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도시 공주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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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도시 공주답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수호신의 성격이 짙은 것이라고 했다. 정말 작고 투명한 게 참 귀여웠다. 왕비의 어금니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성왕의 어머니의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고 했다. 국내 출토 용봉문환두대도 중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 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환두대도도 보았는데 이 환두대도는 삼국시대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으로, 최고의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 중의 하나로서 중요 장신구라 한다. 또 금동 수저와 젓가락도 보았는데 손잡이 부분이 넓게 된 숟가락만 신기하게 쳐다보느라 젓가락을 잘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젓가락을 잘 보면 누군가 밟아서 뚝 부러지는 바람에 땜질을 했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래서 나중에 박물관 홈페이지를 찾아가 사진을 살펴보니 확실히 젓가락이 곧지 못하고 울퉁불퉁하고 툭 튀어나오게 이어놓은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송산리 고분군 모형관에서도 보았지만 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릉 복원 목관은 크고 검은 관이 꼭 강시가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워 보였다. 수업시간에 배운 중국엽전 오수전도 보았다.
다음으로 웅진 문화실에 들어갔다. 웅진 문화실은 웅진을 중심으로 한 백제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의 업적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한이 백제에 정복되고 백제가 성장해 나가는 역사도 글로 잘 정리 되어 있어서 유물을 볼 때 한층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이곳에도 토기나 항아리 같은 많은 유물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얼굴을 새긴 손잡이’였다. 얼굴이 새겨져 있기는 했는데 어떻게 손잡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신기했다. 큰 항아리를 이용하여 죽은 이를 안장한 독널무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둥이가 닭 머리로 되어있던 닭 모양 주전자도 독특했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를 찾아온 외국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 도 그려져 있었는데 백제 사신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외국인과 흑인도 있는 것이 배운 것이긴 했지만 여전히 신기했다.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많은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모두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것들이라 한다. 돌로 만든 불상이 앉아있는 것부터 서있는 것까지 개수도 참 많았는데 간혹 목 부분이 부러져 머리가 없는 불상도 여러 개 있었다. 이유는 찾아봤는데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가져갈 문화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몸은 버려둔 채 머리만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쓴 글을 봤지만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옆으로는 커다란 석조(石槽)가 두 개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공주 대통사지출토 석조’ 인데 발견된 장소 이름을 따서 ‘반죽동 석조’와 ‘중동석조’로 불리기도 한단다. 석조는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물통이라고 했다. 이렇게 큰 돌을 그 옛날에 어떻게 파내었을지 신기했다. 절에서 큰 행사가 끝난 뒤에 그릇을 씻거나 또는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석조는 백제 성왕 5년인 57년에 세워진 대통사지에 있었던 것이라 하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사각형 석조와는 달리 연꽃무늬가 조각된 둥근 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고 몸 중앙에 띠가 새겨져 있는 등 백제문화 특유의 우아한 조형미를 띠고 있다고 했다.
야외전시장에 나오니 비로소 흐렸던 날씨가 개어 있었다. 약한 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였지만 그간 공주에서 지내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던 중요한 문화유적지를 찾아가볼 생각도 안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시간이 부족해서 가지 못한 다른 유적지들도 시험이 끝난 후 가보기로 했다. 또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어리버리하게 관람했던 면도 없지 않아 있어서 다음번에 또 와보기로 했다. 중요성이나 의미를 잘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유물들도 수업을 제대로 듣고 팜플렛도 꼼꼼히 보고 나서 다시 가본다면 또 새로운 경험이 될 것같다. 그리고 대전에 살다가 대학을 공주로 오게 되서 공주에 별로 아는 것이 없었는데 그나마 공주에 대해 아는 것도 전보다 많아져서 옛 백제의 도시인 공주에서 공부하는 것도 뿌듯하게 되었다. 이번 답사로 공주와 백제에 많은 애정이 생겨서 정말로 기쁘다.
기타
● 아쉽게도 찾질 못했던 정지산 유적 -
공산성답사를 마치고 무령왕릉을 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황새바위를 보게 되어서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바로 옆에 ‘정지산 백제유적’ 이라는 팻말을 발견했다. 알지 못했던 유적지인데 왠지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백제유적이라는 말에 지도를 펼쳐 살펴보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무령왕릉을 가기 전에 정지산 유적을 보고 가기로 했다.
팻말대로 쭈욱 갔는데 가도 가도 유적지가 안보였다. 그리고는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 언니와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골목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동네 골목일 뿐 들어가 봐도 유적지가 나올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에 있는 슈퍼의 아주머니께 물어보기도 했지만 잘 모르신다고 하셨다. ‘팻말이 이렇게 되어있으니 어딘가 유적지가 있긴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멀리 보이는 산에 무덤과 묘비들이 보였다. 혹시 저건가 싶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무덤과 묘비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간 송산리 고분군 모형관에서 우리가 정지산 백제유적과는 전혀 관련 없는 무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형관에 나와 있는 사진은 우리가 본 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정지산 유적은 우리가 막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던 숲과 터널을 지나 찻길 쪽으로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정지산 유적은 중심 건물을 연화문 와당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둥이 지나치게 많은 특수한 구조를 하고 있고 주변에서 제기로 보이는 각종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의 웅진 도읍 시기의 제사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지산 유적에는 얼음이 보관되는 시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무령왕이 무령왕릉에 묻히기 전에 머무른 곳이기도 했다니 중요한 곳인 것 같다.
다음번에는 꼭 길을 잘 찾아서 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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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4.14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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