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인공유산>
-인공유산이란?
-인공유산의 역사
-유산의 3분류
(자연유산, 치료적유산, 유발적낙태)
-유산의 목적
-유산의 진단
-인공유산의 방법
(수술에 의한 방법, 약물에 의한 방법)
-유산의 여러 종류
(절박유산, 진행유산, 불완전유산, 계류유산, 완전유산, 습관성유산)
-인공유산의 심각한 현황
[우리나라 낙태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관련 신문기사들]
Ⅰ.[천자칼럼] 태아 성감별
Ⅱ.[젝시설문 남과여] 바캉스 베이비 생겼다면?
-인공유산의 합병증
-인공유산이 차후 임신에 미치는 영향
-인공유산에 대한 법규
(미국, 우리나라)
-인공유산의 문제점
-인공유산에 대한 해결책
-인공유산에 대한 나의 견해
-어느 간호사의 경험담
-인공유산이란?
-인공유산의 역사
-유산의 3분류
(자연유산, 치료적유산, 유발적낙태)
-유산의 목적
-유산의 진단
-인공유산의 방법
(수술에 의한 방법, 약물에 의한 방법)
-유산의 여러 종류
(절박유산, 진행유산, 불완전유산, 계류유산, 완전유산, 습관성유산)
-인공유산의 심각한 현황
[우리나라 낙태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관련 신문기사들]
Ⅰ.[천자칼럼] 태아 성감별
Ⅱ.[젝시설문 남과여] 바캉스 베이비 생겼다면?
-인공유산의 합병증
-인공유산이 차후 임신에 미치는 영향
-인공유산에 대한 법규
(미국, 우리나라)
-인공유산의 문제점
-인공유산에 대한 해결책
-인공유산에 대한 나의 견해
-어느 간호사의 경험담
본문내용
기는 가련하게도 죽어 있었다. 나는 그 아기를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가 죽은 아기와 마찬가지로 솜으로 여기저기 막고 잘 싸서 냉동창고에 넣어 주었다.
너무나 쉽게 아기를 죽이는 부모 간혹 살아서 나오는 아기들을 보면 주로 여자 아기들이다. 여자들의 생명력이 질기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간혹 미숙아들이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다 넣는데 그럴 경우에도 여자아기들이 죽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살아서 나온 아기들 때문에 일을 치르고 나면 가슴은 아프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단지 그런 아기들을 처리하면서 다시 세상에 온다면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라고 마음속으로 빌어준다.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몇 개 있는데 난쟁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기가 죽었다고 말한 후 우리에게 아기를 없애달라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입양기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고 내가 주도적으로 일 처리를 하는 입장이 아닌지라 의사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편이었다. 갓 태어난 난쟁이 아기는 한 모금의 우유도 먹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기이므로 병원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트에 넣어 그냥 두면 그 아기는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다. 입양기관에서도 기형아들은 데려 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아기들을 입양시키기도 사실은 힘든 일이었다. 또 한번은 항문이 없는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해야만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수술비만 해도 3천만 원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 아기의 부모는 그 정도 돈을 들일 수 없다면서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아기에게는 아주 조금씩 우유를 주었다. 많이 먹을수록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 아기는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그 아기는 사흘만에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죽고 말았다.
그 후에도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분만 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낙태를 시켜 달라는 부인들을 수없이 만났다. 8개월이 지나 명백히 딸이라고 판정이 되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이다. 보통 3개월 이전에는 간단히 흡입기로 수술이 되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가지지 않지만 6개월 이상 되는 태아를 유도 분만하는 행위는 명백한 살인 행위임을 부인할 수 가 없다. 나는 눈 코 입이 선명한데다 손발이 버젓이 있는 그 아기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아기를 살인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 작을 뿐인 그 아기들은 갓 태어난 신생아와 다를 바가 별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 선호사상과 인명 경시 풍조로 인해 불과 두서너 달 후면 태어날 아기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방을 들고 병원 찾는 여고생도 고등학생들도 유도 분만을 통해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는 때는 주로 크리스마스와 바캉스 철이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러오는 아이들의 달수를 따져보면 대부분 그때 임신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은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다급해지면 달려와서 울면서 낙태를 시켜 달라고 말한다. 그때는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와 함께 와서 낙태를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간단한 낙태수술은 6만원선이었고 유도분만은 50만원선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이가 일을 벌려 여자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주변에 알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복부를 동여매는 데만 급급했다. 원래 아이가 좀 뚱뚱해 어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다. 더 이상 숨길 처지가 되지 못한 아이가 울면서 어머니에게 일을 털어놓았고 급기야 남자쪽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얼마나 꽁꽁 매놨던지 태어난 아기가 2.45 kg밖에 되지 않았다. 아기는 입양기관에 넘기기로 하였다. 문제는 남자 쪽 어머니 태도에 있었다. 두 집 다 그리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는데 남자 쪽은 행여 수술비를 내야 할까봐 지레 발을 빼려고 안간힘이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냐는 식이었다. 딸 간수를 잘해야지 도대체 이게 뭐냐고 오히려 큰 소리였다. 여자 쪽 어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수술비만 좀 보태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보다 못한 내가 남자 쪽 어머니를 병원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당신 아들은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않는데 저 집 딸은 어떠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분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리고 10개월간의 악몽이 지워지겠느냐. 돈 몇 푼이 아까워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해서 되겠느냐.” 내가 마구 다그치자 그제야 아주머니는 잠잠해졌다. 나는 악착같이 남자 쪽 어머니에게 수술비를 받아냈다. 단 한번의 실수라던 말대로 처녀막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여학생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병원에 있으면 별별 일이 다 많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두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떼지어 병원으로 들어오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아이들은 수술하러 들어가는 아이를 무슨 환송 식 하듯 뒤에서 재잘거린다. “잘하고 와, 별거아냐” 뭐 그런 말을 한다. 그리고는 수술이 끝나고 나면 간단한 주사라도 한방 맞고 나온 것처럼 대단찮게 여기며 “아팠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쩌구 하면서 수선을 떤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분명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병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불안해진다.....
