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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의 세계유산
세계(문화․자연)유산
1 석굴암‧불국사
2 해인사 장경판전
3 종묘
4 창덕궁
5 수원 화성
6 경주역사유적지구
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8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세계기록유산
9 훈민정음
10 조선왕조실록
11 직지심체요절
12 승정원일기
13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14 의궤
세계무형유산
15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16 판소리
17 강릉단오제
세계(문화․자연)유산
1 석굴암‧불국사
2 해인사 장경판전
3 종묘
4 창덕궁
5 수원 화성
6 경주역사유적지구
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8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세계기록유산
9 훈민정음
10 조선왕조실록
11 직지심체요절
12 승정원일기
13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14 의궤
세계무형유산
15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16 판소리
17 강릉단오제
본문내용
넓은 지역에 걸쳐 전승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역적 특성과 전승에 따른 계보를 갖게 되었다. 크게 전라도 동북지역의 소리를 ‘동편제’, 전라도 서남지역의 소리를 ‘서편제’로 구별한다. 동편제는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어 굵고 웅장한 느낌이며, 서편제는 발성을 가볍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므로 좀 더 기교적이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제의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우리 전통 축제의 대명사
강릉단오제
江陵端午祭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을 길한 날로 여겼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설), 음력 3월 3일(삼짇날), 음력 7월 7일(칠석), 음력 9월 9일(중구절)처럼 홀수가 겹친 날을 명절로 삼아,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다. 특히 단오는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라 하여 설, 추석과 함께 큰 명절로 여겼다. 단오에는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고 부채를 주고받으며, 그네타기, 씨름놀이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즐겼다. 부채를 주고받는 것은 곧 다가올 여름을 대비하라는 뜻이다.
한편, 단오는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밭에 곡식을 심고, 논에 모내기를 끝내고 숨 가빴던 봄 농사를 어느 정도 마친 시기가 음력 5월 5일. 어느 정도 한 해 농사 준비를 해놓고, 풍년이 되기를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는 한편으로 놀이도 즐기며 한숨 돌렸던 것이다. 이를 단오제라 한다.
단오제는 그야말로 축祝(놀이)과 제祭(제의)가 어우러지는 전통 행사로 전국 어디에서나 행해졌는데,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는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강원도 강릉 지역의 단오제는 역사가 깊고, 시대상을 반영하느라 도시 축제의 색채가 좀더 덧붙여졌지만, 오늘날까지 단오제의 명맥을 오롯이 전승하고 있다.
민속 신앙 제의를 관이 주도하다, 대관령 산신맞이
강릉단오제가 비롯된 역사는 부족국가인 ‘동예東濊’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이 바로 동예의 옛땅이다. 동예에는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남녀가 모여 술을 마시고 함께 춤추는 ‘무천舞天’이라는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내용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高麗史》이다. 여기에 ‘고려 초기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로 이끌어준 대관령 신령에게 왕순식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문인 허균(1569~1618)이 쓴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도 ‘1603년 단오를 맞이하여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였다’는 강릉단오제 관련 내용이 있다. 당시 행사가 관이 주도하고 백성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식이었음도 드러나 있다.
강릉단오제는 크게 두 축, 곧 ‘제사’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대관령 세 신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로 모시는 세 신은 대관령산신인 김유신金庾信,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梵日國師, 대관령국사성황신의 부인인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이다. 김유신은 어린 시절 강릉에서 명검을 만들어 수학하였는데, 그 검으로 삼국을 통일하고, 죽은 뒤 대관령산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또한 대관령국사성황신은 신라 말 강릉 지역에 불법을 전파하고 굴산사와 신복사를 창건한 범일이라는 큰 스님으로, 사후 대관령의 성황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은 강릉에 사는 정씨 집안의 딸로, 대관령국사성황신과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대관령국사성황신과 정씨 처녀가 결혼한 날이 음력 4월 15일이다.
