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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조선시대 왕권][조선시대 왕조][조선시대 왕조실록][왕의 일상][왕복][왕실 호칭]조선시대의 왕권, 조선시대의 왕조, 조선시대의 왕조실록, 조선시대의 왕의 일상, 조선시대 왕복, 조선시대의 왕실 호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조선시대의 왕권

Ⅱ. 조선시대의 왕조

Ⅲ. 조선시대의 왕조실록
1. 실록의 편찬경위와 내용
1) 태조실록
2) 정종실록
3) 태종실록
4) 세종실록
5) 문종실록
6) 단종실록
7) 세조실록
8) 예종실록
9) 성종실록
10) 연산군일기
11) 중종실록
12) 인종실록
13) 명종실록
14) 선조실록
15) 선조수정실록
16) 광해군일기
17) 인조실록
18) 효종실록
19) 현종실록
20) 현종개수실록
21) 숙종실록
22) 경종실록
23) 경종수정실록
24) 영조실록
25) 정조실록
26) 순조실록
27) 헌종실록
28) 철종실록
2. 내용상의 특징과 사료적 가치

Ⅳ. 조선시대의 왕의 일상

Ⅴ. 조선시대의 왕복
1. 면복(冕服)
1) 면류관(冕旒冠)
2) 곤복(袞服)
2. 조복(朝服)
3. 상복(常服)
4. 편복(便服)

