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대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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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중세 유럽 사회
1. 사회적 배경
2. 변화하는 중세 유럽

Ⅲ. 중세 대학 도서관
1. 중세 대학의 설립
1) 배경
2) 중세 중요 대학의 창설
3) 단과대학제도 - College
2. 중세 대학 도서관의 발달
1) 초기의 대학 도서관
2) 유럽의 대학 도서관

Ⅳ. 중세 대학 도서관의 특색
1. 장서
2. 공간구조
3. 자료수집
4. 도서목록
5. 규칙과 규정

Ⅴ.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본에 의하여 도서를 마련했고 수도원 도서관과는 달리, 초기 대학도서관은 기증형식(왕, 귀족, 주교, 상인, 서적 수집가)을 통하여 크게 성장 했다. 예를 들어 1336년 옥스퍼드의 베일렬과 머튼 칼리지에 그레이브선드 등이 기증했으며,1350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80권을 기증한 베이트먼 1387년 옥스퍼드 뉴 칼리지에250권을 기증한 휘트필드등이 있다. 유럽대륙의 다른 대학 도서관들도 이와 유사한 기증을 받았고 1410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 보름스주교 마티아스가 90권 기부했으며 ,1450년 프라그대학에 신델이 의학 과학에 관한 책 200권을 유증하였다. 많은 대학들이 기부금으로 책을 구입 하였는데
도서관 기금을 위해 몇몇 대학들은 요금을 모은 흔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도서의 장서는 15세기 후반부터 인쇄된 책이 보급되는 16세기까지 소규모의 장서였다.
4. 도서 목록
목록은 초기 대학 도서관의 모습은 동시대의 수도원 도서관과 매우 유사했다. 12~13세기에 손으로 쓴 사본들은 책 상자들에 보존하였다. 15세기에 이르러 분리된 도서관 건물이 세워지게 되는데 보통 많고 긴 창문에 의해 조명이 되는 길고 좁은 방들이다. 이런 설계는 자연광선을 도움을 받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대학 도서관은 수도원 도서관과 거의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점은 단과 대학이나 학부에서 가르치는 과목에 의해서 나누어져 있던 점이다. 초기 대학 도서관 목록은 손으로 베낀 서가 목록이나 색인 목록정도이다. 소르본드 대학의 경우 학부마다 색이 표시되어 있었으며, 책은 어느 것 이나 소속하는 학부의 색으로 도장이 찍혀져 있었다. 아마 다른 대학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14세기 영국에서 종합 목록을 계획한 사람이 영국의 프란체스코 교단의 수도승이라고 추측되는 한 서서가 (영국의 도서 목록이라는 뜻)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목록은 저자명 표제, 장소가 기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한 짧은 서지학적인 기술이 되어 있었다.1400년 이전의 서지학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이다.
5. 규칙과 규정
대학 도서관의 이용을 위한 대부분의 규칙과 규정은 괜찮았지만 어떤 것들은 이상하였다. 즉, 경우에 따라서 학생들은 한 달간 혹은 일 년까지도 도서를 대출할 수 있었고, 또 다른 도서관에서는 오직 교원과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만이 도서를 대출할 수 있었으며, 어떤 도서는 예치금을 내야만 대출할 수 있었다. 어떤 대학 도서관에서는 몇 권의 도서가 매우 귀중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것들을 삼중의 자물쇠로 채웠다. 이 때 열쇠를 가진 3인이 합석해야만 열람이 가능했다. 15세기 옥스퍼드에는, “8년간 철학을 공부한 신학 관계의 목사직에 있는 사람이나 대학원생들만이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었다. 또한 위의 도서관 규정은, “그들이 공부하기 위해서 일반 도서관에 들어오면, 조심해서 도서를 취급하고 도서의 한 페이지도 손상시키거나 찢어 훼손하면 안 된다”라는 서약을 하게 했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는 도서를 편 채로 놓아둔 학생들에게 벌금을 받았으며, 엥걸스(Angers)대학은 1431년에 도서를 대출하여 30일 이상 지나면 연체료를 내게 했다.
대출 규칙은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양 했으나 전반적으로 수도원 도서관에 의해 굳어져 버린 전례를 따랐다. 1년 정도의 대출 가능한 책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열람만 할 수 있는 책도 있었다. 직접적인 가치가 적은 사본들의 책들은 팔아 보다 유용한 책을 사기 위해 팔려졌다. 또한 도서관 책들은 때때로 대학이나 대학장의 부채로 인해 저당 잡히기도 했단다. 도서관 규칙 또한 요즘과 별 차이가 없이 타당하고 합리적이었다. 사서는 초기 대학에서는 전문적인 사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대신에, 책을 보관하는 학생 또는 강사나 조교(일반서적) 전문적인 책은 종교적인 수도회의 연관을 갖는 칼리지들의 책 관리는 승려들이 맡았는데 다른 경우도 소속된 목사가 관리했다. 도서의 손상의 경우 개인이 책임을 지기도 했다. 도서 목록은 1년에 한번 만드는데 대학 관리인 앞에서 만들어졌다.
Ⅴ. 결론
초기의 대학 도서관은 많은 면에서 수도원과 성당 도서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크게 달랐던 점은 이용되는 도서관(working library)이었다는 것이다.
중세 대학의 성립이 자연 발생적이고 산발적이었으므로 정확한 성립 연대를 추정 할 수 없고 도서관의 발달 역시 뚜렷한 연대의 추정이나 발달 과정의 세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웠다. 중세 서양의 도서관은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중세 문화는 고대와 근대를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했다. 수도원, 성당, 대학, 서점이건 간에 고전의 대부분은 전쟁과 무관심으로 파괴되기도 하고 보존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가운데 10%도 못되는 저작이 보존된 것으로 평가되지만, 이런 저작이 없었더라면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서구문명은 학구적인 수도사, 열렬한 도서수집가, 귀중한 과거기록을 부지런히 필사한 사자생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일시 융성했던 중세대학과 그 문고도 그 후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와중에 쇠퇴되고 다시 계속된 정치상의 변혁에 따라 변모되었다. 그러나 중세 대학의 의미는 그 졸업생들이 문예부흥을 선도한 인재로 성장했다는 점과 대학이 발전되었으므로 근대에 돌입하는 전환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흔히 중세를 정신적 획일성과 독단적, 폐쇄적 문화로 인하여 사회적, 문화적 침체상태로 알려져 있으나, 대학도서관의 관점에서 볼 때 중세 시기는 고대문화의 정통성과 계속성 유지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문화권을 성공적으로 형성함과 동시에 근대도서관의 터전을 마련한 시기였다.
< 참 고 문 헌 >
배현숙, 정보문화사,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6
전명숙, 정연경 역, 서양도서관사, 서울, 지문사, 1991
이춘희 역, 서양도서관사, 서울, 한국도서관협회, 1981
이명선, 서양중세도서관의 목록에 관한 고찰 , 경북대 도서관학과, 1961
이강무, 세계사[서양편], 서울, 두리미디어, 2004
손영호, 테마로 읽는 세계사 산책, 서울, 학지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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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17
  • 저작시기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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