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원≫, ≪장화홍련전≫비교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작가와 작품소개

Ⅲ 1. 등장인물비교
2. 신원 유형 비교
3. 관련 설화 비교
4. 사회 배경 비교

Ⅳ 나오는 말

본문내용

접 청나라에 바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지방은 다른 지방보다 조선 조정의 통치를 받지 않는, 정치적으로 느슨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거의 한 해도 빼놓지 않고 가뭄 ·홍수 ·풍해 ·지진 등 각종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위축된 백성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었다.
게다가 평안도는 일찍부터 서북지역 차별정책이 실시되고 있어 차별받고 억압받는 지역이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와 같은 서술이 있다.
태조가 나라를 창건하고는 ‘서북지방 사람은 높은 벼슬에 임용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 까닭으로 평안함경 두 도에는 삼백년 이래로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다. 혹 과거에 오른 자가 있다 하여도 벼슬이 수령정도였고 가끔 대간(臺諫)과 시사(詩史) 망단자에 오른 자가 있었으나 또한 드물었다……또 나라 습속이 문벌을 중하게 여겨서 서울 사대부는 서북지방 사람과 혼인하거나 벗하지 않았다. 서북 사람도 또한 감히 서울 사대부와 더불어 동등으로 여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서북 양도에는 드디어 사대부가 없게 되었다.
-이중환, ≪擇里志≫, 八道總論 成鏡道
이와 같이 서북지방은 중앙정부의 정치적 차별로 인해 관직 진출이 어려워 사족층이 형성될 수 없었고 설사 사족이 있다 하더라도 지배세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향촌지배 질서도 느슨한 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평안도는 ‘학문도 없고 예의도 모르는 지역’으로 인식되어 정치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차별대우를 받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청나라와의 교류와 상업의 발달로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지만 사회적 정치적인 차별은 여전하여 19세기 초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것도 이러한 정부의 차별정책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성오, ≪우리 역사 이야기≫, 돌베개, 2000.
그러므로 이를 종합하여 봤을 때, 당시의 평안도 철산 지방은 정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로, 통치가 불안정하여 민심이 흉흉했고 혼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사회를 낳았고 그에 따른 흉흉한 민심과 가뭄 등의 자연 재해가 ≪장화홍련전≫에 반영이 되어 소설에서도 귀신이 등장하고 가뭄이 드는 것이다. 이는 ≪두아원≫의 시대 상황과 비교하였을 때, 매우 유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고 있듯이, 문학과 사회는 불가분의 것으로, 문학작품에서는 태평성대를 노래하거나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 쓰여져 자신들의 아픔을 고발하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이발사처럼 익명의 고발자로서의 후련함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그 소리를 메아리를 통해 듣는 이처럼 대리 충족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고전이 고증학적 의미에서도 더욱 가치 있는 것이며, 현재 우리 시대의 문학 또한 그렇게 남을 것이다.
Ⅳ 나오는 말
원대 잡극 ≪두아원≫과 ≪장화홍련전≫은 창작 시기와 장르, 언어가 다르긴 하지만, 등장인물의 유형이나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한 신원, 그리고 주제 등에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고 판단되어 다방면에서 비교를 진행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모두 유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이들을 지켜줘야만 했던 아버지란 존재는 똑같이 무능하고 용렬하며 천륜을 저버리는 인물이었다. 또한 이들이 죽은 뒤 원귀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승에 있는 자가 이 누명을 벗겨주면서 사건이 일단락된다는 데서 큰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 모두 동아시아문화권에 속해있다 보니 배경에서도 사상적으로도 많은 부분 비슷한 모습을 보여서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서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효와 충을 중시하는 모습과 권선징악의 대주제가 그렇다.
하지만 이 두 작품 간에 공통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두 주인공은 같은 운명을 가지고 죽게 되긴 하지만 이 운명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두아는 효와 정절을 끝까지 지키며, 올바른 일이 아닌 것에는 목숨을 걸고 대응하는 강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여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화홍련전≫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장화와 홍련은 쉽게 말해 부모가 죽으라면 죽는 아이들이다.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의지도 없어 보이고, 심지어 죽어서도 조용히 관리 앞에 나아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다.
≪두아원≫과 ≪장화홍련전≫의 비교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의 가치관, 즉 무죄에의 지향, 그리고 권선징악에의 지향 등을 알아볼 수 있었고, 문학과 사회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보편적인 특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국가나 민족, 시대 등에 따라 각기 특성과 개성을 띄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학에 나타난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임은희, <두아원의 비극성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隋樹林, 《全元散曲》上, 中華書局, 1991.
葉桂剛 王貴元, 《中國古代十代悲劇賞析》, 北京廣播學院出版社.
신병주 노대환,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게.
禹東完, ≪竇娥寃의 신화 원형 공간≫, 1995.
구인환 엮음, ≪장화홍련전≫, 신원문화사, 2003.
이헌홍, ≪한국송사소설연구≫, 삼지원, 1997.
박상희, <關漢卿의 <感天動地竇娥寃>雜劇 硏究>,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1.
김재용, ≪계모형 고소설의 시학≫, 집문당, 1996.
≪증보 조선소설사≫, 한길사, 1990.
전성탁, 〈≪장화홍련전≫의 국한문본과 한문본의 내용 및 저작연대에 관한 고찰〉, 1970.
이기대, ≪〈장화홍련전〉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조희웅, ≪조선후기문헌설화연구≫, 형설출판사, 1981.
傳樂成, ≪中國通史≫
耿湘沅, ≪元雜劇所反映之時代精神≫
張云生, ≪關漢卿傳論≫
조성오, ≪우리 역사 이야기≫, 돌베개, 2000.
≪關漢卿戱劇論考≫, 陝西人民出版社, 1986.
≪中國文學大詞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가격3,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9.03.22
  • 저작시기200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476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