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서관사][영국의 도서관사][중국의 도서관사][한국의 도서관사][도서관사][미국][영국][중국][한국][도서관사][도서관]미국의 도서관사와 영국의 도서관사 및 중국의 도서관사 그리고 한국의 도서관사 심층 분석(도서관사,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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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서관사][영국의 도서관사][중국의 도서관사][한국의 도서관사][도서관사][미국][영국][중국][한국][도서관사][도서관]미국의 도서관사와 영국의 도서관사 및 중국의 도서관사 그리고 한국의 도서관사 심층 분석(도서관사, 도서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미국의 도서관사
1. 미국의 개인도서관사
2. 대학도서관사
3. 공공도서관사
4. 특수도서관사
5. 정부도서관사

Ⅱ. 영국의 도서관사

Ⅲ. 중국의 도서관사
1. 제 1기 : 장서 형성 및 수집기
2. 제 2기 : 청말부터 1949년까지 근대도서관 건립기
3. 제 3기 : 1949년-1965년 공산혁명에 의한 성장기
4. 제 4기 : 1965년-1976년 문화혁명 수난기
5. 1977년 이후 도서관 발전기

Ⅳ. 한국의 도서관사
1. 조선
1) 집현전
2) 사고
3) 홍문관
4) 규장각
5) 성균관
2. 현재
1) 도서관의 명칭
2) 최초 국립도서관 설립
3) 사립공공도서관
4) 국학회