참고문헌
-http://netdoctor119.com/qxcheck/DC.htm
-강릉시 보건소
-http://www.medcity.com/jilbyung/yusan.html
-http://cafe.naver.com/malgul
-이은영. 2002 『낙태에 대한 생명의료 윤리학적 고찰』. 한국교원대 대학원
-김지영. 2001 『한국 기혼여성의 낙태 특수성에 대한 고찰』. 계명대 교육대학원
-1973. 2. 8 법률 제 2541호 제2조 4항 『모자보건법』
-네이버 백과사전-대한가정의학회
-http://blog.daum.net/rwhwrh/7298965
너무나 쉽게 아기를 죽이는 부모 간혹 살아서 나오는 아기들을 보면 주로 여자 아기들이다. 여자들의 생명력이 질기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간혹 미숙아들이 태어나면 인큐베이터에다 넣는데 그럴 경우에도 여자아기들이 죽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살아서 나온 아기들 때문에 일을 치르고 나면 가슴은 아프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단지 그런 아기들을 처리하면서 다시 세상에 온다면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라고 마음속으로 빌어준다.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몇 개 있는데 난쟁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기가 죽었다고 말한 후 우리에게 아기를 없애달라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입양기관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고 내가 주도적으로 일 처리를 하는 입장이 아닌지라 의사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편이었다. 갓 태어난 난쟁이 아기는 한 모금의 우유도 먹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기이므로 병원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트에 넣어 그냥 두면 그 아기는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다. 입양기관에서도 기형아들은 데려 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아기들을 입양시키기도 사실은 힘든 일이었다. 또 한번은 항문이 없는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해야만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했다. 수술비만 해도 3천만 원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 아기의 부모는 그 정도 돈을 들일 수 없다면서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아기에게는 아주 조금씩 우유를 주었다. 많이 먹을수록 일찍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 아기는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그 아기는 사흘만에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죽고 말았다.
그 후에도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분만 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낙태를 시켜 달라는 부인들을 수없이 만났다. 8개월이 지나 명백히 딸이라고 판정이 되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이다. 보통 3개월 이전에는 간단히 흡입기로 수술이 되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가지지 않지만 6개월 이상 되는 태아를 유도 분만하는 행위는 명백한 살인 행위임을 부인할 수 가 없다. 나는 눈 코 입이 선명한데다 손발이 버젓이 있는 그 아기들을 끄집어낼 때마다 아기를 살인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 작을 뿐인 그 아기들은 갓 태어난 신생아와 다를 바가 별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 선호사상과 인명 경시 풍조로 인해 불과 두서너 달 후면 태어날 아기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방을 들고 병원 찾는 여고생도 고등학생들도 유도 분만을 통해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는 때는 주로 크리스마스와 바캉스 철이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러오는 아이들의 달수를 따져보면 대부분 그때 임신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은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다급해지면 달려와서 울면서 낙태를 시켜 달라고 말한다. 그때는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어머니와 함께 와서 낙태를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간단한 낙태수술은 6만원선이었고 유도분만은 50만원선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이가 일을 벌려 여자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주변에 알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복부를 동여매는 데만 급급했다. 원래 아이가 좀 뚱뚱해 어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다. 더 이상 숨길 처지가 되지 못한 아이가 울면서 어머니에게 일을 털어놓았고 급기야 남자쪽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얼마나 꽁꽁 매놨던지 태어난 아기가 2.45 kg밖에 되지 않았다. 아기는 입양기관에 넘기기로 하였다. 문제는 남자 쪽 어머니 태도에 있었다. 두 집 다 그리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는데 남자 쪽은 행여 수술비를 내야 할까봐 지레 발을 빼려고 안간힘이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냐는 식이었다. 딸 간수를 잘해야지 도대체 이게 뭐냐고 오히려 큰 소리였다. 여자 쪽 어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수술비만 좀 보태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보다 못한 내가 남자 쪽 어머니를 병원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당신 아들은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않는데 저 집 딸은 어떠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분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리고 10개월간의 악몽이 지워지겠느냐. 돈 몇 푼이 아까워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해서 되겠느냐.” 내가 마구 다그치자 그제야 아주머니는 잠잠해졌다. 나는 악착같이 남자 쪽 어머니에게 수술비를 받아냈다. 단 한번의 실수라던 말대로 처녀막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여학생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병원에 있으면 별별 일이 다 많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 얼굴이 두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떼지어 병원으로 들어오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아이들은 수술하러 들어가는 아이를 무슨 환송 식 하듯 뒤에서 재잘거린다. “잘하고 와, 별거아냐” 뭐 그런 말을 한다. 그리고는 수술이 끝나고 나면 간단한 주사라도 한방 맞고 나온 것처럼 대단찮게 여기며 “아팠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쩌구 하면서 수선을 떤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분명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병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불안해진다.....
참고문헌
-http://netdoctor119.com/qxcheck/DC.htm
-강릉시 보건소
-http://www.medcity.com/jilbyung/yusan.html
-http://cafe.naver.com/malgul
-이은영. 2002 『낙태에 대한 생명의료 윤리학적 고찰』. 한국교원대 대학원
-김지영. 2001 『한국 기혼여성의 낙태 특수성에 대한 고찰』. 계명대 교육대학원
-1973. 2. 8 법률 제 2541호 제2조 4항 『모자보건법』
-네이버 백과사전-대한가정의학회
-http://blog.daum.net/rwhwrh/7298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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