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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피카소][피카소의 연인들][사후의 피카소][피카소의 죽음과 탄생]피카소의 일생, 피카소의 성격과 창조성, 피카소의 연인들, 작품변화를 통해 본 피카소의 심리, 사후의 피카소, 피카소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피카소의 일생

Ⅲ. 피카소의 성격과 창조성

Ⅳ. 피카소의 연인들

Ⅴ. 작품변화를 통해 본 피카소의 심리
1. 청춘시대
2. 실험시대
3. 변화의 시대
4. 50년대 이후시대

Ⅵ. 사후의 피카소

Ⅶ. 피카소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참고문헌

본문내용

전혀 상반된 듯한 화풍의 변화는 그의 심리적 자유로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꿈\"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의 소재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형적인 신화에 대한 강력한 이끌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피카소에게 1930년대의 유럽의 상황은 그의 사회적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그의 회화에 또 하나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기념비적 작품《게르니카》이다. 그의 잠재적인 현실에의 관심이 게르니카 학살로 인해 폭발적으로 노출된 이 작품은 예술의 현실 참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동시에, 상징적 표현을 통한 인간 계도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화적 방법을 통해 상징적 표현을 한 이 작품이 현실감을 사실 이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은 피카소가 청색시대 이후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치면서 꿈의 분석시대에 이르고, 이의 연장선 내지는 종합의 형태로 게르니카가 제시된 때문인 듯하다. 또 우화적 표현은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하고, 강력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진실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피카소는 사물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도 지니고 있었다.
4. 50년대 이후시대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부터 그의 그림에는 또 다시 빛이 생기고 색채는 밝아지며 낙천적인 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때 등장한 작품이 《생의 환희》인 것만 보아도 그런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순간순간의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실재적 삶을 살았으며, 따라서 순간순간을 창조적으로 엮어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개작은 분명 그가 지닌 천재성에 힘입어 뛰어난 재창조를 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1964년을 전후한 무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극심한 에로티시즘을 보인 것에 비추어 그의 유희성 ― 장난끼가 작용한 까닭도 적지 않은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의 유희성이야 말로 91세에 이르러서까지 피카소를 창작에 몰두케 한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일에 희열을 느꼈으며, 만드는 일 자체가 그의 삶의 전부이기도 했던 것이다. 만년에 이르러 그의 명성과 체면에도 불구하고 춘화도를 방불케 하는 작품이 나왔다. 이는 \"자신 이외의 어는 것도 구애 받지 않는\" 철저한 자기중심적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피카소, 그의 예술은 곧 그의 삶의 격정과도 같았으며 따라서 그의 작품은 곧 그의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Ⅵ. 사후의 피카소
피카소가 죽었을 때 남긴 작품은 거의 50,000만 점 정도였다. 페인팅이 1,885점, 조각이 1,228점, 도자기가 2,280점, 동판화가 18,095점, 석판화가 6,112점, 리놀륨 판화가 3,181점, 149개 드로잉 노트, 스케치 4,659점을 남겼다 이는 실로 방대한 양이다. 이런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지금도 풀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여성에게서 얻은 힘이 아닐까 한다. 피카소의 모든 그의 그림에서 강조한 모성애와 여성미의 절대 찬양은 여기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이 점은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과 의견과도 바로 일치한다. \"남성 예술가는 효과적이고 우수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여성의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피카소는 현대사에서 아인슈타인, 다윈,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 평면 회화 해체와 신 미술의 창조와 지각 변동을 준 엄청난 혁명이었다. 음악에서 쇤베르크, 바르톡 문학에서 베케트, 카프카의 업적을 넘어서는 미술에서 업적을 남겼다. 피카소는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모차르트 그 이상이다.
그는 우리 시대 갈등, 불안, 전쟁, 고난, 아픔 같이한 끝없는 삶과 예술 괴로워하면서 절망하면서 갈등, 증오와 한정된 인생의 지평을 무한대로 열어 준 천재 예술가요 여자를 너무 사랑한 열정과 광기의 소유자였고, 피카소는 미의 힘으로 통해서 돈과 전쟁과 사랑까지 지배한 영원한 독재자였던 것이다. 그의 긴 투쟁의 삶은 20세기 바로 그 자체였다.
Ⅶ. 피카소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자 엄청난 상속세가 부과되는데, 예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할 수 있는 프랑스의 상속법에 의하여 유족들이 프랑스 정부에 고인의 작품을 기증한다. < 옛 날 집을 갖고 싶다. >는 피카소(1881-1973)의 소원대로, 1974년 파리시는 살래 저택을 피카소에게 바치기로 결정하고, 역사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 작품의 성격과 전시에 맞는 공간을 요구하는 1976년의 설계 공모전에서 홀랑 시무네의 설계가 당선되어 복원 공사가 진행 되었으며 또한, 디아고 지아꼬메티가 특별 제작한 의자, 탁자, 조명, 장식으로 재 단장을 하여 1985년 일반인에게 피카소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박물관에는 1895년부터 1973년까지 예술가로서 피카소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청색 시대의 작품인 < 자화상 >, < 쎌레스틴느 >, 그의 걸작인 < 아비뇽의 처녀들 >, 초현실주의 작품인 <입맞춤 >, < 그리스도의 수난> 등을 통해 예술적 변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에는 2백여 작품의 유화, 158점의 조각, 88개의 도자기와 1,500점의 판화와 데생, 콜라쥬 등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이나 유품 등도 전시되고 있으며, 피카소의 개인 수집품 중 일부인 마티스, 미로, 브라크, 세잔느, 르누와르 등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전시가 자주 열리고, 각 전시실의 작품을 주기적으로 바꾸어 전시하기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김원일(2004) : 김원일의 피카소, 이룸
김영나(1996) : 서양 현대미술의 기원, 시공사
로즈마리 램버트, 김창규 역(1991) : 20세기의 미술, 예경
마리로드 베르타다크, 폴 뒤 부셰 : 피카소의 사랑과 예술, 책세상
잭 플램(2005) : 세기의 우정과 경쟁-마티스와 피카소, 예경
존버거 저(1984) :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미진사
피카소의 예술세계 : 청천 문화예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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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4.14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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