Ⅵ. 조선시대의 왕실 호칭

참고문헌

본문내용

, 규(圭)로 되어 있다.
2. 조복(朝服)
왕의 조복은 원유관, 강사포였는데, 국말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원유관은 중국 천자가 착용하던 통천관으로 바뀌었다.
조복은 수배신조현지복(受陪臣朝見之服)이라 하여 삭망(朔望), 진표(進表), 조현(朝見) 등에 착용하였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서례 관복도설에서 도복의 제도를 보면 원유관, 포, 상, 중단, 폐슬, 패옥, 수, 말, 석으로 되어 있다 한다.
3. 상복(常服)
왕상복은 익선관에 곤룡포이다. 곤룡포는 용포 도는 망포라 하였는데, 이것은 국왕의 시무복이며 익선관은 복두에서 유래한 것이다.
4. 편복(便服)
왕의 편복은 사대부의 편복과 차이가 없다. 국속의 저고리, 바지 및 포로서상복의 및받침 옷인 답호, 철릭 등을 착용하였으며 국말에는 주의를 입었다.
Ⅵ. 조선시대의 왕실 호칭
호칭이란 직접 대놓고 부르는 대칭도 되고 3인칭으로 일컫는 대명사도 된다.
궁중어의 경우 호칭은 보통 2인칭으로는 존칭과 대치된다. 즉 왕에 대하여 상감마마니대전마마니 주상전하니 하지 않고 보통은 그냥마마, 공적으로는 전하라 부른다는 뜻이다. TV사극에서 새파란 궁녀가 대놓고 대왕대비마마, 중전마마 등 존칭 위에 호칭을 얹어 부르는 것은 옛 궁중법도로 치면 당돌하고 무엄하기 그지 없다.
대궐 안의 생활체제는 각 왕족마다 독립세대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그 전각의 주인은 당연히 마마이기 때문이다. 절대군주에 대한 외경심은 존칭마저도 거부할 때가 있다. 예컨대 왕이 출입할 때 시위를 맡은 내관이 그 앞에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시위―듭시오!하고 외친다. TV사극에서와 같이 낭낭한 음성으로 상감마마, 듭시오!하고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연극일 따름이다.
마마란 중국어의 마마의 차용이지만 한국 궁중어의 있어서 최고 존칭호이다. 그런데 이 마마에 님자가 하나 덧붙여짐으로 오히려 격하되어 상궁의 존칭이 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논리 이전의 관습이니 어찌하는 수 없다. 한편 이 마마님은 상궁의 존칭 외에 민간에서는 대가집 소실들의 칭호에도 쓰인다. 이 의미를 추궁해 보건대 일맥상통하는 마디가 있다. 왜냐하면 궁녀들이란 어차피 넓은 의미의 내명부즉 왕의 부실감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고등관 대우의 상궁들에게만 마마님이 바쳐진다는 것은 체통상의 배려인 것 같다. 왜냐하면 왕의 사랑을 얻는 것을 승은이라 하는 바, 승은하는 궁녀는 입궁 30년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상궁이 아니고 앳되고 야릿야릿한 젊은 궁녀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왕족의 3인칭의 호칭은 아래와 같다.
「왕 : 상감마마, 대전마마
왕비 : 중전마마, 곤전마마, 내전(왕이 자신의 비를 3인칭으로 일컬을 때)
대비(왕의 모친) : 자전, 웃전(그 위의 분이 안 계실 때), 왕모라도 그 신분이 세자빈(정조 모친 혜빈 홍씨의 경우)일 때나 또는 후궁으로서 빈일 때(순조모친 영빈박씨의 경우)는 자궁이라 함.」
왕대비 및 대왕대비 두 분이 다 생존 중일 때는 대왕대비전을 웃전, 왕대비전(그 아래 대비가 계실 때)은 대개 그 거처하는 집의 명칭을 호칭으로 하고 그 아래 마마를 붙인다. 예컨대 자경전마마, 수정전 마마와 같다.
이렇듯이 호칭의 상징성이란 그 거처하는 집의 이름으로 사람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한편 호칭만이 아니라 존칭에도 해당한다. 폐하 전하 저하등 왕족의 존칭과 신민들의 언어에서 많이 쓰는 합하 좌하 안하 족하 등은 위에 아무 호칭없이 사람 자체를 지칭해서 쓰이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의 원의를 구명해 볼 필요가 있다. 폐하의 폐는 왕좌[탑, 즉 왕이 앉는 걸상)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러므로 폐하란 그 계단 아래께 즉 감히 그 주체 앞까지는 미칠 수 없고 그 계단 아래에서 뫼시고 있는 하인(내시)이라는 뜻이다. 이는 전하, 저하, 좌하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좌는 보료나 방석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소문이나 편지 같은 글이면 몰라도 이는 그 아래, 그 주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음을 볼 때, 이 역시 예절성의 하나로 상징성의 대표라 할 것이다. 합하 이하 역시 궁 밖의 용어로 존칭이라 하더라도 풍속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원래 상풍하속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 다 같은 경대법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족하는 가장 아래급에 속하는 바 발 아래 쯤또는 거기 서 있는 하인에게 라는 뜻이다. 그는 방석조차 못쓰는 신분(경제적으로)의 2인칭임을 나타낸다. 호칭의 상징성의 또 한가지 경향은 왕을 가리키는위(우히)라는 대명사이다. 위는 한자로 상으로 표기되어 『인현왕후전』에도 상이 가라사대 등 많이 쓰이고 있지만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위가 아니라 자상이라는 이상한 호칭이다. 원래 자상이란 위로부터 위에서의 뜻인 바, 18세기 영·정조 때만 하더라도 아예왕의 별칭으로 쓰고 있다.
「자상으로 겨오셔 세손을 다리시고…
자상으로 자애하셔
자상으로 양반스런 부녀라 칭찬하오셔
자상으로 가까이 부르오셔…
일물은 자상으로 생각하신 일이요」
위의 다섯 개의 인용 중 첫번째만 께오셔가 붙고 나머지는 자상으로 만이지만 자상으로 겨오셔와 같은 뜻이다. 즉 자상께서는 곧 위에서의 뜻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경우 자상의 자의 뜻은 으로(으로부터, 께서)와 중복이 되는 셈인데, 이 역시 관습화된 궁중어이다. 이러한 어법은 궁중어의 특수성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어렵고 두려운 절대적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의 간접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자상과 대가 되는 것은 자하이다.
「자하로 데려가기 황공하오나…
자소로 자소를 입삼지 못하여…」
앞의 두 열은 자의 뜻이 살아있다. 자하는 아래사람으로서, 아래사람의 의견으로서, 자소는 어려서부터의 뜻으로 풀이된다.
참고문헌
김돈,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조선전기, 솔, 2003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01(개국), 휴머니스트, 2005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오인환,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 열린책들
이성무, 조선왕조사, 동방미디어, 1999
이덕일, 사회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998
한국사 22-조선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탐구당문화사, 1995

키워드

조선시대,   조선,   조선조,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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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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