현재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에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는 ‘신주 빚기’ 행사로 시작하여, 음력 4월 15일부터 산신을 맞이하는 제의 행사를 치른 뒤, 음력 5월 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단오 축제를 벌이고, 음력 5월 7일 산신을 대관령으로 보내는 제사(소제)로 끝맺는다.
제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음력 4월 15일 대관령 정상에 올라가 대관령 산신당과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제사(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국사성황제) 지낸 뒤, 대관령국사성황의 신목神木을 모시고 대관령 골짜기를 내려와(국사성황 행차), 구산 서낭당와 학산 서낭당에서 제사와 굿 한 마당씩을 펼친다. 그러고 나서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사에 대관령국사성황의 신목과 신위를 함께 모신다(국사여성황사 봉안제). 행사 전날인 음력 5월 3일 저녁에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제迎神祭를 국사여성황사에서 지내고(영신제), 신위와 신목을 앞세우고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으로 옮겨 모신다(영신 행차). 이들 제의 절차는 전통 방식 그대로 진행된다. 시민들이 행차 일행을 맞이하면 강릉 거리는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들뜨고, 각종 놀이 및 행사가 이어진다.
조선시대 허균의 기록처럼 강릉단오제는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라는 특징이 있다. 강릉 지방에서는 동해 바다에서 난 수산물과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 반드시 대관령을 안전하게 넘어야 했다. 이에 백성의 안녕을 걱정해야 하는 관리가 단오제에 적극 참가하였던 것이다. 강릉단오제 제의의 본바탕이 민간 신앙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교 의례 절차를 충실히 따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이다.
얼쑤, 난장이다! 한바탕 놀아보세
단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음력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는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단오 축제장에서는 아침마다 스무 거리가 넘는 무당굿이 펼쳐지고, 농악놀이, 탈놀이인 관노가면극을 비롯한 각종 공연과 그네타기, 씨름하기, 줄다리기 같은 여러 민속놀이가 한바탕 벌어진다.
스무 거리가 넘는 강릉단오제 단오굿은 우리나라 여러 굿 가운데 그 규모가 장대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말없이 춤과 동작으로만 보여주는 관노가면극도 강릉단오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이다. 관노가면극은 관노(관청노비)들이 하던 가면극으로, 시시딱딱이 둘, 장자마리 둘의 방해 속에서 양반과 소매각시가 서로 갈등하며 사랑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단오 축제 기간 동안에는 각종 토산물과 수공업 제품의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는 장터가 서고 다양한 놀이판이 함께 벌어져서 왁자한 축제 분위기가 한층 생동감 넘친다. 그야말로 난장이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제의와 놀이가 어우러지는 우리 전통 축제의 대명사
강릉단오제
江陵端午祭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을 길한 날로 여겼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설), 음력 3월 3일(삼짇날), 음력 7월 7일(칠석), 음력 9월 9일(중구절)처럼 홀수가 겹친 날을 명절로 삼아,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고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다. 특히 단오는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라 하여 설, 추석과 함께 큰 명절로 여겼다. 단오에는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고 부채를 주고받으며, 그네타기, 씨름놀이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즐겼다. 부채를 주고받는 것은 곧 다가올 여름을 대비하라는 뜻이다.
한편, 단오는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밭에 곡식을 심고, 논에 모내기를 끝내고 숨 가빴던 봄 농사를 어느 정도 마친 시기가 음력 5월 5일. 어느 정도 한 해 농사 준비를 해놓고, 풍년이 되기를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는 한편으로 놀이도 즐기며 한숨 돌렸던 것이다. 이를 단오제라 한다.
단오제는 그야말로 축祝(놀이)과 제祭(제의)가 어우러지는 전통 행사로 전국 어디에서나 행해졌는데,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는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강원도 강릉 지역의 단오제는 역사가 깊고, 시대상을 반영하느라 도시 축제의 색채가 좀더 덧붙여졌지만, 오늘날까지 단오제의 명맥을 오롯이 전승하고 있다.
