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국가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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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 인류의 사회 형성과 발전 과정

Ⅱ. 본론
1 . 고조선의 건국시기와 당시 세계의 상황
2 . 여러 문헌에 나타난 조선
3 . 단군 설화의 해석
4 . 우리민족의 혈통과 북방유목민족과의 관계
5 . 고조선인들의 생활과 풍습
6 . 고조선의 붕괴

Ⅲ. 결론 :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아는 것의 중요성

본문내용

계승했을 것이다. 고조선에서는 직물 생산을 위해 베틀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북 회령군 회령읍 오동유적의 8호 집자리와 자강도 강계시 공귀리에서는 베틀의 일부일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고조선이 베틀을 사용했다는 것은 직물 생산이 매우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조선의 주택은 여러 주거지 발굴 결과 지상식 건물도 있었으나 대개 지하 50에서 60 센티미터 정도로 깊지 않은 반지하 움집이었으며 장방형이 주류를 이루었다. 집자리 바닥의 면적은 80 평방미터의 큰 것과 10 평방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것도 있었으나 20 평방미터 정도의 것이 가장 많았다. 고조선의 주택은 지붕을 대개 짚이나 풀 같은 것으로 이었고 그 위에 두텁게 진흙을 바른 것도 있었다. 그리고 고조선인들은 성도 쌓았는데 내몽고 자치구 적봉시의 대전자 성을 예로 들면 판축한 흔적이 보인다. 판축성은 돌처럼 단단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성을 쌓는 기술 역시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고조선의 붕괴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조선이 한(漢)의 정벌로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용은 위만의 손자 우거가 한무제를 알현하러 가는 진번과 진국을 막아서 무제가 타일렀으나 끝내 듣지 않아서 조선을 정벌하여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만조선은 우리의 고조선과는 관련이 없는 중국의 제후국이었으므로 위의 내용이 우리역사라 볼 수 없다. 단재 신채호는 고조선이 멸망한 이유를 단군을 자칭하는 자들의 건국으로 인한 열국시대와, 주변 흉노와 중국의 잦은 침략 등으로 보고 있다.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이 멸망하지 않고 열국들에게 세력을 빼앗기고 만주에서 지금의 평양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조선은 서기 3세기까지 주위 국가들의 보호를 받으며 명목상의 국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예전의 최고 통치자와 그 일족을 보호해 주는 것은 동아시아 고대 봉국제의 통치조직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한(韓), 부여(夫餘), 비류(沸流), 고구려(高句麗), 북옥저(北沃沮), 남옥저(南沃沮), 예(濊), 신라(新羅) 등 여러 국가들이 단군으로부터 이어졌다고 하였다. 이는 고조선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열국시대의 시작과 주변의 흉노, 중국의 잦은 침략으로 세력이 약화된 후 밀려나 지금의 평양에서 명맥만 유지하다가,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해짐에 따라 그들과 융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아는 것의 중요성 어느 민족이든 자신들의 조상의 역사와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찬란했고, 그 세력권이 엄청나게 넓었다고 한다면 그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그런 맥락의 책이다. 이 책은 '우리 민족(동이족)이 세계 최대, 최초 국가를 건설했고,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갖고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이룩한 슈메르인은 동이족이고,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마야문명을 이룩한 마야인들 역시 동이족이다'라는 내용이라고 재야 사학자들은 해석하고 많은 관련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이 것을 바탕으로 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다'는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는 충분한 사료가 있어야 역사로 인정된다. 환단고기란 책은 사학계에서 진실하지 못한 위서로 평가받고 있다. 근거로는 그 책에는 연개소문의 숙부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이 근대에서 혀진 것이란 것이다. 또 문화라는 말 또한 근대에 생겨난 말인데 책에 나왔다는 것을 다른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위서라고 단정하기엔 위의 근거들이 아직 부족하다. 그러므로 책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책에는 가장 발전된 문명을 가졌다거나, 슈메르인과 인디언, 마야인이 동이족이란 내용은 없다. 이 것들은 재야 사학자들의 추론에 불과한 것이다. 예를 들면 수밀이국과 우루국이란 제후국명이 나오는데 이를 슈메르인의 국가로 해석 한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비과학적인 해석이다. 이런 것들이 역사로 인정된다면 역사학이란 학문은 없어질 것이다. 이유는 역사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틀려짐에 따라, 정사(正史)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은 우리 역사에 대해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준다. 그러므로 그 책이 우리 민족 상고사의 사료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바로 해석하고 그것을 입증해줄 고고학적 근거들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한 광고에서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역사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광고는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첫 번째, 근거로 역사적으로 부여는 매우 호전적인 국가로 주변 국가와 자주 전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고구려는 주변 국가를 정벌하였다는 여러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광개토대왕은 주변의 국가를 정복해 엄청난 영토를 얻어 후에 광개토란 시호를 얻었다. 셋째로, 백제는 요서와 산동반도, 양쯔강 유역에 진출했다고 중국의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 광고는 거짓이다. 이 광고와 같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수탈, 당쟁, 한 등의 역사다'라고 각인 되어 있는 것은 일제의 식민정책의 영향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지배되는 것이 당연시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자신들이 유리하게 해석했고, 유용하게 이용했다. 그 결과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조선사와 고대사로 아직까지 그 둘은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심지어 일본은 고조선을 우리가 거짓으로 꾸며낸 국가라 하고,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들이 우리의 뿌리에 관한 역사를 왜곡하려고 애썼던 것을 보면, 상고사와 고대사가 우리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조상이 있어야 후손이 있듯이,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 옛날에 어디서, 어느 경로를 통하여 온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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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19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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