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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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0세기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한국사회

I. 마오쩌뚱의 유령

II. 한국 사회 논쟁 속에서 중국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의 자리

III. 궤도이탈이라는 숨겨진 문제

IV. 문화혁명이라는 이단

V. 중국의 궤도재진입

VI. 포스트사회주의적 발전과 민족문제

VII. 민족문제 없는 민족주의

본문내용

향력도 대폭 축소되었다. 따라서 세계적 불평등의 공간적/집단적/개인적 위계가 계속 지속되고 있으며, ‘종속’과 ‘민족모순’이라는 문제설정의 유효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민족’이 더 이상 그것을 돌파하는 ‘약한고리’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경제’는 새로운 차별과 배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민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함의하는 새로운 개념의 틀로 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여기에 필요한 단초들을 우리는 앞서 제기한 문화혁명이 남긴 질문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VII. 민족문제 없는 민족주의
이중의 궤도이탈이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실패 이후 이중의 궤도진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대중을 포섭하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에도 다소 변화가 발생하였다. 중요한 쟁점은 중국에서 민족주의 위상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일본의 민족주의와는 상이한 맥락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의 민족주의가 ‘탈아입구(脫亞入歐)’론으로서 사실상 유럽의 민족국가를 모방해 반중국, 반아시아, 탈아시아의 빠른 속도의 ‘따라잡기’를 수행하자는 이데올로기와 팽창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한 것에 비해, 중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중국의 위상의 전화와 중국과 중국 이외의 관계설정의 문제로 제기되었고, 이는 특히 반제국주의적 성격의 저항적 민족주의의 특징을 지녀왔다. 쑨원에서 마오쩌뚱까지 사회주의와 결합한 중국의 민족주의에서는 타민족의 ‘개명’이 아니라 ‘공존’이 하나의 쟁점으로 등장하였는데, 그럼에도 내적으로는 궤도이탈과 결합한 발전주의가 강하게 유지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의 민족주의는 궤도재진입 과정에서 궤도이탈시 형성된 사회주의와의 동맹관계가 무너짐에 따라 발전주의적 지향만이 남은 불완전한 민족주의로 존재하고 있다. 이 동맹의 결렬은 민족주의 속에 불완전하게 남아있던 보편주의적 요소와 해방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작용을 하고 민족주의를 전형적인 특수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게 된다. 중국에서 이런 민족주의의 특징은 대중적 차원에서 ‘소비주의에 포섭된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앞서 3절에서 언급했듯이 실질적 사회화에 대한 억압과 이를 위계화한 코포라티즘으로 대체한 결과 더 월등한 코포라티즘에 대한 동경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때로 격렬한 반미시위가 있다하더라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나 중국을 마귀화하고 있는 배후 등의 대중적 인기를 얻은 책자의 이면에서 중국 민족주의의 대자적 이미지는 미국과의 라이벌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 의미는 미국에 대한 적대화라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선망(앞서 말했듯이 더 고도의 코포라티즘에 대한 선망)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데, 종합적 차원에서 중국이 따라잡고자하는 대상으로서 미국이 설정되지만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원치 않는 순치된 형태의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중문화의 범람과 미국유학이나 이민열풍과 결합된 이런 미국선망적 중국민족주의는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 대한 오만과 병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191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중국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불안정하게 결합한 민족주의의(그리고 부차적정세적으로 국제주의적) 형태를 띠었고, 민족경제론적 민족주의로 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민족주의는 민족경제론적 민족주의로 보기 어려우며, 더더구나 민중적 민족주의도 아니다. 발전주의와 소비주의에 의해 지탱되는 현재의 민족주의는 민중의 분할/차별화/위계화를 수반하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의 세계적인 최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동아시아라는 특수성도 작용하고 있다. 1968년 이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발전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생산의 재배치의 혜택을 받은 동아시아에서 국가주의에 기반한 발전주의의 환상은 오히려 강하게 온존하고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69-70쪽.
한국, 일본을 이어 중국은 이 환상을 떠받치는 새로운 주도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왕후이백승욱 대담, 근대성의 역설: 중국, 근대성, 전지구화, 진보평론 제 6호, 2000를 참고하라.
환상의 지속은 개별국가를 넘어서 새로운 전망을 형성해 나가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다른 곳에서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 꼭대기에 앉아서 우리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백승욱, 옮긴이의 말, 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현재 중국의 변화는 이중적 규정성(지리적계급적) 하에서 앞서 제기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중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진행되는 계급적 분할과 위계제의 확대를 심화하고 있는 동시에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 하에서 진행되는 세계경제의 공간적 분할 속에서 나타나는 취약한 포섭의 토대의 위기를 내재하고 있다. 취약한 소비주의적 포섭과 더불어 나타나는 코포라티즘적 토대의 약화는 취약한 발전주의적 민족주의에 의해 보완되는 정치적 소외의 강화와 노동력의 상품적 종속의 강화를 동반하고 있다.
중국이 점점 더 신자유주의 길로 들어섬에 따라 외형상 한국과 공유할 문제의식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 길은 그에 대한 대응에서 연대보다는 단절을 심화시키는 특수주의적 방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함께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경험의 공동의 전유하고 그 한계점을 함께 넘어서려는 노력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이 제기하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런 과거 경험의 공동의 전유는 그 다음 단계로 시기적으로 쌍방향으로 좀 더 발전하여 더 많은 경험과 문제의식의 공유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 방향은 과거로 추적해 가서 20세기 초반, 특히 1930년대와 1940년대 중국과 조선의 진보적 대중운동 사이에 국제주의적 연대가 가능했던 역사적 조건들을 복원시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한 방향은 현재로 문제를 끌고 와 포스트 민족주의적 보편주의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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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23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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