참고문헌

본문내용

실을 하였으며, 도서관사상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규장각에서는 많은 문헌을 편찬했으며, 도서관을 외각으로부터 편입시켜 경서와 사적을 인쇄 반포함으로써 이조 후기의 문고를 일으킨 것이다.
규장각은 민족의 애난과 그 역사를 같이 하여 온 규장각도서는 그 내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지난날의 우리 민족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또한 대변해 줄 수 있는 자료인 것이다.
규장각서의 총수는 134,930책이며 그 중 한국본이 69,362책, 중국본이 65,568책이다. 이 고문헌은 한국의 문화는 물론이요 동양의 문화 역사의 연구에 귀중한 자과가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귀중도서로서 지정된 것은 16,000책이다.
5) 성균관
대학도서관의 구실을 한 것은 성종 6연에 설립된 성균관의 존경각이다. 성균관은 삼국시대의 태학, 고려시대의 국학·국자감 등을 계승한 이조시대의 국립대학이라고 볼 수 있다. 존경각에는 각종의 문헌을 수집하여 보존하고 교육의 자과로써 이바지 하였다. 존경각에는 사서오경 각 100결을 기본장서로 하고, 전교서와 전국에 있는 서판을 인행하고 수집해서 경·사·제자백가 등의 많은 책을 합하여 수만권에 달했다고 한다.
성균관 초창기에 태종은 그 숭유정책상 이에 중점을 두고 친히 대학에 나갔고 세자에 명하여 입학케 하였다. 내부 시설은 문고와 명륜당이 제일, 제이로 주요한 왕좌적 건물이요, 그밖에 여러 가지 부속 건물이 배치되었다. 지금에 있어서의 대학도서관과 같이 그 규모가 컸던 것도 아니고 또 그에 제도가 마련되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장서고로서 교수와 관부, 그리고 학생이 필요로 하는 서적을 모아 두었던 것이다.
2. 현재
대한제국시대에 있어서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알아보자. 이 시기는 서구화 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기이며, 따라서 모드제도가 현대적으로 바뀌어져가는 기간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어서 서구화 문화운동이 일어난 것은 갑오경장을 그 기점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갑오경장은 개화에의 첫발이요 동시에 신문화 운동이 시작되는 전환점이라고 하겠다.
1) 도서관의 명칭
19세기 중엽부터 밀려든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아 우리 생활의 형성과 내용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구적 도서관이 창설되던 초기에 있어서는 도서관의 규모도 작았거니와 일정한 명칭이 없이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적당한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도적관 도적원 집서원 장서관 도적고 서고 문고 서관 따위이다. 이와 같은 명칭은 Library에서 온 말일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 도서관이란 명칭이 정식으로 사용된 것은 광무 10연이다. 사실상 동양에 있어서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설치된 것은 그 역사가 오래지 않다. 따라서 도서관이란 명칭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새로 수입된 용어이다.
2) 최초 국립도서관 설립
대한제국시대의 국립도서관은 처음부터 국립으로서 설치된 것이 아니고 몇몇 유지에 의하여 발기되었던 것이다. 1906년 광무10년 2월초 한국도서관의 설립을 발기하고 한국도서관 창설을 위한 평의부회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대한도서관이 일종의 국립도서관의 성격을 띠고 종정부의 청사를 사용하게 되자 이것을 궁내부에 예속시키는 동시에 더욱 확장할 계획아래 집규장각도서와 궁중에 있던 모든 장서를 모아 제국도서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3) 사립공공도서관
서구지방에 있어서 최초로 공개된 근대적 사립도서관은 종로의 대동서관이다. 서북지방에 있어서 신문화 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려고 설치한 이 도서관은 도서의 열람대출 뿐 아니라 신학문의 보급을 위한 서적의 간행도 하였다. 국민 각자가 스스로 규명하는데 노력하여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애국애족의 뜻에서 생겨난 결실이라고 보겠다. 따라서 도서관들은 모두가 무과로 공개되었던 것이다.
4) 국학회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한반도에 일본인의 세력이 몰려들자, 이같은 민족의 위기에 처해, 이를 타개하려는 방책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학회가 조직 되었다. 이들 학회의 취지는 대체로 수양, 교육, 산업의 장려에 있었으나 한결같이 민족의 위기를 구하려는 피끊는 애국애족사상의 발로에 기인된 것이었다.
학회나 단체는 기관신문 또는 잡지를 발행하여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는데 노력하였다. 학회나 서적, 신문 잡지 등은 보안법에 의하여 해산 혹은 발간정지를 당하거나 압수되는 등 민족의 수난과 운명을 함께 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수많은 애국서적이 불 살려 졌다. 그 수는 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모두 40여종에 달했으며, 양으로는 20여만부에 달했었다. 이들 도서는 그 서명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민족의 각성과 일본의 침략적 야망을 폭로하는 한편 정신적 단결로서 그에 대비하려는 충성에서 출판된 책 들이었다.
근세 한국의 개화기에 있어서 도서관운동을 살펴 보건대 그것은 구미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아들일 수 있었던 서울과 평양에서 먼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개화한 시민에 의하여 처음 제창되었으며, 결국에 가서는 정부가 막중한 계획 아래 거대한 국립도서관을 설립하기까지 밀고 갔으나 불행히도 한·일 합방후 일본의 강압적인 도서 몰수로 일하여 국립도서관의 창립은 그만 좌절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서북지방에 설립되었던 대동서관과 같은 사립 공공도서관도 합병후 얼마 아니하여 폐쇄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우리 민족은 1910년부터 1920년까지 3.1운동이 있은 후 총독의 무단정치가 다소 완화되어 문화정치로 바뀌어질 때까지 도서관의 혜택을 전연 받을 수 없었던 문화의 공백속에 살아 온 것이다.
참고문헌
○ 김세익(1992), 도서·인쇄 도서관사, 아세아문화사
○ 배현숙(1996), 정보문화사, 아세아문화사
○ 최성진(1987), 도서관학 통론, 아세아문화사
○ 최정태·양재한·도태현(1998), 문헌문류의 이론과 실제, 부산대학교 출판부
○ 허선(1997), 우리나라 신문에 비친 도서관상, 도서관문화, 38(1), 3-19
○ 헷센, 이춘희 역(1983), 서양도서관사, 한국도서관협회
○ Michael H, Harris, 전명숙·정연경 역, 서양도서관사, 지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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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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