성 많으나 해결할 문제도 남아

Ⅳ. 루마니아의 구비 문학
1. 루마니아 구비문학의 분류체계
2. 구비작품의 채록과 19세기 시대적 배경

Ⅴ. 루마니아의 원자력 산업
1. 루마니아 전력 산업에서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의 위치
2. 전력 생산
3. 원전 연료
4. 발전 단가
5. 원자력과 환경 보호
6. 루마니아의 전력 시장과 원자력 발전
7. 원자력산업 발전의 사회적 여건

Ⅵ.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 무덤

참고문헌

본문내용

증하에 차입한 건설비의 상환을 위한 것이다.
7. 원자력산업 발전의 사회적 여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은 지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주택·학교·병원·도로·다리·상수도 및 열 공급망 등 체르나보다 지역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이 건설되었다. 원전의 건설에 참여하는 SN 「Nuclearelectrica」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임금 수준이 좋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품질 보증 체계, 원자력만의 독특한 안전 문화, IAEA·WANO 등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와 원전과 긴밀한 연계는 새로운 안전 문화를 형성하여 점차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됨으로써 원전 건설에 참여한 건설·제조 및 서비스 분야 회사들에게서 새로운 자세가 느껴지고 있다.
Ⅵ.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 무덤
오늘날 루마니아 대중들에게 있어서 차우세스코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사회주의권 붕괴의 서막을 장식하면서 민주변혁의 새로운 진로에 타종을 울린 루마니아대중의 혁명적 열정은 과연 일리에스쿠정권이 들어선 이후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과연 그들은 그들이 무너뜨린 구공산체제를 오늘의 이 시점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변화된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가? 하는 몇 가지 궁금증은 필자의 발걸음을 오지(奧地)인 루마니아로 향하게 한 요인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김일성사후 북한 체제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당면 과제를 비교분석하는 것은 향후 예상가능 한 북한체제의 정치변동에 대한 대응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리에스쿠 신정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나누어지겠지만, 상당기간의 시간이 지난이후에 루마니아인들이 내린 일반적 평가는 \"차우세스코의 비극적 죽음(사형)조차 일리에스쿠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자기변신을 위한 희생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루마니아의 개혁은 현재의 집권층으로는 불가능하며, 다수의 집권세력은 차우세스코정권하에서 적극적인 체제협조자로 일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차우세스코를 군사재판에서 사형시키고 현재의 대통령이 된 일리에스쿠도 과거 차우세스코 정권하에서는 이념담당 책임자로서 충직한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차우세스코 집권 후반기에는 개혁적 입장을 표방해서 구공산당으로부터 상당한 견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어떻든 차우세스코에 대한 평가는 지배적인 다수견해와 소수의 견해로 나뉘어졌다. 다수의 견해는 생각하기 조차 싫은 전체주의적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루마니아의 비극적 현실의 원흉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하는 부류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차우세스코의 죽음이후 루마니아가 처한 열악한 경제현실을 보면서 \"그래도 차우세스코시절이 나았다\"는 복고적인 세력도 서서히 등장하고 있었다. 필자가 차우세스코의 묘지를 방문했을 당시도 연금생활자로 추정되는 노부부와 중년층이 방문하여 그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헌화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음을 암시하는 듯 차우세스코와 그녀의 부인 엘레나의 묘에는 향이 계속 타고 있었다.
그러나 깔끔하고 화려하게 단장된 시민공원의 한 모퉁이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한 독재자의 묘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면서 절대권을 행사했던 독재자의 말로가 부러진 십자가에 앙상한 잡초가 무성한 채, 그것도 부인의 묘와 떨어져서 길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황량한 것이었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않은 과거의 인물이여!\" 라는 깨어진 묘비명이 말해 주는 것처럼 루마니아 대중들의 가슴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의 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64년에 집권한 차우세스코는 70년대 초까지만해도 정치를 잘했다. 탈소등거리노선을 전개하면서 민족주의정책을 추진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북한을 방문하면서부터는 급속히 장기집권을 기도하면서 개인숭배를 강화해나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그가 4차례의 방북기간을 거치면서 심화되었다. 아마도 차우세스코가 김일성으로부터 나쁜것만 배워온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과 루마니아의 관계가 돈독한 것처럼 이해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정권담당자들끼리 이해관계가 일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히려 루마니아대중들은 북한의 개인숭배와 친인척 중심의 지배구조를 북한으로부터 모방해온다는 비판적 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과거에도 별로 북한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분히 차우세스쿠의 죽음 이후 사후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그가 추가적으로 든 예는 북한특유의 대규모 군중집회와 성분 분리작업을 통한 반정부 세력의 척결사업 그리고 대규모의 개인숭배 건축물 등이 바로 차우세스코가 김일성으로부터 배운 기술이라는 것이다. 실재 어려운 경제적 조건하에서도 7000여개의 방과 45km에 달하는 비밀터널, 그리고 10만 5천명의 노동자를 강제동원해서 건립했다고 하는 초호화판 인민궁전의 실상은 차우세스코 정권하에서 얼마만큼 개인숭배가 심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한 징표였다. 또한 친인척 지배구조 역시 차우세스코는 자신의 부인인 엘레나를 정치국원 겸 제 1 부수상으로서 제 2의 실력자로 양성했음은 물론 동생과 차남 등 약 24명의 형제와 친척들이 당과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이점 역시 북한과 유사한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과거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루마니아 집권구국전선의 지도자였던 실비우 브루칸 박사는 \"북한은 체제붕괴가 연기된 세계 지도상의 유일한 지역\"이라며 북한 측에 민주화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영국의 전기작가인 존 스위니 역시 그의 저서 [차우세스코의 생애와 죄악의 시기]에서 차우세스코가 71년 북한을 방문한 이후 급속히 북한식 개인숭배와 친인척 지배구조를 양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감동규, 우리는 지금 동유럽으로 간다, 민서출판사
김달중·정갑영·성백남(1992), 동구의 정치경제, 법문사
맛시모 몬타나리, 주경철 역(2001), 유럽의 음식문화, 새물결 출판사
유장희(1996), 루마니아 경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정보센터
이재혁, 배낭속의 유럽문화, 넥서스
이정희(1987), 동유럽사, 대한 교과서 주식회사
이문수(1999), 실용 루마니아어,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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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0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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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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