민속 신앙 제의를 관이 주도하다, 대관령 산신맞이
강릉단오제가 비롯된 역사는 부족국가인 ‘동예東濊’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이 바로 동예의 옛땅이다. 동예에는 천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남녀가 모여 술을 마시고 함께 춤추는 ‘무천舞天’이라는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내용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사高麗史》이다. 여기에 ‘고려 초기 태조 왕건을 도와 승리로 이끌어준 대관령 신령에게 왕순식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문인 허균(1569~1618)이 쓴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도 ‘1603년 단오를 맞이하여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였다’는 강릉단오제 관련 내용이 있다. 당시 행사가 관이 주도하고 백성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식이었음도 드러나 있다.
강릉단오제는 크게 두 축, 곧 ‘제사’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대관령 세 신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제사로 모시는 세 신은 대관령산신인 김유신金庾信,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梵日國師, 대관령국사성황신의 부인인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이다. 김유신은 어린 시절 강릉에서 명검을 만들어 수학하였는데, 그 검으로 삼국을 통일하고, 죽은 뒤 대관령산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또한 대관령국사성황신은 신라 말 강릉 지역에 불법을 전파하고 굴산사와 신복사를 창건한 범일이라는 큰 스님으로, 사후 대관령의 성황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은 강릉에 사는 정씨 집안의 딸로, 대관령국사성황신과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대관령국사성황신과 정씨 처녀가 결혼한 날이 음력 4월 15일이다.
현재 단오제는 음력 4월 5일에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는 ‘신주 빚기’ 행사로 시작하여, 음력 4월 15일부터 산신을 맞이하는 제의 행사를 치른 뒤, 음력 5월 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단오 축제를 벌이고, 음력 5월 7일 산신을 대관령으로 보내는 제사(소제)로 끝맺는다.
제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음력 4월 15일 대관령 정상에 올라가 대관령 산신당과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제사(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국사성황제) 지낸 뒤, 대관령국사성황의 신목神木을 모시고 대관령 골짜기를 내려와(국사성황 행차), 구산 서낭당와 학산 서낭당에서 제사와 굿 한 마당씩을 펼친다. 그러고 나서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사에 대관령국사성황의 신목과 신위를 함께 모신다(국사여성황사 봉안제). 행사 전날인 음력 5월 3일 저녁에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제迎神祭를 국사여성황사에서 지내고(영신제), 신위와 신목을 앞세우고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으로 옮겨 모신다(영신 행차). 이들 제의 절차는 전통 방식 그대로 진행된다. 시민들이 행차 일행을 맞이하면 강릉 거리는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들뜨고, 각종 놀이 및 행사가 이어진다.
조선시대 허균의 기록처럼 강릉단오제는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라는 특징이 있다. 강릉 지방에서는 동해 바다에서 난 수산물과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 반드시 대관령을 안전하게 넘어야 했다. 이에 백성의 안녕을 걱정해야 하는 관리가 단오제에 적극 참가하였던 것이다. 강릉단오제 제의의 본바탕이 민간 신앙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교 의례 절차를 충실히 따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이다.
얼쑤, 난장이다! 한바탕 놀아보세
단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음력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는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단오 축제장에서는 아침마다 스무 거리가 넘는 무당굿이 펼쳐지고, 농악놀이, 탈놀이인 관노가면극을 비롯한 각종 공연과 그네타기, 씨름하기, 줄다리기 같은 여러 민속놀이가 한바탕 벌어진다.
스무 거리가 넘는 강릉단오제 단오굿은 우리나라 여러 굿 가운데 그 규모가 장대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말없이 춤과 동작으로만 보여주는 관노가면극도 강릉단오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이다. 관노가면극은 관노(관청노비)들이 하던 가면극으로, 시시딱딱이 둘, 장자마리 둘의 방해 속에서 양반과 소매각시가 서로 갈등하며 사랑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단오 축제 기간 동안에는 각종 토산물과 수공업 제품의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는 장터가 서고 다양한 놀이판이 함께 벌어져서 왁자한 축제 분위기가 한층 생동감 넘친다. 그야말로 난장이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